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사(롤란트 베인턴 저)

홍치모/이훈영 역(크리스찬 다이제스트)

2. 리뷰

우리가 종교개혁이라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개념과는 다르게 다양한 형태의 종교개혁이 있었고 이러한 다양성은 현대 신학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패러다임들이 하나님의 복음과 어떻게 연결되고 또한 연결시켜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개혁을 어떻게 진행했으며 차이점과 공통점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그들의 사상을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선 종교개혁의 양대 거두라고 할 수 있는 루터파와 칼빈주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좀 더 면밀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루터가 처음에 교황의 권위에 도전한 것은 잘못된 신앙을 교정하려는 것으로서 일이 그처럼 커지게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 루터는 종교개혁을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로마 가톨릭주이자들과 맞서야 했고 한편으로는 급진주의자들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자신들을 이미 ‘창세전부터 예정되어 있는’ 신도들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보다 더 과감한 개혁을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내걸면서 이신칭의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사랑의 행함이나 거룩한 삶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는 비난이 있는데 칼빈주의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 더불어 거룩한 생활을 통한 성화를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프로테스탄트 신학이 결코 편향된 가르침이 아니라 균형 잡힌 사상임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성화에의 강조는 그가 주장하는 ‘예정론’과는 논리적으로 배치되는 부분이 있어서 신학적으로 더 깊이 연구해야 하는 과제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칼빈주의가 구원이 예정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모든 것을 성령에 의지하고 기독교적 확신으로 과감히 개혁하고 고쳐 나간 것은 참으로 위대한 공헌이라고 봐야 한다. 칼빈주의는 현실에 더욱 신학적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특별히 역사적으로는 소수파로 분류되고 있는 재세례파와 신비주의 등이 후대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는데 이들을 통해서 신학적 사상이 풍부해졌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수많은 이단교파가 이러한 이론 들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결국 이러한 선별적 능력은 이러한 좋은 서적을 광범위하게 탐독하여 지식을 함양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인 롤란드 베인튼(R.H.Bainton)의 종교개혁사는 자신이 수십년간 강의한 것을 압축한 것으로 종교개혁의 역사가 녹아 있다. 그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해주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이번 강좌에서 중시하고 있는 루터파와 칼빈주의의 심화과정이나 비교 등은 상대적으로 많이 취급하고 있지 않아서 좀 아쉬운 감이 있다. 때문에 다른 교재로 보충을 하여야 했다. 역사적으로 루터파와 칼빈파가 대립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루터의 입장에서는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당시 로마 가톨릭의 부패에 정면으로 맞섰던 것으로서 그러한 실제 행동의 와중에서 교리적으로 후대에 비판을 받는 부분은 어떻게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구원의 믿음에서 나온다는 그의 탁월한 안목이나 목숨을 건 소신 등을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칼빈주의는 교회와 학교에만 머물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분야에 걸친 개혁운동이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부의 균등한 분배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부를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칼빈의 ‘직업소명설’도 이러한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입장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칼빈이 얘기하는 ‘섭리’란 결정론이나 운명론이 아닌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허용하고 이 자유와 책임과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는 것인데 이 이론은 결국 신도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나 끊임없이 성화과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 과정은 죽기 직전까지라고 하는 조직신학의 논리를 설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기독교강요는 오늘날의 신학으로 보아도 명쾌하고 탁월한 것이 틀림 없다. 아마도 그 때 당시로서는 참신한 신학이론이었을 텐데 단숨에 명쾌하게 신학 이론을 정립하고 제도적으로 완비된 교회조직의 이론적인 기반이 되었다. 그가 운영한 제네바 아카데미는 종교개혁 사상 특히 개혁교회 전통을 온 유럽으로 전파하는 요람이었는데 유럽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 제네바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고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배운 개혁교회의 이상을 실현하였으며, 이를 통해 개혁교회 전통은 명실상부한 국제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동 아카데미의 두드러진 특징중 하나가 인문학과 교양에 대한 강조였다고 한다. 특별계시뿐 아니라 일반계시도 중시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로마가톨릭의 부패를 극복하고 새로이 탄생한 개혁주의적 신학이 여전히 분파 주의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일러니이다. 복음전파를 아직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기독교 내에 있는 갈등이다. 정통교단내에서도 통일되지 않는 수많은 논쟁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외적으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고민 해야 한다. 이 문제는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개인 신앙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회의감하고도 연결이 된다. 교회는 개인 신앙의 발전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러나 기독교 신학은 ‘공동체의 구원’을 분명히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종교개혁사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 현대 한국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위해서는 많은 묵상과 학습, 그리고 실천적 삶까지 수반되어야 한다. 부족하고 죄 많은 우리 스스로 부족한 점을 채우고 행실을 되돌아보며 우리가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지 자격이나 소명부터 점검해본 뒤 실천해야 한다. 또한 신학이론의 차원에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칼빈은 ‘예정론’을 주장하면서도 또한 실천적인 ‘성화과정’을 강조한다. 교수님께서 강의에서도 설명 하신 바 같이 이것이 변증법적인 논리이며 결정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이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난해하다. 로마서 7장 8장을 읽다가 느끼던 논리의 비약을 다시 여기서도 마주하게 된다. 어떤 연결고리가 있어야 이 의문이 풀리는가. 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그것은 결국 완성되지 않지만 인간적인 노력을 끝까지 기울여야 한다는 논리로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결코 달성할 수 없지만 죽을 때까지 노력하여야 한다’ 여기서 철학과 신학을 좀 더 공부해야 한다는 필요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이고 현대 신학은 어거스틴에 대한 주석이라는 말이 있다. 철학과 신학이 플라톤과 어거스틴 이상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말인 동시에 또 그들의 영향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의미일 것이고 또한 플라톤과 어거스틴을 모르고는 철학도, 신학도 기반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종교개혁사를 읽으면서 어거스틴을 연구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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