종교개혁사(롤란트 베인턴 저)

홍치모/이훈영 역(크리스찬 다이제스트)

1. 내용 요약

16세기 종교개혁은 중세의 말기, 각 분야에서 큰 변란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발생하였다. 르네상스는 기독교적 고대보다는 고전적 고대에 대한 열심을 표방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출현한 민족주의는 신성로마제국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교황의 신권체제를 약화시켰다. 종교개혁은 무엇보다도 종교의 부흥운동이었다. 마르틴 루터의 공격의 표적은 오직 교황의 신권 체제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그의 노력은 중세 초기의 교회를 회복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러할 경우 복원되어야 하는 교회의 본래 모습은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이나 심지어 바울서신과 복음서에 나오는 모습이어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 그의 근본적 논조는 타락하지 않은 원초적 기독교의 회복이었다. 종교개혁은 기독교 국가의 쇄신자였다. 그러나 교회는 중세기간 동안의 모든 모순이 폭발하고 있었다. 그중 면죄부는 교회 부패의 절정이었다. 잉여 공로는 하나님의 보물창고에 저장되어 있는데 교황은 이를 자기 죄의 값을 치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자유로이 전용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교회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민중을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 루터의 신앙 ]

가톨릭적 해석자들은 종교개혁은 중세 후기의 병폐들의 교정이 아니라 연장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개혁자들은 규율을 부활시키는 대신 제거한 것인데 예컨대 성직자들의 축첩을 성직자들의 결혼으로 대체시켰다는 것이다. 다른 가톨릭 역사가들은 개신교를 탐욕과 정욕을 근절하려는 정직한 시도로 간주했지만 그 열심이 지나친 나머지 교권에 대한 불복종으로 끝났다고 보았다. 루터가 철학은 신앙의 척도가 될 수 없다고 항상 변함없이 주장한 게 사실이지만 종교개혁은 후기 스콜라주의의 철학과 이성에 대한 경시 사상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공격의 표적은 중세 가톨릭교회의 병폐가 아니라 가톨릭교 그 자체가 복음에 대한 병폐로서 그의 공격의 표적이었던 것이다. 그의 판단으로는 가톨릭교회는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성을 너무 낮게 생각하고 인간의 가치와 잠재력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교회는 신자들이 지나치게 만족감에 빠지거나 은총의 수단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주눅들이 않도록 하기 위해 공포심과 소망을 번갈아 가면서 이용했다. 절망에 빠질 정도로 섬뜩한 색깔로 지옥을 묘사한 다음에는 이를 완화하기 위해 연옥이 소개되곤 했다. 연옥은 천국과 지옥 사이의 중간층인데 낙원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로서 정화작용을 계속하는 장소였다. 루터는 그 자신의 실패를 거울삼아 인간의 본성 자체가 너무 타락해 있어서 근본적인 개조를 필요로 한다는 이유 때문에 범죄란 개별적으로 다룰 수 없고 또한 아무리 훌륭한 행위라 할지라도 그 특수한 경우가 요구하는 수준에는 미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넘친다거나 다른 데 전용이 가능한 선행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루터가 그 신학을 공부하였던 후기 스콜라 신학자들은 하나님은 자신에게 법이 되신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운명은 불확정적이며 하나님의 결정은 종잡을 수 없다. 그 누구도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인간의 운명은 선악간에 미리 예정되었지만 인간은 그 향방을 알 수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어떤 일도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 정죄된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정죄된 것이다. 구원된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하든 구원을 받는다. 루터는 자기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무죄하시나 인간은 추악하다. 하나님은 강하시지만 인간은 연약하다. 그에 대한 답변은 그는 죄없는 분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고 이로써 우리 모두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고 인간과 함께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할 만큼 인간과의 일체감을 가지실 정도로 죄 많은 인류와 자신을 동일시하셨다는 것이다. 루터는 성서에 몰두하였으며 일천년 동안 그보다 먼저 세상에 나왔던 사람들 중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용서의 기적이 갖는 의미를 체험하였으며 믿음과 신뢰, 오직 이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이야 말로 루터가 그토록 이성을 비하했던 이유이며, 이성을 인간의 마음의 척도로 이해하게 된 이유인 것이다.

[ 루터의 개혁 ]

루터는 가톨릭 신학의 한 유형인 어거스틴주의와 또 다른 유형인 토마스주의를 서로 싸움 붙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가정했지만 그는 인간이 하나님께서 부여한 능력으로 자기의 구원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인간 이성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루터는 교황과 교회회의의 무오성을 전부 부정하였다. 공로저축설의 경우는 교회법 속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루터는 결국 교회법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권위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중세 후기의 분파들로부터 종말론과 예정론이라는 두 파괴적인 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더욱 보강되었다.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지칭하며 신랄하게 비난하였던 것이다. 다른 사상으로서 진정한 교회는 오직 예정된 자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상이 있는데 그 사상은 오직 예정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방법이 있을 경우에만 위협적이 되는데 루터는 선택된 자들로 구성된 교회는 사람들에 의해 멸시와 거부를 당하고 세상에서 박해 받고 은폐될 수 밖에 없다는 점 이외에는 이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가톨릭의 부패를 고발하는 것으로 시작한 루터의 개혁은 점차 경직된 성서주의(Biblicism)의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그에게 궁극적인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성육신, 십자가, 부활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의미하였다. 이 계시는 시간적으로 예수의 역사적 생애에 의해 제약받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영존하시며 또한 인간들의 마음 속에 항상 임재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고의 현현은 성육신을 통해서였다. 미사의 경우 루터는 집요하게 이는 희생제사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성찬의 원어는 유카리스트(eucharist)인데 이는 곧 감사를 의미하며 그 원의는 여전히 남아 있다. 루터는 화체설을 부정했는데 떡과 포도주가 하나님의 몸과 피로 변화하다는 것을 부정했으나 실질적이고 육체적인 임재는 부정하지 않았다. 중세 성기 이래로 성례의 숫자는 혼인, 신품, 종부, 견진, 고해, 미사, 세례의 7가지로 정해졌다. 루터는 성찬과 세례의 두 가지로 줄였는데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불가시적 은총의 외적 표지이어야 하며 오직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루터는 국가는 그 자체의 영역내에서는 교회의 간섭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의 이상은 중세에 독일 황제들이 교황주의자들에 대항하여 지지했고 단테가 유창한 필치로 옹호했던 교회와 국가간의 병립이었다. 그의 실천가능 여부는 입증되지 않았다. 루터는 황제교황주의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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