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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을 개혁하라!

신학일반/교회의 개혁 2020. 7. 14. 01:12 Posted by forest38

 

종교개혁을 개혁하라 !

 

Ⅰ. 서론​

일반적으로 전통은 역사적으로 전승된 물질문화, 사고와 행위양식, 사람이나 사건에 대한 인상, 갖가지 상징군으로 이해되고 개혁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 고치는 것으로 이해된다. 영어에서 reformation은 ‘변화’의 뉘앙스가 내포되어 있는 개념이라고 한다. 본 페이퍼에서는 이러한 전통과 개혁이라는 가치 판단을 종교개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Ⅱ. 본론​

전통의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는 역사적으로 전승된 물질문화, 사고와 행위양식, 사람이나 사건에 대한 인상, 갖가지 상징군을 의미한다. 전통은 과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문화를 주관적으로 재평가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단순한 인습이나 누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선조의 좋은 전통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나쁜 전통에서는 과감히 탈피하여야 한다. 전통과 개혁의 논의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톨릭에 대항하여 벌인 종교개혁이 그 좋은 예이다. 종교개혁의 격랑 속에 로마 가톨릭은 자체 淨化를 한답시고 트랜트 공의회(1545~1563, 제 19차 에큐메니칼 공의회)를 개최하여 나름대로 개혁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종교개혁에 대한 반동적 결정만 내렸을 따름이다. 로마 가톨릭은 7개의 성례전을 제정하고 주로 형식에 얽매이는 종교 제전을 행하다가 개혁주의의 공격을 받았으나 지금도 그 형식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그 전통을 개혁한 것이 개혁주의 신앙이었는데 그 개혁주의 신앙도 후대에 이르러 많은 변천을 하면서 16세기의 개혁주의의 모델은 그 이후의 신학사조가 보았을 땐 또한 전통이 되었다. 따라서 전통이란 어떠한 시대나 지역범위에서 결정되어진 것이라기 보다는 끊임 없이 변화하는 문화나 제도에 속해 있는 어떠한 관념이나 사상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전통에 대한 생각은 좋은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할 뿐 아니라 나쁜 전통을 현실에 대입하여 과감히 개혁하고 폐기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성례전에 대한 인식은 대단히 중요한 가치판단이었다. 부정적인 측면이 많았지만 로마 가톨릭은 사도시대의 전승을 나름대로 정립하여 의식을 만들었고 그것이 종교개혁가들의 눈에는 누습으로 비춰진 것이다. 개신교에서는 누습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결국 루터와 쯔빙 글리의 성만찬에 대한 해석도 또 다른 전통과 개혁이라는 다툼이 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통과 개혁이라는 구분선 보다는 올바른 준거기준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직분의 동등성(한 직분이 다른 직분을 지배하지 않는다)과 고유성(한 직분이 다른 직분을 침범하지 않는다)을 강조한다. 직분의 핵심은 ‘역할과 기능’에 있지 서열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또한 장로교의 전통은 목회자나 교사 등도 신도들 중 적임자를 선정하여 그 직을 맡기는 하나의 직분을 의미한다고 한다. 물론 그 경우에도 엄격한 선발 기준이 있다고 하지만 일반 성도들 중의 하나, 즉 보통 인간임을 전제하는 말일 것이다. 현대 한국교회는 이러한 장로교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전통은 새로운 개혁에 의해 비판받고 교정받는다. 그러나 그 개혁은 전통, 곧 원래의 변형되지 않은 전통으로 되돌아 가고자 하는 노력일 뿐이다. 16세기를 발칵 뒤집어 놓은 루터의 개혁사상은 실상 알고 보면 오히려 초대교회의 전통으로 되돌아 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결국 그의 개혁 이론은 현실 정치세력에 의해 이용당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개혁이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 고치는 것을 말한다. 특별히 기독교 역사에서는 종교개혁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개혁이란 16세기 유럽에서 로마가톨릭 교회 교리의 오류와 윤리적 부패를 바로잡기 위해서 일어났던 신앙의 혁신운동이었다. 당시 종교개혁가들의 개혁운동은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칼”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목숨을 내어 놓고 도전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들이 개혁하고자 했던 것은 새로운 종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의미의 초대교회의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종교 개혁에서 말하는 ‘개혁’이란 ‘처음의 올바른 것을 되찾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기존의 모든 신학사조를 전통으로 분류하고 현재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개혁으로 이해한다. 교리적으로 잘못되고 그릇된 것은 성경 안에서 개혁되어져야 하고 매일 매일 바뀌어져야 한다. 우리의 대부분의 개혁적 사고는 개별 그리스도인이 각자의 신학을 정립하고 그것이 성경에 비추어 올바른 것인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면서 교회공동체를 통해 검증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신자들이나 신앙의 단계가 낮은 신도의 경우는 목회자의 지도에 따라 안내를 받아야 하지만 어느 정도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올바른 신학 정립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서의 개혁이란 것은 매일 죽고 매일 다시 태어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회심 이전과 이후를 막론하고 이미 마음속으로라도 범죄한 인간들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단지 매일 죽고 다시 매일 그리스도안에서 태어남으로써 점차 변화 되어야 것이다. 한편으로는 개혁이라는 용어에는 ‘급진적’ 이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가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단번에 변화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잘못을 저지르고 다시 뉘우치고 또 다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우리의 상황이라고 볼 때 매일 반복되는 뉘우침을 통해 어느 순간에 큰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단번에’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내 직분에 대한 개혁은 먼저 말씀에 있어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주석과 묵상을 통해 바르게 이해하고 끝없는 공부가 이루어져야 한다. 목사의 계속된 공부는 그래서 중요하다. 또한 성례문제에 있어서는 치리장로의 역할이 강조되는데 누가 성찬과 세례에 참여할 것인지를 심사해야 하고 이에 따라 장로의 심방이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 사실 지금의 교회에서는 성찬식 조차도 어떤 사람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확실히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명확히 개념을 잡아주어야 할 것 이다. 종교개혁자 들은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신자들의 삶을 권면하고 때로는 비판을 했다. 이런 교회적 전통은 사실 고린도 전서를 읽어봐도 잘 나타나 있다. 권징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현대교회에서도 이를 엄격히 시행해야 하는 데 결국 개혁이란 초대 교회의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교회에서 개혁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우리는 개혁을 해야 하는가? 종교개혁은 서구에서 일어난 그들의 종교 개혁이었다. 우리 교회가 스스로를 개혁한 것이 아닌 것이다. 물론 우리는 아주 나중에 그들이 이룩한 개신교를 받아 들였지만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를 개혁해야 한다. 복음을 기복신앙으로 받아들이고 교회 성장에만 몰두하는 교단, 신앙인지 미신인지 분간이 안가는 기도 행태 등을 개혁해야 한다.​

Ⅲ. 결론​

16세기 종교개혁은 루터나 칼빈처럼 순수한 신앙적 열정에서 시작되고 그 신앙을 지키기 위해 화형이나 교수형을 감당한 사람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의 세속적 이익에 영합하기 위해서 진행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혹자는 개신교 운동 자체를 라틴족에 대항한 튜튼족의 저항이라고 보기도 하고 로마에 대한 항거가 경제적인 동기에서 이루어졌다고도 한다. 아마도 종교 개혁은 다양한 요인들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것일 것이다.

로마가톨릭의 역사를 보면, 7~8세기 이전부터 이미 초대교회의 신양적 열정이 변질되어 부패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면벌부는 그 부패가 종기처럼 부어 오른 것일 뿐이었다. 종교개혁의 씨앗은 4~5세기부터 뿌려졌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중세라고 해서 모두 부패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대표적으로 수도원운동이 있다. 루터도 수도사 출신임을 상기해야 한다. 루터와 칼빈 등 개혁주의자들의 개혁은 결국 현실적으로는 대부분 경제주체들의 이해관계로 귀결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개혁은 각 개별 신자들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결국 16세기의 종교개혁은 당시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정의 분야까지 총체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단순히 부산물이었다. 신앙과 경건은 일신 전속적인, 그것도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내적 성찰이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부패를 개혁하고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는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분명 개혁가들은 위대한 정신을 가지고 개혁을 진행하였다. 우리는 그들의 개혁을 단지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산으로부터 근본 원리를 찾아내어 우리 상황 가운데 적응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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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사(롤란트 베인턴 저)

홍치모/이훈영 역(크리스찬 다이제스트)

2. 리뷰

우리가 종교개혁이라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개념과는 다르게 다양한 형태의 종교개혁이 있었고 이러한 다양성은 현대 신학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패러다임들이 하나님의 복음과 어떻게 연결되고 또한 연결시켜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개혁을 어떻게 진행했으며 차이점과 공통점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그들의 사상을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선 종교개혁의 양대 거두라고 할 수 있는 루터파와 칼빈주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좀 더 면밀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루터가 처음에 교황의 권위에 도전한 것은 잘못된 신앙을 교정하려는 것으로서 일이 그처럼 커지게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 루터는 종교개혁을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로마 가톨릭주이자들과 맞서야 했고 한편으로는 급진주의자들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자신들을 이미 ‘창세전부터 예정되어 있는’ 신도들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보다 더 과감한 개혁을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내걸면서 이신칭의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사랑의 행함이나 거룩한 삶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는 비난이 있는데 칼빈주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 더불어 거룩한 생활을 통한 성화를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프로테스탄트 신학이 결코 편향된 가르침이 아니라 균형 잡힌 사상임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성화에의 강조는 그가 주장하는 ‘예정론’과는 논리적으로 배치되는 부분이 있어서 신학적으로 더 깊이 연구해야 하는 과제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칼빈주의가 구원이 예정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모든 것을 성령에 의지하고 기독교적 확신으로 과감히 개혁하고 고쳐 나간 것은 참으로 위대한 공헌이라고 봐야 한다. 칼빈주의는 현실에 더욱 신학적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특별히 역사적으로는 소수파로 분류되고 있는 재세례파와 신비주의 등이 후대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데 이들을 통해서 신학적 사상이 풍부해졌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수많은 이단교파가 이러한 이론 들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결국 이러한 선별적 능력은 이러한 좋은 서적을 광범위하게 탐독하여 지식을 함양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인 롤란드 베인튼(R.H.Bainton)의 종교개혁사는 자신이 수십년간 강의한 것을 압축한 것으로 종교개혁의 역사가 녹아 있다. 그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해주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이번 강좌에서 중시하고 있는 루터파와 칼빈주의의 심화과정이나 비교 등은 상대적으로 많이 취급하고 있지 않아서 좀 아쉬운 감이 있다. 때문에 다른 교재로 보충을 하여야 했다. 역사적으로 루터파와 칼빈파가 대립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루터의 입장에서는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당시 로마 가톨릭의 부패에 정면으로 맞섰던 것으로서 그러한 실제 행동의 와중에서 교리적으로 후대에 비판을 받는 부분은 어떻게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구원의 믿음에서 나온다는 그의 탁월한 안목이나 목숨을 건 소신 등을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칼빈주의는 교회와 학교에만 머물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분야에 걸친 개혁운동이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부의 균등한 분배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부를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칼빈의 ‘직업소명설’도 이러한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입장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칼빈이 얘기하는 ‘섭리’란 결정론이나 운명론이 아닌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허용하고 이 자유와 책임과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는 것인데 이 이론은 결국 신도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나 끊임없이 성화과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 과정은 죽기 직전까지라고 하는 조직신학의 논리를 설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기독교강요는 오늘날의 신학으로 보아도 명쾌하고 탁월한 것이 틀림 없다. 아마도 그 때 당시로서는 참신한 신학이론이었을 텐데 단숨에 명쾌하게 신학 이론을 정립하고 제도적으로 완비된 교회조직의 이론적인 기반이 되었다. 그가 운영한 제네바 아카데미는 종교개혁 사상 특히 개혁교회 전통을 온 유럽으로 전파하는 요람이었는데 유럽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 제네바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고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배운 개혁교회의 이상을 실현하였으며, 이를 통해 개혁교회 전통은 명실상부한 국제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동 아카데미의 두드러진 특징중 하나가 인문학과 교양에 대한 강조였다고 한다. 특별계시뿐 아니라 일반계시도 중시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로마가톨릭의 부패를 극복하고 새로이 탄생한 개혁주의적 신학이 여전히 분파 주의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일러니이다. 복음전파를 아직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기독교 내에 있는 갈등이다. 정통교단내에서도 통일되지 않는 수많은 논쟁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외적으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고민 해야 한다. 이 문제는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개인 신앙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회의감하고도 연결이 된다. 교회는 개인 신앙의 발전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기독교 신학은 ‘공동체의 구원’을 분명히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종교개혁사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 현대 한국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위해서는 많은 묵상과 학습, 그리고 실천적 삶까지 수반되어야 한다. 부족하고 죄 많은 우리 스스로 부족한 점을 채우고 행실을 되돌아보며 우리가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지 자격이나 소명부터 점검해본 뒤 실천해야 한다. 또한 신학이론의 차원에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칼빈은 ‘예정론’을 주장하면서도 또한 실천적인 ‘성화과정’을 강조한다. 교수님께서 강의에서도 설명 하신 바 같이 이것이 변증법적인 논리이며 결정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이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난해하다. 로마서 7장 8장을 읽다가 느끼던 논리의 비약을 다시 여기서도 마주하게 된다. 어떤 연결고리가 있어야 이 의문이 풀리는가. 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그것은 결국 완성되지 않지만 인간적인 노력을 끝까지 기울여야 한다는 논리로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결코 달성할 수 없지만 죽을 때까지 노력하여야 한다’ 여기서 철학과 신학을 좀 더 공부해야 한다는 필요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이고 현대 신학은 어거스틴에 대한 주석이라는 말이 있다. 철학과 신학이 플라톤과 어거스틴 이상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말인 동시에 또 그들의 영향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의미일 것이고 또한 플라톤과 어거스틴을 모르고는 철학도, 신학도 기반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종교개혁사를 읽으면서 어거스틴을 연구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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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사(롤란트 베인턴 저)

홍치모/이훈영 역(크리스찬 다이제스트)

[ 제네바 개혁교회: 칼빈주의 ]

칼빈주의는 불어권 스위스인 제네바에서 시작되었는데 종교에 외형적 수단을 사용하는 문제에 있어서 인색하였고 성상이 거부되었으며 음악은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신성공동체의 개념을 좀 더 대규모로 이해했으며 성찬을 영적 교제의 통로로 이해한 점은 루터파와 비슷했고 또한 칼빈파의 시편 찬송은 루터파의 성가곡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교회를 확신 있는 신자들의 공동체로 이해하는 재세례파의 교회관과, 좀 더 뚜렷한 것으로 엄격한 치리를 요구하는 그들의 태도는 칼빈주의에게 상당한 영향을 남겼다. 칼빈주의는 활동적이었다. 왜냐하면 칼빈주의자들은 행동해야 할 필요성과 행동 역량을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1555년 아우그스부르크 화약 이후에는 안정된 지위를 누리게 되면서 신앙적 긴장이 풀려 버린 루터파나 또한 유럽의 변방으로 밀려나 간신히 살아남는데 급급했던 재세례파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었다. 칼빈주의는 앞서의 사상들을 취합하기도 하고 독자적인 주장도 했다. 그의 기독교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는 수세기 동안 개신교의 상당한 지역에서 마치 가톨릭 세계에서 페트루스 롬바르두스(Petrus Lombardus)의 Sentences가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Thomas Aquinas의 Summa 조차 이에 비견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나 장황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의 필체는 간결하고 종합적이고 명쾌하였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신론, 인간론, 교회론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칼빈주의가 개신교이 가장 활발한 교파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칼빈주의의 추진력은 인간에 대한 비관주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낙관론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칼빈의 인간관은 루터파나 재세례파에 못지않게 어둡고, 심지어 더욱 파괴적인 감이 있다. 그는 인간을 타락된 존재로 묘사한다. 비록 그리스도 없는 세상이 반드시 돼지우리같이 될 필연적 이유는 없지만 그것은 결코 낙원이 될 수 없다. 재세례파는 그와 유사한 분석으로부터 교회가 필연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논리를 끌어냈고 루터는 단지 체념섞인 참여만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사회 영역내에서 활동하도록 단호하게 요청하고 있다.

이 같은 그의 용기에는 ‘예정론’이라는 낙관론이 자리하고 있었다. 루터에게 있어서 성서의 위대한 구절은 “네 죄가 사함을 입었느니라”라면 칼빈에게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였다. 칼빈과 루터는 모두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압도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었지만 루터는 이를 사죄의 기적을 강조하는데 이용했고 칼빈은 신적 계획의 견고성에 대한 확신의 원천으로 이해했다. 그 결과 기독교강요에서는 이신칭의 항목에 앞서 하나님의 주권 항목을 우선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칼빈은 주님의 신속한 재림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거부하고 최후의 대환난을 불명확한 미래의 일로 미루었다. 루터는 역상의 종말이 자신의 죽음 이전에 올 것을 열심히 기대하였고 재세례파는 종종 날짜를 정하곤 했다. 그러나 칼빈은 주님의 위대하고 임박한 날을 지상에서 실현될 신성공동체의 꿈으로 대체시켰다. 그 건립은 인간 곧 하나님이 선택한 도구인 선민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 백성은 위대한 명령을 지키는 데 실패했고 하나님은 그들 대신 새로운 이스라엘인 기독교회를 선택하셨다. 그러나 그 교회 역시 변절하였고 이제는 정선된 소수의 무리들, 즉 선민들에게만 소명이 임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다시 한번 선택된 자들을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는지에 관한 방법이 문제가 제기되었다. 루터는 이를 아는 듯이 행세하지 않았다. 뮌처는 영으로 안다고 했고, 쯔빙글리는 믿음으로 안다고 했으며, 재세례파들은 생활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칼빈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으로 알 길은 없다고 하면서 재세례파처럼 가라지는 없이 오직 밀만 있는 교회를 만들려 하지는 않았다. 그는 쯔빙글리의 기준과 재세례파의 기준을 받아들였다. 그는 여기에 세번째 기준(성례전에의 참여)을 덧붙였는데, 이로써 루터와 심지어 가톨릭측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칼빈이 생각하기에 성례전은 루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제의 통로이자 그리스도와 신자들과의 교제의 표현이다. 인간의 주된 목적은 자기를 구원하거나 그의 구원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다. 어쨌든 인간은 이미 구원받았든지 버림받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므로 이를 놓고 걱정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이었다. 칼빈으로서는 선택 교리는 형언할 수 없는 위안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체의 근심을 제거하고 인간을 자신에 대한 염려로부터 해방하여 주권자 하나님을 위해 불굴의 봉사를 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이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 자유신령파 ]

16세기 종교개혁은 루터파, 개혁파, 재세례파 유형들과는 상이한 또 다른 형태를 나았는데 그 특징은 신비주의와 합리주의였다.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그들의 중요성은 후대에 엄청나게 유행했던 사상들을 선도했다는데 있다. 이들 자유신령파가 지지했던 신비주의와 합리주의는 모두 기독교 전통속에 뿌리박은 것으로서 하나같이 성과가 크면서도 동시에 탈선가능성이 있음이 입증되었다. 신비주의를 단순히 따스한 개인적 신앙 체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생명력 있는 기독교의 필수적인 요소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비주의를 좀더 전문적인 견지에서 신성과 인성이 합일을 목표로 삼는 하나의 종교 유형으로 볼 경우에는 기독교를 강화하는 동시에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공존하게 된다. 인간이 신성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개념은 베드로후서에서 찾아볼 수 있고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다고 말한 한 이교 시인의 말을 호의적으로 인용할 수 있었다. 기욤포스텔은 고대 동방의 비전의 신비적 지식의 비밀을 구명하려는 열망으로 히브리어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여행의 도중에 외경이 야고보 복음서를 발견했고 아라비아어, 시리아어, 아람어를 익혔다. 모든 진리의 통합과 모든 신앙의 궁극적 조화를 꾀하는 르네상스적 신앙은 그로 하여금 모든 종교의 일치를 이룩하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당시에 이단으로 의심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들이 후대에 끼친 엄청난 영향으로 인해서 신학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폴란드는 반삼위일체론과 재세례주의가 다양하게 조합된 집단들의 일대 거점이 되었다. 아 나라에거 일어난 운동은 파우스투스 소치누스 또는 소지니의 이름을 붙여 소지니파로 알려지게 되었다. 분명히 이탈리아 출신이었던 폴란드 여왕보나 스포르차의 호의로 이탈리아인들의 이주가 촉진되었다. 자유신령파는 비록 조직된 운동의 형태로는 거의 남긴 것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적 탐구, 신비적 경건, 신앙의 자유 등에서 다른 개신교 단체들에 그 나름의 각인을 남겼다. 계몽주의 시대는 그들을 거의 자기들의 사상적 선배로 인정하지 않았음에 불구하고 분명히 그들의 신세를 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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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사(롤란트 베인턴 저)

홍치모/이훈영 역(크리스찬 다이제스트)

1. 내용 요약

16세기 종교개혁은 중세의 말기, 각 분야에서 큰 변란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발생하였다. 르네상스는 기독교적 고대보다는 고전적 고대에 대한 열심을 표방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출현한 민족주의는 신성로마제국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교황의 신권체제를 약화시켰다. 종교개혁은 무엇보다도 종교의 부흥운동이었다. 마르틴 루터의 공격의 표적은 오직 교황의 신권 체제에 국한되어 있었으며 그의 노력은 중세 초기의 교회를 회복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러할 경우 복원되어야 하는 교회의 본래 모습은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이나 심지어 바울서신과 복음서에 나오는 모습이어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 그의 근본적 논조는 타락하지 않은 원초적 기독교의 회복이었다. 종교개혁은 기독교 국가의 쇄신자였다. 그러나 교회는 중세기간 동안의 모든 모순이 폭발하고 있었다. 그중 면죄부는 교회 부패의 절정이었다. 잉여 공로는 하나님의 보물창고에 저장되어 있는데 교황은 이를 자기 죄의 값을 치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자유로이 전용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교회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민중을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 루터의 신앙 ]

가톨릭적 해석자들은 종교개혁은 중세 후기의 병폐들의 교정이 아니라 연장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개혁자들은 규율을 부활시키는 대신 제거한 것인데 예컨대 성직자들의 축첩을 성직자들의 결혼으로 대체시켰다는 것이다. 다른 가톨릭 역사가들은 개신교를 탐욕과 정욕을 근절하려는 정직한 시도로 간주했지만 그 열심이 지나친 나머지 교권에 대한 불복종으로 끝났다고 보았다. 루터가 철학은 신앙의 척도가 될 수 없다고 항상 변함없이 주장한 게 사실이지만 종교개혁은 후기 스콜라주의의 철학과 이성에 대한 경시 사상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공격의 표적은 중세 가톨릭교회의 병폐가 아니라 가톨릭교 그 자체가 복음에 대한 병폐로서 그의 공격의 표적이었던 것이다. 그의 판단으로는 가톨릭교회는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성을 너무 낮게 생각하고 인간의 가치와 잠재력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교회는 신자들이 지나치게 만족감에 빠지거나 은총의 수단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주눅들이 않도록 하기 위해 공포심과 소망을 번갈아 가면서 이용했다. 절망에 빠질 정도로 섬뜩한 색깔로 지옥을 묘사한 다음에는 이를 완화하기 위해 연옥이 소개되곤 했다. 연옥은 천국과 지옥 사이의 중간층인데 낙원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로서 정화작용을 계속하는 장소였다. 루터는 그 자신의 실패를 거울삼아 인간의 본성 자체가 너무 타락해 있어서 근본적인 개조를 필요로 한다는 이유 때문에 범죄란 개별적으로 다룰 수 없고 또한 아무리 훌륭한 행위라 할지라도 그 특수한 경우가 요구하는 수준에는 미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넘친다거나 다른 데 전용이 가능한 선행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루터가 그 신학을 공부하였던 후기 스콜라 신학자들은 하나님은 자신에게 법이 되신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운명은 불확정적이며 하나님의 결정은 종잡을 수 없다. 그 누구도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인간의 운명은 선악간에 미리 예정되었지만 인간은 그 향방을 알 수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어떤 일도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 정죄된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정죄된 것이다. 구원된 사람들은 무슨 짓을 하든 구원을 받는다. 루터는 자기가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무죄하시나 인간은 추악하다. 하나님은 강하시지만 인간은 연약하다. 그에 대한 답변은 그는 죄없는 분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고 이로써 우리 모두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고 인간과 함께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를 경험할 만큼 인간과의 일체감을 가지실 정도로 죄 많은 인류와 자신을 동일시하셨다는 것이다. 루터는 성서에 몰두하였으며 일천년 동안 그보다 먼저 세상에 나왔던 사람들 중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용서의 기적이 갖는 의미를 체험하였으며 믿음과 신뢰, 오직 이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이야 말로 루터가 그토록 이성을 비하했던 이유이며, 이성을 인간의 마음의 척도로 이해하게 된 이유인 것이다.

[ 루터의 개혁 ]

루터는 가톨릭 신학의 한 유형인 어거스틴주의와 또 다른 유형인 토마스주의를 서로 싸움 붙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가정했지만 그는 인간이 하나님께서 부여한 능력으로 자기의 구원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인간 이성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루터는 교황과 교회회의의 무오성을 전부 부정하였다. 공로저축설의 경우는 교회법 속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루터는 결국 교회법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권위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중세 후기의 분파들로부터 종말론과 예정론이라는 두 파괴적인 사상을 받아들임으로써 더욱 보강되었다.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지칭하며 신랄하게 비난하였던 것이다. 다른 사상으로서 진정한 교회는 오직 예정된 자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상이 있는데 그 사상은 오직 예정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방법이 있을 경우에만 위협적이 되는데 루터는 선택된 자들로 구성된 교회는 사람들에 의해 멸시와 거부를 당하고 세상에서 박해 받고 은폐될 수 밖에 없다는 점 이외에는 이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가톨릭의 부패를 고발하는 것으로 시작한 루터의 개혁은 점차 경직된 성서주의(Biblicism)의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그에게 궁극적인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성육신, 십자가, 부활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의미하였다. 이 계시는 시간적으로 예수의 역사적 생애에 의해 제약받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영존하시며 또한 인간들의 마음 속에 항상 임재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고의 현현은 성육신을 통해서였다. 미사의 경우 루터는 집요하게 이는 희생제사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성찬의 원어는 유카리스트(eucharist)인데 이는 곧 감사를 의미하며 그 원의는 여전히 남아 있다. 루터는 화체설을 부정했는데 떡과 포도주가 하나님의 몸과 피로 변화하다는 것을 부정했으나 실질적이고 육체적인 임재는 부정하지 않았다. 중세 성기 이래로 성례의 숫자는 혼인, 신품, 종부, 견진, 고해, 미사, 세례의 7가지로 정해졌다. 루터는 성찬과 세례의 두 가지로 줄였는데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불가시적 은총의 외적 표지이어야 하며 오직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루터는 국가는 그 자체의 영역내에서는 교회의 간섭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의 이상은 중세에 독일 황제들이 교황주의자들에 대항하여 지지했고 단테가 유창한 필치로 옹호했던 교회와 국가간의 병립이었다. 그의 실천가능 여부는 입증되지 않았다. 루터는 황제교황주의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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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33제

신학일반/교회의 개혁 2020. 6. 28. 07:16 Posted by forest38

1. 16세기 종교 개혁의 역사적 사상적 배경을 약술하라.

16세기 종교개혁은 단순히 종교 정화운동일 뿐 아니라 당시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사회ㆍ정치ㆍ문화적 변화와 함께 총체적으로 일어난 사회개혁운동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종교개혁의 배경으로는 문화적, 철학적 영향 등 6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14~15세기 르네상스는 중세시대에 억압되었던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주의를 강조했다. 인문 주의자들은 그리스ㆍ로마 시대의 철학과 예술을 연구했고, 교회의 부패와 사치를 공격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르네상스 인문주의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고전보다는 성경과 교부에게로 돌아가서 그것들을 연구했고, 교회의 부패와 사치보다 신학적 부패를 더 비판했다는 점이 인문주의자들과 다르다. 피상적으로 보면 르네상스의 인본주의가 신위가 아닌 인위를 조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르네상스의 인본주의가 한 측면에서는 중세종교의 부조리를 고발함으로써 종교개혁을 촉발하였다. 철학적으로는 후기 스콜라주의(유명론)의 영향이 있었다. 오캄의 견해에 따르면 지식은 무엇 보다도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지식, 즉 경험적인 지식이다. 오캄은 자연 이성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는 철학과 과학을 자율성이 영역에 국한시켰기 때문에 성경을 토대로 신학을 재건해야 했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지식은 오직 믿음과 성경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그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했기 때문에 교회의 성직구조와 성례에 입각한 구원론을 공격했다. 루터는 유명론에 큰 영향을 받아서 한 때 “나는 오캄학파 출신이다”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교회 일치와 개혁을 위해 공의회 운동이 일어났는데 십자군 전쟁 이후 교황권과 왕권이 충돌 하였다. 교황청은 분열되었다. 콘스탄스 공의회(1414-1418)는 교회를 통일시키는 데는 성공 했으나 교회의 개혁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또한 교회의 부패에 절망한 신도들중에는 신비주의에 경도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신비주의는 교권을 벗어나 하나님과 개인의 직접적인 만남과 접촉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성서를 직접 번역해서 배포된 영향도 컸다. 이와 함께 십자군 운동 이후 교황권의 권한이 약화된 가운데 유럽의 각 국가들 안에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루터는 교황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독일 영주들의 지원과 보호를 받았다. 이러한 민족주의 경향이 아니었다면 루터는 개혁을 이루기 전에 처형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14~15세기에는 과학이 발달하고 도시가 번창했다. 항해술과 과학의 발달로 신대륙이 발견되었고 사람들의 시야가 넓어졌다. 종교 개혁사상이 급속히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적 발전, 특히 인쇄술의 발달이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인쇄술이 성경의 보급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 큰 역할을 하였다. 구텐베르크 인쇄기의 최초의 중요한 생산이 바로 제롬의 ‘불가타역’(Latin Vulgata) 성경이었다고 한다.

2. 종교개혁의 5가지 종류를 약술하라.

16세기 종교개혁은 단일한 현상이 아니었고 유럽의 전 지역에서 다양한 현상으로 나타났다. 대체로 5가지 종류로 나타나며 다음과 같다. 첫째, 마틴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독일,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으로 퍼져나가면서 루터교회를 형성했다. 그러나 북유럽의 개신교의 존재유무와는 상관없이 민족주의 세력이 너무 강력해서 가톨릭 경건의 많은 부분이 살아 남았다. 그 바탕은 루터파였지만 교회예배는 여전히 미사로 불렸다. 둘째, 스위스의 츠빙글리와 칼뱅을 따르는 개혁파는 스위스를 비롯하여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폴란드 등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스코틀랜드는 칼뱅주의가 가장 잘 뿌리 박힌 국가이다. 셋째, 영국에서는 헨리 8세(1491-1547)가 수장령을 발표하고 성공회를 영국의 국교로 정하였다. 그 후 영국 식민지에는 성공회가 전파되었다.

이상의 루터교회, 개혁교회, 성공회, 로마 가톨릭교회는 다 국가교회였고 유아세례를 실시했다. 넷째 재세례파(Anabaptist) 혹은 과격파 종교개혁(Radical Reformation) 운동은 국가의 교회 간섭과 유아세례를 반대하였고, 가톨릭교회와 주류 개신교회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다섯째, 로마 가톨릭 안에서는 종교개혁운동에 대응하고 자체 개혁을 하려는 반종교개혁운동(counter-reformation)이 일어났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에 도도히 흐르는 탁류는 막을 길이 없었다. 개혁파는 스코틀 랜드에서 장로교회, 영국에서는 회중교회가 되었다. 이들은 북미대륙, 호주로 건너가서 그곳에 장로교회를 세웠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미국, 호주, 캐나다를 통해 전파되었다. 개혁교회는 유럽에서는 주로 개혁교회(Reformed)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장로교회(Presbyterian)라고 부른다.

3. 종교개혁자 루터가 재발견한 복음은 무엇이었는가?

루터는 1521년의 어느 날 수도원의 탑에서 회심을 체험하는 ‘탑의 경험’(trumerlebnis)을 한다. 그는 로마서 1:17을 통해 구원은 공로가 아니라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진다고 깨달았다. 루터 자신의 말처럼 탑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루터는 한갖 수도원의 수도사로 일생을 마쳤을 것이다. 루터는 기독교 신학이 성립된 이래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용서의 기적이 갖는 의미를 체험하였다. 루터는 이성은 인간의 마음의 척도일 뿐이라고 규정하고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게 된다.

루터 신학의 출발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루터가 재발견한 복음(하나님의 말씀)은 신구약성경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루터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경해석을 했다. 그는 복음을 잘 표현하는 성경이 그렇지 못한 성경보다 권위가 높다고 보았다. 그래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선호했고 “야고보서는 지푸라기 같은 성경”이라고 했다. 루터는 복음이 교회를 창조했기 때문에 성경은 전통보다, 교회보다, 신학자보다 더 권위가 높다고 보았다. 가톨릭 신학자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권한이 교회의 전통에 속한 것이기에 교회의 교도권(敎道權, magistrium, 가르치는 권한)을 옹호했다. 그러나 루터는 성경은 스스로가 해석자이며, 성경 해석은 오직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만 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루터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과 복음이었다. 그는 율법의 역할을 두 가지로 보았다. 첫째, 율법은 악을 방지하고 질서를 제공하는 시민법의 역할을 한다. 둘째, 율법은 우리의 죄를 고발하는 신학적인 역할을 한다. 율법은 본래 선한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사용하시면 우리를 복음으로 인도하지만, 마귀가 율법을 사용하면 절망과 증오로 이끌어 간다. 율법의 공격을 통해 죄의 공포를 경험한 사람만이 복음의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과 복음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의 양 측면이며 이러한 그의 이론은 칼뱅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4. 루터 신학에 있어 복음주의 신학을 구성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ator)”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약술하라.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를 믿음으로 전가된 의를 통해 의롭게 인정을 받지만 죄성 때문에 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실존은 죄인이라는 의미이다. 루터는 어거스틴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루터는 그 자신의 실패를 거울삼아 인간의 본성 자체가 너무나 타락되어 있어서 근본적인 개조를 필요로 한다는 이유 때문에 범죄란 개별적으로 다룰 수 없고, 또한 아무리 훌륭한 행위라 할지라도 그 특수한 경우가 요구하는 수준에는 미달되는 것으로 보았다.

루터는 인간의 의지는 죄로 구부러져 있어서 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의롭게 인정받는 길(칭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의가 믿음으로 전가될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루터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 최고의 공로가 믿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믿음이 생기는 것도 인간적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성령의 활동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기독교인은 전가된 의를 통해 의롭게 되기 때문에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 이라고 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았지만 실존은 여전히 죄인인 것이다.

5. 루터가 이해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이중적 형태로서의 율법과 복음에 대하여 약술하라

루터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과 복음이었다. 그는 율법의 역할을 두 가지로 보았다. 첫째, 율법은 악을 방지하고 질서를 제공하는 시민법의 역할을 한다. 둘째, 율법은 우리의 죄를 고발하는 신학적인 역할을 한다. 율법은 본래 선한 것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율법과 마귀가 사용하는 율법은 같을 수 없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여 올바른 신앙을 갖도록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하는데 반해 마귀의 율법은 우리를 스올로 인도한다. 율법의 공격을 통해 죄의 공포를 경험한 사람만이 복음의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로마서나 칼뱅의 기독교강요에서 나오는 내용도 루터의 견해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진정한 전통이라고 보고 성경을 전통의 상위개면으로 올려놓은 데 이어서 그 성경 연구를 통해서 율법과 복음의 정의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루터는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사건을 목격하면서부터 구원의 문제를 고민하였었는데 그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 중 하나로서 율법과 복음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6. 루터와 칼뱅의 두 왕국( the Two Kingdoms) 사상은 무엇이며 각각 차이점에 대하여 약술하라

루터는 국가와 교회가 모두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가는 율법의 시민적 기능에 속하며 교회는 복음에 속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나님이 국가를 주신 것은 악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신자들은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에 시민적 통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복음의 왕국은 국가의 통치를 받지 않는다. 루터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모든 형태의 혁명주의자들을 경계하였다. 그는 국가조차도 거부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천년왕국론자들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무기는 칼이 아니라 십자가라고 주장하였다.

칼뱅도 루터처럼 두 왕국설을 지지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구세주이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주권과 교회의 주권을 다 가지고 계신다. 따라서 칼뱅은 국가 권력이 하나님의 질서에 순응하는 통치를 할 때에 성도와 교회는 국가권력에 순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이 신앙의 양심에 어긋나는 것을 강요할 때는 교회가 저항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대표자를 통해서 질서 있게 저항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루터와 칼뱅의 두왕국사상은 이것이 잘 못 발전되면 세상과 교회가 분리되는 결과를 낳는다. 두 왕국이 완전히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크리스천은 세속역사 속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두 왕국 사상은 성경에 기반해서 해석해야 하고 이 세상으로 보냄 받은 사명이 왜곡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7. 루터의 복음주의 신학은 설교의 신학과 함께 중세의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과 대조되는 “십자가의 신학(Theolgia Crucis)”을 주제로 한다. 루터가 주장한 설교의 신학과 십자가의 신학을 약술하라.

마르틴 루터는 무엇보다 자신의 소명을 설교자로 인식하였고 설교를 통해 종교개혁운동을 전개 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교회를 “입의 집”이라고 할 만큼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루터에게 설교란 하나님의 음성이요 계시였고, 설교를 통해 청중은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의 설교는 철저하게 성경에 근거한 강해설교요 주석 설교였다. 당대 그의 설교방식은 매우 혁명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루터의 설교에 대한 연구는 그의 신학과 사상의 다른 영역에 비해 그리 많은 연구물이 나오지 못한 실정이다.

한편 십자가의 신학은 인간의 사변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영광의 신학이 타락한 이성의 사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십자가의 신학은 십자가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계시의 신학이다. 계시는 십자가에서 드러나므로 간접적이며 십자가 안에 숨겨져 있다. 계시는 피조 질서가 아니라 그리 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안에서만 인식된다. 즉 누구나 쉽게 하나님을 보았고, 발견했다고 말한 모든 것을 거짓이었으며 우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십자가를 수치로 여기지만,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은 십자가를 ‘하나님의 영광’이요 자비라고 고백한다. 십자가 신학은 ‘하나님의 이상한 일(opus alienum Dei)’를 통해 인간이 절망 가운데 있음을 보게 한다.

8. 루터 신학에 있어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본래의 일(opus proprium)은 무엇이며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이상한 일(opus alienum)은 각각 무엇이며 그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인간이 겸손한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는 것이므로, 그는 스스로 홀로 하나님의 면전에서 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그는 그의 무력감과 절망감으로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는데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통해 그의 자비가 작동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루터는 이것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시는 일을 두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opus alienum (“하나님의 이상한 일”)과 opus proprium(“하나님의 올바른 일”)이 그것인데 이것은 일종의 역설이다. 이것은 결국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본질에 비추어 죄를 깨달아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한 뒤 은혜를 통한 구원 사역을 이루신다는 개념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으려면 반드시 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opus alienum Dei의 근본 의도는 사람이 전제 조건을 수행 할 수 있게 하여 그의 이상한 일에 숨겨져 있는 자비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 루터는 그리스도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가 있다고 한다. 인간이 자신의 불의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옮겨야 한다면, 먼저 자신의 무가치 함과 자신의 장치에 맡겨진 상황의 허무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opus alienum의 자비로운 의도는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이것은 믿음으로만 인식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에게 가혹한 판단을 내려서 그를 죄인으로 만들고 그에 따라 이상한 일을 정죄하지만 이로 인해 사람은 자비와 은혜를 하나님께 구하며 하나님은 opus proprium을 실행한다.

9. 로마 가톨릭과 스콜라주의의 성서관과 달리 루터가 성경을 판단하는 규준으로 삼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루터 신학의 출발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구약성경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즉 복음이었다. 루터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경해석을 했다. 그는 복음을 잘 표현하는 성경이 그렇지 못한 성경보다 권위가 높다고 보았는다. 그래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선호했고 “야고보서는 지푸라기 같은 성경”이라고 했다.루터는 복음이 교회를 창조했기 때문에 성경은 전통보다, 교회보다, 신학자보다 더 권위가 높다고 보았다. 가톨릭 신학자들은 성경을 해석하는 권한이 교회의 전통에 속한 것이기에 교회의 교도권(敎道權, magistrium, 가르치는 권한)을 옹호했다. 그러나 루터는 성경은 스스로가 해석자이며, 성경 해석은 오직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만 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루터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과 복음이었다. 그는 율법의 역할을 두 가지로 보았다. 첫째, 율법은 악을 방지하고 질서를 제공하는 시민법의 역할을 한다. 둘째, 율법은 우리의 죄를 고발하는 신학적인 역할을 한다. 율법은 본래 선한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사용하시면 우리를 복음으로 인도하지만, 마귀가 율법을 사용하면 절망과 하나님에 대한 증오로 이끌어 간다. 율법의 공격을 통해 죄의 공포를 경험한 사람만이 복음의 참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과 복음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의 양 측면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은 종교개혁의 5대원리를 도출해낸다. 즉, 오직성경(Sola Scripture),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a),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가 그것이다.

10. 루터는 전승을 성서와 동등한 위치에 놓는 중세기 교회의 입장에 반대하여 오직 성서로만 (sola Scriptura)을 주장하였다. 루터의 말씀 이해에 대하여 약술하라.

루터는 성서를 전승보다 우위에 두는 이론을 전개했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구원을 가르치는 권위는 성경과 거룩한 전승(聖傳)이라고 주장했으며,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성경을 해석하는 최종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로마 가톨릭은 성경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믿음과 실천의 유일하고 궁극적인 권위는 교황이 아니고 성경이라고 보았는데, 이 말은 성경 외에 다른 책이 필요 없다거나 성직자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오직 최종 권위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라틴어 성경만을 사용했지만, 종교개혁가들은 성경을 자국 언어로 번역해서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가톨릭교회는 라틴어로 미사를 진행했고 평신도들은 예배에서 소외되었다. 종교개혁가들은 예배를 제 1차 개혁대상으로 삼았다. 예배 때에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했고, 미사보다는 말씀 설교를 강조했다. 종교개혁자들은 떡과 잔을 숭배하게 만든다고 해서 화체설을 거부하였고, 반복 희생제사 이론도 거부했다.

11. 종교개혁자인 루터와 칼뱅이 성서 해석의 해석학적 원리로 내세우는 것은 무엇인가?

루터는 인간이 선한 행위나 면죄부로는 절대로 구원에 이를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만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에 의한 칭의’(justification by faith), 즉 ‘믿음을 통한 은총에 의한 칭의’(justification by grace through faith)야 말로 루터 사상의 핵심이고 성서해석의 원리이다.

루터가 믿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프로테스탄트는 사랑의 행함이나 거룩한 삶에 소홀하다는 비판에 대해 칼뱅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 더불어 거룩한 생활을 통한 성화를 강조함으로써 프로테스탄트 신학이 결코 편향된 가르침이 아니라 균형잡힌 사상임을 부각시켰다. 칼뱅은 ‘성화의 신학자’라고 불릴 만큼 성서해석에 있어서 ‘성화’를 기준으로 삼는다.

12. 루터가 경전을 경전으로서 판가름하는 것으로 얘기하는 경전 속의 경전(Kanon im Kanon)은 무엇인가?

"경전속의 경전"이라는 표현은 19 세기에 처음 사용이 되었지만 실제 개념은 이미 18세기에 나타나 있다. 20 세기에 Ernst Käsemann과 Siegfried Schulz는 성서에 대한 그러한 이해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 였는데 이들은 척도가 되는 경전은 바로 '신성'이라는 것이다. 바로 경전 안에 있는 신성이 그 기준이 된다는 이론이다. 루터에 의하면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을 가장 분명히 나타낸 로마서나 갈라디아서가 바로 Kanon im Kanon 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루터에게 성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신앙의 삶으로 인도하는 매일의 안내서이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에 대한 완전한 계시의 증언이다.

반면에 루터는 야고보서 등에 대해서는 혹평을 하였는데 그것은 그의 ‘믿음으로 의를 이룬다’는 이론을 강조하려다 보니 행위를 강조한 야고보서와는 견해가 맞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놓고 비교해보면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인 것을 깨닫게 된다. 루터의 견해는 결국 그 발전적 계승자인 칼뱅에 의해서 행위를 강조하는 성화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한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이룰 당시의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13. 프로테스탄트의 윤리는 구원론을 전제한다. 루터에게 있어서 크리스도인의 생활 윤리를 만인제사장직으로 설명하라.

루터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윤리는 ‘만인제사장’ 교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루터는 이 교리를 통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개인의 가치를 발견하고 존중하도록 만들었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사제가 제사장이고 일반 교인들은 사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루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제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제사장이라고 가르쳤다. 전에는 사제들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로 여겼으나, 루터는 모든 직업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이라고 가르쳤다. 전에는 교회에서 성만찬을 할 때 사제들만 빵과 포도주를 취하고 일반 교인들에게는 빵만 주었는데 이제는 모든 개인에게 빵과 포도주 모두를 분배하였다. 루터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기능은 다를지라도 신분에 있어서는 똑 같은 하나님의 자녀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주장하였다.

루터의 만인제사장 교리는 그의 3대 논문중 하나인 ‘독일 귀족에게 고함(1520.8)에 나타나 있는 사상인데 이 논문에서 그는 교황이 군림하는 것이나 교회가 국가권력 위에 군림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만인제사장직을 주장하였던 것인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중세의 집단적 세계관이 근대의 개인적 세계관으로 뒤바뀌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교리는 칼뱅에 이르러 그리스도인의 윤리라는 개념으로 발전되어 진다.

14. 루터가 예배의식의 개혁에 이비지한 점을 약술하라.

루터가 예배의식의 개혁에 이바지한 바는 무엇보다도 이신칭의에 비추어 성례전을 간소화한데에 있다. 또한 그는 모든 개교회가 스스로 판단하여 교역자와 교사들을 임면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성서에 의해 확정되었고 증명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독일어로된 미사와 예배규범을 주장하였는데 미사는 제사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부터 죄사함을 받는 은혜라고 하였다. 루터는 교회가 성례전도 아니고 교직 제도도 아니고 '성도의 교제'라고 했다.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하는 표지(signs)는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바르게 집행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회의 특징은 '사도적 계승'이 아니라 말씀을 선포하고 듣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루터는 또한 '만인제사장설'(universal priesthood)을 주장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정한 사람을 불러 목회사역을 맡기시는데 여기서 직분이 생기는 것이다.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7개 성례전에서 오직 세례와 성만찬을 성례로 인정했다. 그는 성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언약(말씀), 표지(signs), 믿음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세례와 성만찬은 예수님께서 행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고, 물과 잔과 떡이라는 표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례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효력과 의미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15. 루터의 신학 사상은 뮌처의 그것과 어떻게 디른가?

토마스 뮌처(Thomas Muentzer)의 신학과 루터의 신학은 네 가지 측면에서 대조적이다. 첫째, 루터는 성경과 말씀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며 말씀을 통해 성령이 역사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뮌처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이 주관적으로 개인의 영혼에 말씀하시는 내적인 말씀이라고 보았다. 둘째, 루터는 신앙이란 말씀을 접하고 성령의 조명과 감화를 통해 내적인 결단에 이르는 것이라고 보았다. 뮌처는 내면의 영혼이 하나님과 직접 대면함을 통해 신앙이 생기며 구원을 위해서는 인간의 행위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셋째, 루터는 교회를 이신칭의를 통해 이루어진 성도의 공동체라고 했다. 그러나 뮌처는 내적 경험을 통해 회심한 선민의 모임이 교회라고 보았으며, 이들이 메시아 왕국을 앞당기는 전위대가 된다고 주장했다. 넷째, 루터는 두 왕국 사상을 주장했다. 세상의 통치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뮌처는 세상의 통치는 메시아 왕국이 올 때 무너져야 할 대상으로 보았고, 폭력 사용도 인정하였다.

뮌처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새로이 다양한 형태의 신정정치를 주창했다는 데 있다. 뮌처는 개인의 예정에 기초한 새로운 형태의 신정정치를 소개하였는데 그 성도들이 세상을 다스려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이 같은 사상은 후스파로부터 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보헤미아의 접경지역에서 살았으므로 그들로부터 선민들의 왕국(kingdom of the elect) 개념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루터는 신정정치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했고 성도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관리들을 통해 인간의 악한 성품을 억제하게 하자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애당초 그 같은 노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뮌처는 강제적 방법을 사용하려 하였고 주님의 임박한 재림은 추수밭에 낫을 댐으로써 촉진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16.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론>에 대응하여 루터는 <노예의지론>을 썼다. 은혜와 자유의지의 관계에 대해 루터가 주장하는 노예의지론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론(1524)과 루터의 노예의지론(1525)은 인간본성과 죄의 과격성이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루터는 인간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이성으로 제어가 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해결된다고 하였다. 또한 루터는 계시된 하나님과 감추어진 하나님이라는 이론을 제시하면서 하나님은 원래 드러내지 않는 분이신데 드러내시려고 작정하시면 적극적으로 드러내신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이다. 또한 루터는 율법과 복음의 변증적 관계와 두 왕국 사상을 제시하면서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론을 반박하고 노예의지론을 주장한다. 처음에 긴밀한 관계였던 두 사람은 이후 사상적으로 결별하게 된다.

루터는 인간의 의지는 죄로 구부러져 있어서 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의롭게 인정받는 길(칭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의(義)가 믿음으로 전가(傳加) 될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루터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 최고의 공로가 믿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믿음이 생기는 것도 인간적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성령의 활동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기독교인은 전가된 의를 통해 의롭게 되기 때문에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라고 했다. 그들은 의롭게 인정받지만 실존은 여전히 죄인인 것이다.

17. 루터의 “감추어진 하나님(Deus absconditus)”과 “계시된 하나님(Deus revelatus)”의 역사는 각각 무엇인가?

감추어진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알 수 없다는 기독교적 개념이다. 루터는 1525 년 라틴어 작품 De servo arbitrio에서 Deus absconditus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 이전에 시편과 로마서 강의에서 이러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또한 계시된 하나님 (라틴어 : deus revelatus)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자기 계시는 그의 은닉에 있다는 이론이다. 루터는 1518 년의 하이델베르그 논쟁에서 이러한 이론을 밝혔다.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루터는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시면 적극적으로 드러내실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최근에 이 용어는 종교적 주제를 현대적으로 분석하는 데 사용되었다.

루터는 ‘감추어진 하나님’과 ‘계시된 하나님’의 이론을 이사야 45장 15절 주석(하나님은 스스로 숨어 계시는 분)에서 인용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성경이라는 특별계시 개념이 명확하고 강조되면서 성육신과 십자가사건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루터의 십자가 신학과 두 왕국 이론(regnum Christi et regnum mundi)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감추어진 하나님’과 ‘계시된 하나님’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루터는 성경과 신앙에서 명백하면서도 모호한 것이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18. 칼뱅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3중성은 무엇이며, 하나님 말씀의 이중성은 각각 무엇인가 약술하라.

하나님 말씀의 삼중성은 삼위일체에 비유하여 설교된 말씀, 기록된 말씀과 함꼐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또한 율법과 복음이라는 이중성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구약과 신약의 해석학적 열쇠가 되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삼중적이면서도 이중적이다. 인간이 자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본질인 율법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나약함과 타락함을 직시한 뒤 하나님에게로 나아오게 한다는 것이다. 율법과 복음이라는 이중성은 하나님 모습의 자기 계시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다루어야 하는 근거는 바로 성경이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이 삶과 죽음이 성경에만 있으면 알지 못할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어야 한다. 이것은 훗날 칼 바르트 신학에서 다시 강조된다. 칼뱅은 이 이론을 체계화한 선구자로 볼 수 있다. 그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많이 강조해서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조했었지만 칼뱅은 선포되는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성경은 기록된 말씀인데 이것이 선포되어야만이 하나님 말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시된 말씀, 기록된 말씀, 선포된 말씀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3중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선포되는 설교 말씀 자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말씀의 프라이드를 가져야 한다. 기록된 말씀을 참 말씀으로 하는 것이 바로 계시된 말씀이고 기록된 말씀이 바로 계시된 말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것이 올바로 이해되기 위해서는 선포되지 않으면 안되기에 선포되는 말씀도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19. 루터와 달리 개혁교회의 신학전통으로 두드러지는 칼뱅의 하나님의 섭리론에 대하여 루터 계통의 신학들과 다른 점을 약술하라.

칼뱅은 창조와 섭리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불신자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에도 배려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데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비밀한 계획 안에 일어나는 사건들, 우연이나 운명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격적인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모든 것이 진행된다고 보는 것이다. 일반섭리 만이 아니라 특수섭리까지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따라 조정하신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예정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칼뱅은 만물 창조를 증명하려고 하지 않고 당위로 선포하면서 나아간다. 그런데 단계에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가족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시는 가장으로서의아버지시다. 이를 보여 주는 것이 창세기 창조 기사의 목적이다. 따라서 칼뱅은 하나님의 6 창조 사역은 창조주 하나님을 계시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 준다고 강조한다.

만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서 경영되는데, 이와 같은 경영은 당신의 자녀를 양육하시고 교육하시는 수단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믿음으로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칼뱅은 하나님을 실제로 경외하는 것과 상관없이 단지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채우려고 하는 유해한 지식적 사변에 대해서 경고한다. 모든 인간의 자유의지는 수동성을 면치 못한다는 측면에서 루터의 이론과 같으나 인간 역사 전체를 섭리한다고 주장하는 것 등이 루터의 이론 보다는 좀 더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다.

20. 칼뱅의 율법의 제1, 제2, 제 3사용에 대하여 약술하라.

칼뱅은 아브라함이 죽은 400년이 지난 때에( 3:17),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갈망하며 지치지 않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이 주어졌다고 한다. 십계명과 더불어 모세를 통하여 주신 종교 체제 전체가 율법인데, 이를 구체적으로 분류해 보자면, 첫째, 모세 종교 전체, 둘째 주로 십계명 형태의 도덕법과 예수님의 요약, 셋째, 각종 민사법과 재판법이 포함된 의식법 등이다. 그에 의하면 율법이야말로 인간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 주는 일종의 거울이다. “율법은 거울과 같다.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무력함과 이것에서 일어나는 사악을, 그리고 결국은 가지에서 오는 저주를 본다. 마치 거울이 우리 얼굴에 있는 얼룩들을 보여 주는 것과 같다 한다. 율법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율법의 제 1사용은 율법은 인류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연법으로 율법의 정치적 사용(usus legis politicus)이 된다는 것이고 율법의 제 2 사용은 숨겨진 죄를 고발하는 기능으로 율법의 신학적 사용(usus theologicus)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 기능은 루터도 말한 것이다. 율법의 제 3사용이 칼뱅이론에서 중요한데 그것은 우리를 거룩함으로 인도하는 율법의 사용이라는 것이다. 칼뱅과 개혁파들은 율법의 제3사용을 강조했다.

21. 칼뱅이 예수 그리스도의 3중직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혹은 화해 사역을 어떻게 논증하는지 약술하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 우리의 구속주, 우리의 화목주,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 예수는 죽음을 삼키고 죄를 정복하기 위해 사람이 되셨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연합해서 한 인격이 되신다. 칼뱅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을 때, 성자가 육체 안에 갇혀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제2위격의 자리를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개혁주의 기독론의 특징은 '칼뱅주의 초월'(extra Calvinisticum)이라고 불리는 '높아진 기독론'(high Christology)이다. 반면, 루터는 말씀이 육신이 되실 때 성자는 완전히 초월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고 보는 '낮아진 기독론'(Kenosis Christology)을 주장했다.

우리의 중보자가 분이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이라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1) 이것은 절대적 필연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구원이 달려 있는 신적 작정에서 발원했다(flowed from the divine decree on which the salvation of man depended). (2)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면, 우리를 천국에서 완전히 격리한 죄악의 구름( 59:2) 제거하고 평화를 회복할 중재자의 일을 수가 없다. ① 아담의 후손은 같은 죄인이라 자격이 없고( 3:8), ② (언약의) 머리의 연줄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했으므로 하늘의 천사도 자격이 없다( 1:21–22; 2:10).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되셔서 그의 신성에 우리의 인성을 연결하여 함께 성장하는 방법밖에 없다( 7:14; 1:23).

(1) 사람이 본래 오점이 없다 할지라도 그의 처지가 중보자 없이는 완전히 순결한 분이신 하나님께 도달하기에는 너무도 비천했을 것이다. (2) 그런데 더욱이 지금의 인간은 치명적인 타락으로 죽음과 지옥에 떨어졌고, 무수한 오점과 부패로 더럽혀져 모든 저주에 압도되었다. (3) 이로 말미암아 중보자이신사람 그리스도 예수 우리에게 오셨다.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예언자, 왕, 제사장이라는 삼중직을 수행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자로서, 복음 그 자체가 되셨고, 성도들을 통치하시는 영적인 왕이시고, 제사장으로서 스스로 화목제물이 되어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다. 모든 기독교인들에게도 이 삼중직의 역할이 어느 정도 주어져 있다. 복음을 전할 직책, 죄의 권세를 이기는 권세, 그리고 이웃을 위해 중보기도 할 직책이 있다.

22. 칼뱅의 구원론을 약술하라.

칼뱅의 구원론은 그의 성령론과도 상당 부분 겹친다. 성도들이 누리는 모든 은혜는 예수님이 공로를 통해 이루어 놓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5천 명을 먹이셨지만 자신을 위해서 광야의 돌을 떡으로 만들지는 않으셨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렸지만 자신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예수님의 말씀, 행동, 생각 모두가 성도의 구원과 교회의 영적인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를 연결시켜 예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신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연합시킬 때 우리에게 이신칭의, 회개 성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신비적인 연합을 통해서 하나님과 성도의 화해가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칼뱅의 성령론은 구원론이 되는 것이다. 칼뱅의 구원론에는 예정론이 들어있다. 칼뱅의 예정론은 그의 목회 경험에서 나왔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같은 은혜를 받고도 어떤 사람은 구원의 길에서 떠나고, 어떤 사람은 구원의 길로 들어오는 차이가 있었다. 이를 통해 그는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또한 칼뱅 당시 프랑스에서는 위그노(프랑스 개신교인)들이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고 화형을 당했는데, 예정론의 확신이 있는 성도들은 확신을 가지고 순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것이 칼뱅이 예정론을 강조하게 된 이유들이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은 나의 지성과 의지와 감정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믿음을 주시고 구원을 주신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예정론은 신앙의 수준이 높은 성도들의 신앙고백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 예정론을 전도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소화할 수 없는 음식을 주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23. 칼뱅의 신학에 있어서 예정론에 대한 바른 이해는 무엇인지 약술하라

칼뱅의 예정론은 대단히 어려운 개념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믿는자들을 선택하시어 구원에 이르도록, 또 어떤 사람은 멸망에 떨어지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선택된 신자들에게는 특별한 소명이 있다는 것이다. 칼뱅의 구원론에는 예정론이 들어있다. 칼뱅의 예정론은 그의 목회 경험에서 나왔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같은 은혜를 받고도 어떤 사람은 구원의 길에서 떠나고, 어떤 사람은 구원의 길로 들어오는 차이가 있었다. 이를 통해 그는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또한 칼뱅 당시 프랑스에서는 위그노(프랑스 개신교인)들이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고 화형을 당했는데, 예정론의 확신이 있는 성도들은 확신을 가지고 순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것이 칼뱅이 예정론을 강조하게 된 이유들이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은 나의 지성과 의지와 감정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믿음을 주시고 구원을 주신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는 것이다. 예정론은 신앙의 수준이 높은 성도들의 신앙고백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 예정론을 전도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소화할 수 없는 음식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한다. 칼뱅은 그의 예정론을 신론이 아닌 구원론에서 전개한다. 이러한 순서에 주목하는 것은 인간 구원의 근거이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값없는 자비가 구체적으로 선포되기 때문이다. 섭리 교리가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교리의 완성이듯이, 예정 교리는 구속주 하나님에 관한 교리의 완성이다. 이때 예정 교리는 성도에게 확신과 위로를 준다. 성경을 대할 지나친 호기심은 금물이지만, 반대로 주님께서 명확하게 말씀하시고 보이신 것에 침묵하는 것도 금물이라고 역설하면서 칼뱅은 예정 교리를 말할 수밖에 없고, 선택 교리가 주는 위로, 확신, 그리고 선한 믿음의 열매들을 선포할 수밖에 없다.

24. 칼뱅 신학에서 교회의 표지(notae ecclesiae)는 무엇인지 루터와 비교하여 약술하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영적인 유익을 주시려고 교회를 세우셨다. 하나님의 교회를 나타내는 표지(sign)는 말씀 설교와 성례이다. 교회 안에는 말씀 설교와 세례ㆍ성만찬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성경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지 않으면 그곳에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세례와 성만찬은 주님이 제정하셨다. 믿음으로 받는 세례는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연합하는 표식이다. 세례는 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설교는 귀로 듣는 말씀이지만, 성만찬은 눈으로 보고 입으로 느끼면서 더 친숙하게 느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칼뱅은 칭의와 성화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시는 두가지 은혜로 보았다. 그는 세례를 칭의와 관련 시켰고, 성만찬은 성화와 관련시켰다. 세례와 중생(칭의)은 한 번만 받는 것이지만, 성만찬은 반복된다. 세례 이후 성만찬을 계속 받을 때마다 자신의 삶을 살펴보고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루터는 교회가 성례전도 아니고 교직제도도 아니고 ‘성도의 교제’라고 했다.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하는 표지(signs)는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바르게 집행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회의 특징은 ‘사도적 계승’이 아니라 말씀을 선포하고 듣는 것이다. 루터의 교회론에서 또한 중요한 것은 ‘만인제사장설’(universal priesthood)인데 모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정한 사람을 불러 목회사역을 맡기시는데 여기서 직분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나중에 칼뱅의 교회 직분론으로 발전한다.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7개 성례전에서 오직 세례와 성만찬을 성례로 인정했는데 그는 성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언약, 표지(sign), 믿음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세례와 성만찬은 예수님께서 행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고, 물과 잔과 떡이라는 물질적인 표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례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효력과 의미가 발생한다고 한다.

25. 교회의 직분론에 있어서 루터와 칼뱅의 차이는 무엇인가?

칼뱅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믿음을 돕기 위해 교회를 주셨고, 그 안에 직분을 세우셨다고 했다. 그는 성경연구를 통해서 목사, 장로, 교사, 집사의 네 가지 직분은 언제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직분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고,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직을 가지고 있으며 목사가 아니라도 필요한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고, 장로가 아니어도 다른 성도들의 영적인 문제를 살피고 도울 수 있다고 한다. 집사가 아니라도 이웃을 구제하고 봉사할 수 있고, 신학자가 아니어도 주일학교 교사로 섬길 수 있는데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와 분수에 따라 섬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며 자기 능력에 맞지 않는 직분을 고집하거나 기존의 직분을 무시하게 되면 교회 질서가 어지러워지기 때문에 성도는 전 교회의 화합과 질서를 고려하면서 겸손하게 섬겨야 한다고 한다.

반면 루터는 직분에 대해서 논문 ‘독일 귀족에게 고함’(1520.8)에서 만인 제사장론을 주장하면서 신도들은 모든 사람들이 제사장이 되어 생활을 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루터는 이 교리를 통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개인의 가치를 발견하고 존중하도록 만들었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사제가 제사장이고 일반 교인들은 사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루터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제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제사장이라고 가르쳤다 전에는 사제들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로 여겼으나, 루터는 모든 직업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이라고 가르쳤다. 전에는 교회에서 성만찬을 할 때 사제들만 빵과 포도주를 취하고 일반 교인들에게는 빵만 주었는데 이제는 모든 개인에게 빵과 포도주 모두를 분배하였다. 루터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기능은 다를지라도 신분에 있어서는 똑 같은 하나님의 자녀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주장하였다. 루터의 만인제사장 교리는 중세의 집단적 세계관이 근대의 개인적 세계관으로 뒤바뀌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26. 역사적으로 교회가 발전시킨 3가지 정치제도로 감독제, 회중제, 장로제가 무엇인지 약술하라.

교회는 역사적으로 세 가지 정치제도를 발달시켰다. 첫째, 가톨릭,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는 감독 (주교)제도를 가지고 있다. 감독제도는 감독이 예배와 설교 행정의 권한을 대표한다. 둘째, 회중 제도이다. 교회 행정과 지도자 선출에 성도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셋째, 장로제도는 의회 제도를 택하고 있다. 교인들의 투표로 장로를 뽑고, 중요한 결정들을 당회에서 하는 것이다. 칼뱅은 모든 교인들이 모여서 결정할 때 때로는 분위기와 기분에 좌우 될 수 있기 때문에 대표들이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는 귀족적 민주주의 정치를 선호했다.

칼뱅은 제네바 시 안에 컨시스토리(Consistory)라는 제도를 세웠다. 그것은 오늘날의 노회와 비슷한 제도였다. 그후 장로교회는 당회(session), 노회(presbytery), 대회(synod), 총회(assembly)를 발전시켰다. 개교회 안에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가 있다. 한 지역 안에는 그 지역의 목사와 장로들이 모여서 노회를 구성한다. 장로는 개 교회에 소속되지만 장로교 목사는 노회에 소속된다. 장로교회에서는 교인들이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그 목사가 소속된 노회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청빙이 된다. 주(state)나 도(province) 단위의 총회를 대회라고 한다. 그리고 전국적인 기관인 총회가 있다. 노회의 상위 기관은 총회이다. 그러나 장로교의 법을 어기기 않는 한 총회가 노회의 결정에 간섭을 할 수 없고, 노회도 당회의 결정에 간섭을 할 수 없는 독자권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칼뱅주의가 들어간 나라들, 특히 스코틀랜드, 영국, 미국, 네덜란드는 이런 장로정치제도의 영향으로 의회 민주주의가 일찍 발전했다. 대의제도(의회) 역시 종교적 영향(장로교)으로 발달된 것이다. 당시 종교의 위세는 사회, 정치, 문화 등 모든 면에 걸쳐 발휘되고 있었다.

27. 칼뱅과 개혁교회 전통이 강조하는 치리(Church Discipline)의 목적과 절차는 어떠한지 약술하라

칼뱅은 교회의 치리를 중시했는데 이 치리를 배격하는 사람을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람으로 간주했다. 개혁교회는 이러한 치리를 강조하는데 그 까닭은 루터가 이신칭의라고 하는 교리적 구원론의 가르침에 머무는 경향이 있어서 칼뱅은 개혁교회는 성화를 강조하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삶, 제 3 사역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로마 가톨릭의 경우는 이러한 교회의 치리를 너무 강조하였으며 루터는 이 부분이 조금 약했다. 칼뱅은 이 치리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이며 그 절차는 기독교강요의 교회정치에 언급된 대로 엄정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루터와 칼뱅도 지상에는 완전주의자들로 구성된 공동체는 있을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교회에는 질서가 필요하고 그것을 유지할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칼뱅에 따르면 교회는 첫째, 교리에 관한 권세, 둘째, 입법에 관한 권세, 셋째, 재판에 관한 권세를 갖는다. 교리권에는 다시 신조를 제정하는 권세와 신조를 설명하는 권세 부분이 있다. 교회의 참된 권세는 교회가 얼마만큼이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느냐와 비례한다. 다시 말하여, 교회는 교리를 작성할 때에 성경에 근거해야 하고, 모든 반론들을 성경으로써 물리쳐야 한다. 교회가 진리를 권위 있게 가르치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의 규정과 표준에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한도를 넘어선 로마 가톨릭은 교리의 순수성을 완전히 더럽혔다는 것이 칼뱅의 분석이다.

28. 성만찬 교리에 있어서 루터와 칼뱅의 차이는 무엇인지 약술하라.

칼뱅은 외형적 수단의 사용에 인색했는데 성례전에는 참여하지만 루터와는 반대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는 성찬에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루터는 성만찬에서 떡과 잔의 본질이 살과 피로 변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하신 몸은 신성과 인성 사이에 '속성의 교류'가 일어나서 우주 전체에 가득 찰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의 몸은 우리에게 주어진 떡과 즙 안에(in) 함께(with) 밑에(under) 실재(real presence) 한다고 보았다. 루터는 주님이 “이것은 내 몸이다 내 피다.”라고 말한 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였다.

칼뱅은 루터와 츠빙글리와 다르면서도 그 둘을 중재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칼뱅은 루터처럼 성만찬에 예수님이 실재로 임재(real presence)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츠빙글리처럼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의 몸이 직접 오실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 대신 주님은 성령으로 성만찬에 오셔서(spiritually real presence) 우리를 주님과 연결해 준다고 보았다. 그래서 칼뱅은 기독론적으로는 츠빙글리와 일치했고, 실재 임재라는 면에서는 루터와 일치했다. 칼뱅의 성만찬론은 에큐메니칼 했다. 오늘날 장로교회의 성만찬론은 츠빙글리와 칼뱅의 사상을 따르고 있다. 성경은 루터, 츠빙글리, 칼뱅의 성만찬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또한 현대에도 성만찬론은 개신교인들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지 않다. 성만찬의 신비는 이성과 지성으로 논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영적으로 받아들일 때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된다.

29. 국가 이해에 있어서 루터와 칼뱅의 차이는 무엇인지 약술하라.

루터는 국가와 교회가 모두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가는 율법의 시민적 기능에 속하며 교회는 복음에 속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나님이 국가를 주신 것은 악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신자들은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에 시민적 통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복음의 왕국은 국가의 통치를 받지 않는다.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은 오늘날처럼 정교 분리를 주장하는 시대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장로교회는 다른 교회들에 비해 정의, 인권, 평화를 위한 사회참여에 적극적이다. 독일에서는 루터교가 강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히틀러가 집권할 때에 루터교회가 히틀러를 지지했다. 왜냐하면 루터교회에서는 국가정부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권력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칼뱅도 루터처럼 두 왕국설을 지지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구세주이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주권과 교회의 주권을 다 가지고 계신다. 따라서 칼뱅은 국가 권력이 하나님의 질서에 순응하는 통치를 할 때에 성도와 교회는 국가권력에 순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 권력이 신앙의 양심에 어긋나는 것을 강요할 때는 교회가 저항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대표자를 통해서 질서 있게 저항해야 한다고 했다. 칼뱅에 따르면, 교회와 성례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정치 질서 역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리스도의 사회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게 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하나의 도움이다. 그러나 당시 재세례파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오해하여 혁명적이고 무정부적인 신앙관을 드러내 보였다. 그들은 세상의 권력과 법이 있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를 누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졌다. 하지만 칼뱅은 성경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우리를 구속적으로 다스리시는 동시에 세속 정부인 국가를 통해서도 우리를 통치하신다고 본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선양이 영역에 대한 통치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므로 칼뱅은 비록 가지 통치를 구분은 하되, 서로 반대되는 것은 아니라고 박는다. 그리스도인은 국가 통치에도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0. 종교개혁의 두 왕국 사상은 참된 세속화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크리스찬은 의인이면서 죄인인 까닭에 두 왕국에 모두 예속되어 있다. 그래서 사회와 국가의 법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발전되면 세상과 교회가 분리되는 결과를 낳는다. 두 왕국이 완전히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크리스천은 세속 역사 속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두 왕국 사상이 성경에 기반하고 있다. 이 세상으로 보냄 받은 사명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세속화의 신학’에서 ‘직업소명설’이 도출된다. 중세교회는 교회의 일은 성직, 평신도의 직업은 세속직이라고 구분했으나 종교개혁가들은 하나님께 ‘소명’으로 받은 모든 직업은 성직이라고 보았다. 하나님은 교회만이 아니라 세속 사회의 주권자이시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거룩해야 하는 것처럼 세속 안에서도 거룩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모든 직업은 성직이다. 그러나 교회의 직분도 세속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면 세속적인 것이다. 세속과 거룩성은 장소와 직업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로 구분되는 것이다.

31. 스코틀랜드의 국민언약(National Covenant)이 갖는 교회사적, 세계사적 의의를 약술하라.

찰스 1세는 교회법과 예배의식을 통일시키겠다며 스코틀랜드에 새로운 ‘공동기도서’를 강요 하였 는데 이에 대해 스코틀랜드 장로교는 폭동을 일으키고 제 2의 종교개혁이라 불리우는 국민 언약을 선언한다. 163년 그레이프라이어 교회당에서 3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서명을 했고 그 사본을 전국에 돌려서 전 국민의 60%가 서명을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국왕이 종교를 존중하지 않으면 무력으로라도 저항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이들은 장로교회 정치를 ‘하나님의 제도’라고 선언하였다. 이어서 12월 글래스고 총회 때는 공동기도서 불법이라는 결정과 함께, 주교제도를 아예 폐지하고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모든 비장로회적 요소를 제거하고 장로교회를 국교로 삼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장로교회 정치를 ‘하나님이 주신 제도’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동안 장로회 제도를 가장 잘 개혁된 교회라고 애둘러 표현했다면 이제는 신구약 성경의 근거와 함께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제도’였음을 명백히 표방한 것이다.

32.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구성하는 두 나라 한 교회 세 견해는 각각 무엇이며 그 결과는 무엇인지 약술하라.

두나라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의미하며 두 나라의 대표들이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통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제정하면서 같은 교리로 통일한 것을 의미한다. 세 견해라는 것은 장로교회파와 독립파, 주최측인 에라스투스파를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세 분파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논쟁을 계속하면서도 마침내 합의에 도달하게 된다. 장로파는 다수라서 힘이 있었고, 의회를 등에 업은 에라스투스파는 주최측이라서 힘이 있었으며 독립파는 군부와 친했습니다. 내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던 크롬웰 장군이 독립파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5년여에 걸친 치열한 논쟁 끝에 종교개혁의 정수라고 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을 이끌어 내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33. 이상적인 교회개혁의 원리와 방법에 대해 논술하라

우리는 이 시대 바람직한 교회개혁을 위해 종교개혁의 전통을 선별적으로 수용, 발전시켜야 한다.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한다. 최근의 사조는 하나님이 기록하신 성경을 거대담론을 언어와 상징으로 표현한 권력놀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들을 실재와 부합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하면서 실용적 진리만이 유일한 종류의 진리라고 하는 종교적 상대주의를 표방한다. 교회는 이러한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하나님은 초월적인 존재이시며 인간 실존에 침투해 들어오셔서 인류 구원의 원대한 계획을 실행해 가고 계시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능력과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시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악한 영들은 일곱 길로 달아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핵 시대를 살아가면서 삶의 온갖 변화와 불확실함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여전히 구원할 수 있는 전능하심을 지닌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교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성서를 포함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해결하여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졌을 뿐 아니라, 그들 주위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정돈하기 위해 주어졌음을 안다. 성경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의 환경을 조정하신다는 생각은 우리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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