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가 캔 보석 - 베이비부머(baby boomer) 에게 보내는 제안 ③

이어지는 본문의 1부에서 나는 먼저 성경을 읽고 암기하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여기에는 성경을 읽어 나가는 방법론을 소개하고, 다음으로 성경 66권을 각권별로 주제어와 대칭시켜 암기하는 방법과 함께 성경의 1189장을 각 장별로 주제어를 부여하여 암기하는 '황금장' 표를 제공한다. 현재 이것을 이미지와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미지 연결작업은 완료되는대로 추가할 것이다. 2부에서는 성서 언어학의 학문적 성과를 설명하고 성서언어학을 통해 원래 하나였던 언어의 기원이 어디인지를 추적할 것이다. 성서언어학에 대한 결론이 아직 나지 않았음에도 앞에 놓는 것은 은퇴자들이 성경공부를 통해서 현실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어 성경공부에 대한 결단을 자극하기 위함이다. 성서언어학은  연구의 진전에 따라 후일에 별도의 단행본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그 다음으로 3부에서는 “개인 구원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 고찰해 볼 것이며 4부에서는 노년의 교회에서의 활동을 염두에 두고 “평신도(laity) 지도자의 리더쉽(leadership)”에 대해 살펴 본다. 5부에서 우리는 성서의 5대제국이 흥기하고 멸망하는 과정을 개관한다. 특히 신약과 구약의  중간기 시대에 유대교를 이스라엘 민족에게 남긴 채 신약시대를 열기 위해 헬라어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확인해 볼 것이다. 이어 6부에서는 종교개혁의 정수(精粹)인 웨스트민스터 신조와 대소요리 문답을 통해서 현대 신학의 2대 논쟁, 즉 킹제임스버전(KJV) 논란과 방언 기도(glossolalia prayer, tongue) 논란의 실체를 규명해 보고 7부에서 방언 기도(glossolalia prayer)와 은사로서의 외국어 방언(tongues)에 대해서 어떻게 결론을 내리고 있는지를 살펴 본다. 또한 8부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본 세상사”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에서는 본서 전체의 주제, 즉 은퇴자에게 보내는 황홀한 제안으로 끝을 맺을 것이다.

필자는 이들 시리즈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소명을 발견하는 일반적인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을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엮어나갔다. 언어학적인 성경 해석이 필자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2부의 성경언어학은 원래 하나였던 언어가 어떤 언어였는지를 찾아 가는 과정에서 세상에 대한, 하나의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며 관심 있는 많은 신도들의 동참을 요청하는 것이다. 특별히 6부와 7부에서 현대교회의 방언기도(glossolalia prayer) 와 외국어로서의 방언(tongues)은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인 외국어 은사를 방언기도(glossolalia prayer)와 혼동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이고 결국 외국어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시는 은혜임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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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자가 캔 보석 - 베이비부머(baby boomer) 에게 보내는 제안 ②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늦은 나이에 신학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더구나 인간으로서의 약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평범한 속물인 내가 신학공부를 한다는 것은 것은 접근할 수 없는 거대한 벽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크리스찬들끼리 통용되는 말 중에 이러한 딜레마에 있는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기가 막힌 용어가 있다. “평신도 신학”이 그것이다. 평신도 신학은 말 그대로 평신도로서 성경을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은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목회자의 길로 가는 것은 원치 않고 단순히 평신도의 입장에서 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신도들에게는 일종의 ‘복음’과도 같은 용어이다. 필자도 그렇게 ‘평신도 신학자’로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를 캐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였다. 마침 아이의 교육문제와 연결되어 해외에 가족이 함께 나가서 공부시키기로 하고 북미에 있는 조그마한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학교는 온라인 수업도 가능했기 때문에 가족이있는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신학 공부를하였다. 세상에는 고수들이 참 많다. 신학을 공부하는 평신도들 중에도 많은 고수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세속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지켜 나가면서도 신학을, 하나님 믿는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직업이든 정체성을 지키면서 세상으로 자신을 보내주신 이를 섬기는 소명에 부합한다면 신성하다. 초대교회 당시 뿐만 아니라 중세시대까지 ‘세상에서의 직업’은 신성하지 않은 일로 여기고 속세를 떠나 기도나 수양 생활을 하는 것을 당연시하였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 보면 이러한 생각은 잘 못된 것이다. 성경은 일과 소명을 구분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도 목수였고 사도 바울도 천막 짓는 일을 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종교개혁가들, 특히 존 칼빈에 이르러 이론화 된다. 그는 각자에게 주어진 직업적 소명에 충실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결론적으로 신학공부를 했다고 해서, 신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다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소명을 발견해서 그것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야 말로 세상과 나를 만드신 이를 기쁘게 하는 일이다.  나의 제안은 은퇴 후 성경공부, 나아가서 신학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졸업후에 목회직이나 선교사를 소명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길로 나아가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목회자의 길을 걷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이다. 따라서 기존의 취미나 적성을 살려 생업을 이어 나가면서, 교회내에서는 수준 높은 치리 장로 같은 평신도 리더가 되면 된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공동체의 구원이 필수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로서 신도는 그 지체로서 유기체적인 기능을 한다. 개인은 공동체 안에서 은사와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각자는 유일하게 독특한 존재이며, 우리의 열망은 서로가 다르지만 상호 보완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공동체 안에서다.

목회자가 아니라도 복음사역자로 소명을 완수할 길은 얼마든지 있다. 자신의 재능과 열망에 따라 그 길로 매진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 개척에 능한 사람도 있고 선교사역에 열심인 사람도 있다.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도 있는가 하면 통역이나 번역에 능한 사람도 있다. 나는 외국어 학습에 흥미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어학관련 과목을 좋아하였다. 나는국어, 고전 한문, 고전 국어, 영어 등 어문학에는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과목에는 흥미가 없었다. 모든 것을 잘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적성을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감사한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비로소 외국어 학습과 저술활동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확장하는 일이 바로 나의 소명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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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자가 캔 보석 - 베이비부머(baby boomer) 에게 보내는 제안 ①

2020년 현재 60세 전후가 된 사람들을 ‘베이비 부머(baby boomer)라고 부른다. 전후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된 시기에 출생한 사람들이다.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이다. 나는 도시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초등학교들은 학생들이 너무 많아 학교측에서는 학년당 10개 반을 운영하였었다. 한 타임의 1개 반이 100명 전후였고 이것을 3교대로 해서 운영했으니까 한 학년당 3,000명의 학생이 같이 학교를 다녔다. 6학년까지 18,000여명이 3교대로 좁은 학교에서 로테이션을 하였다. 이것은 비단 대도시 만이 아니라 한국 전체가 그러했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학생이 없어 학교가 폐쇄되는 작금의 현실과는 참으로 많이 달랐다.


우리 시대에 60까지 다닐 수 있는 직장은 많지 않다. 그 이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설령 60까지 근무한다고 하더라도 60이라는 나이는 은퇴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이다. 성공적인 인생을 산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60~90까지가 자신의 황금시대라고 고백하고 있다. 60정도 되었을 때 이제 지혜를 나누어 줄 수도 있고 격려와 칭찬을 나누어 줄 아량도 생기게 된다. 앞만 보고 질주해 왔던 젊은 날의 질풍노도(疾風怒濤, the storm and stress)에서 벗어나 자신의 소명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는 시기가 된다. 보통 65세 정도를 은퇴하는 나이로 보는 것 같다. 그러므로 55세에서 65세 정도의 기간이 노년의 과도기로 볼 수 있다. 소명은 경력과는 다르다. 경력은 자신이 직업이나 특기로서 살아오면서 쌓아 온 것이지만, 소명은 우리가 세상에 나와 있는 목적, 즉 정체성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은 이러한 노년기의 과도기가 큰 기회가 된다. 이러한 시기에 사람들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으며 세상을 관조해 볼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의 경우는 은퇴 이전의 삶은 ‘전주곡’이었을 뿐이고 이제부터의 인생이 진짜 자신의 삶이라고 고백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은퇴 이후에야 자신의 진정한 소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사람이 많다. 소명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바뀐다거나 새로 깨닫지 못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소명을 둘러싼 환경이 바뀔 뿐이다. 나의 소명을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필자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 비교적 안정적이고 페이가 좋은 직장에 입사하여 20년 가까이 근무했다. 내가 근무하던 직장에서는 사원들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잘 퇴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정년퇴직까지 근무한다. 정년 퇴직 전에 퇴사하는 경우는 10% 미만이다. 그런데 나는 10년이나 먼저 명예 퇴직으로 나오게 되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저 월급을 받는 인생이 아닌, 좀 더 의미 있는 생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호기심이 조기퇴직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퇴직한 뒤에 나는 조그마한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여러가지 취미활동을 하고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술자리 등으로 5년 정도의 세월을 보냈다. 그 후 나는 '100세 시대'에 뭘 하면 늙은 나이까지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다. 그러다가 마침 지구촌 교회에서 운영하는 경기도 가평소재 필그림하우스에서 나는 4박 5일간의 "성경통독반"에 참여하게 된다.


이 코스는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그때까지 교회는 다니고 있었지만 일요일에만 가서 예배 드리고 오는 ‘주일 신자’였다. 이 성경통독 코스는 참으로 강행군이다. 우리는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오로지 성경 읽어주는 것을 따라 읽어야 하는데 다 마치고 난 뒤에도 머리 속에 성경 내용이 남는 것은 별로 없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코스가 끝나고 나면 마라톤 완주 후에 완주 메달을 받는 것과 같이 형식적으로 코스 수료증을 받게 된다. 그 자체의 의미는 별 것이 아니었지만 그것이 가져온 후 폭풍은 아마도 인생 하반기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엄청난 것이었다. 이 때 신학교에서 성경공부를 해 볼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고 성경공부를 하되 평소에 좋아하는 언어 학습에 중점을 두고 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게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다언어(multi-lingual) 성경학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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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윤리 - ⑧ 성적 문란​

최근 그리스도인(목회자)들의 성적 문란행위가 세상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목회자와 여성 신도들의 불륜문제가 아닐까 한다. 사이비(pseudo)나 이단종교에서 대형 성문란 사건이 터지는 것을 많이 보아 왔을 것이다. 사실 사이비, 이단종파의 대부분은 금전적인 부패와 성적문란 등은 충분히 예상되는 타락이다. 그들의 교리라는 것이 애당초 사람들을 현혹시켜 그릇된 길로 유도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재산을 빼앗고 육체적으로 타락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통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교회들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이단, 사이비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최근에  목회자의 성적 윤리와 관련한 다양한 세미나에서 개최된 여러 문제점과 대책을 살펴보았다.

전문 직업군 중에 성윤리, 성범죄 관련 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케이스가 목회직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교육 등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예방과 사후 대책 역시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고 한다. 어떤 분은 "이진 아웃제(두 번 잘못하면 퇴출하는 것)"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목회자도 인간으로서의 약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유혹 받을 수도 있고 스스로 탈선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행위가 반복되는 경우라면 상습이며 질병으로 보아야 하므로 목회직을 맡으면 안되고 이미 목회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빨리 물러나서 다른 일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한다. 그러나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아서 오랫동안 사역해 온 직업으로서의 목회직을 단번에 떠나기도 어려울 것이고 또한 교단에서도 여러 사정을 고려해 엄정한 처벌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성에 대한 욕망은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모두는 회심이전이나 이후를 막론하고 마음으로라도 이미 범죄하였으며 앞으로도 범죄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딜레마를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 7:23)"라고 통찰하고 있다. 결국 목회자의 성윤리 문제를 풀어나가는 핵심은 목회자의 윤리에 맡기는 것 보다는 시스템으로 갖추어야 할 것 같다. 목회자의 건강한 부부관계와 함께 예방교육의 강화, 그리고 목회자가 탈선하고 타락할 수 있는 자리 자체를 피하는 것 등은 흔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예방책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목회자 자신이 항상 죄인임을 인식하고 통렬한 회개와 자기반성을 통한 간절한 기도가 유일한 내적 해결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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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윤리 - ⑦  명예, 영적 탈진 그리고 돈​

목회자를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면서 한편으로 명예를 추구하는 것 자체는 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순수한 의미에서의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성결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장려해야 할 일이다. 다만 명예를 위하여 위선적인 행동을 한다든지, 진실한 신앙생활 보다는 명예를 얻는 데만 치중한다든지 한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길을 걷는 것이다.  이렇게 올바르지 못한 신앙생활을 이어갈 때 그리스도인의 영적탈진을 겪게 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수시로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이' 행동하는 때가 많다.  특별히 교회생활이나 사회생활 속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그들이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비난할 때라든지,  신실한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인생에서 역경과 고난만 계속될 때라든지 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탈진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은 믿음이 약할 때 발생한다. 믿음이 굳건할 때 고난은 고난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가 진심으로 십자가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회개할 때 놀라웁게도 고난이 기쁨으로 승화되는 것을 겪는다. 성경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 (로마서 5:3–4) 이라고 증명해주고 있다. 고난이 오히려 소망을 이루는 바탕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신앙생활이 영적탈진을 막아준다.

돈(재화)의 경우는 현실적으로 목회를 지속할 수 있느냐 그만 두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사실 많지 않은 것 같다. 늦은 나이에 교회에 출석하면서 교회내에서 줄곧 여러 문제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많이 봐왔다. 심지어는 장로파, 목사파로 나뉘어 서로 소송전을 벌이면서 교회 밖의 사람들도 하지 않을 행위들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 금전적인 문제였는데 이렇게 한 번 싸움이 벌어지고 나면 다시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대방이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인력을 동원해서 상대 파벌의 강대상(pulpit)을 점령하고 예배당을 지키고 서서 예배를 훼방하거나 하는 일까지 감행한다. 돈 문제도 물론 심각하지만 교회내에서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이 일반 신도들을 더 힘들게 한다. 내가 오랬동안 다니던 교회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고 지금도 그들은 파벌을 지어 싸움중이다. 그 교회는 정식 신도가 8,000명이 넘는 교회여서 싸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돈이 풍족했다. 목회자에게 주는 사례금이나 선교, 교육, 구제 등 각종 교회활동에 지출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돈을 엉뚱한 곳에 쓴다고 법적 소송이 일어났던 것이었다. 교회의 돈을 각자 자기들 돈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런데 비슷한 상황을 이 곳 북미에 와서도 겪었다. 이민 교회의 현실은 대부분 금전적으로도 힘들고 교인들도 적어서 목회자들이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 큰 교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교인부족으로 어려워 한다. 그런데 이 작은 교회에서 교인들끼리 합심을 해서 운영해도 부족한데 여기서도 파당을 지어 싸움을 하고 있다. 역시 돈에 관련된 다툼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역사상의 초대교회 신도들을 부러워 한다. 그들은 가난했어도 먹을 것이 부족했어도 서로 나누면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신앙생활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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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윤리 - ⑥ 성적소수(동성애) 문제​

동성간의 성행위에 대해서 로마서 1장 23~27절은 다른 문란한 성적 타락과 함께 설명을 한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로마서 1:23–27, NKRV). 성적인 문란이나 기형적인 성행위 등에 대해서 원인을 암시하는 듯한 구절들이다. 사도 바울은 번갈아 가면서 우상숭배와 육체적 타락을 두 번에 걸쳐 반복적이고 점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논리를  살펴보자. 먼저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성적으로 타락하도록 내버려 두신다 --->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바꾸어 피조물을 하나님 보다 더 경배한다 --->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동성애 등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하도록 내버려 두신다. 여기에서 "내버려 두다"는 헬라어로 "paradidwmi"로서 "surrender", "turn over"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우상숭배가 없었더라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까지 성적으로 타락하여 참담한 상태가 되도록 놔두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성적타락 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인 것이다. 성경에서 반복하여 기술하는 것은 강조를 뜻한다.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이 인간들을 정욕과 부끄러운 욕심에 빠져들도록 내버려 두신 것이다. 특별히 남자들끼리의 행위를 "역리", "부끄러운 일" 등으로 표현하면서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우상 숭배의 배후에는 사탄, 즉 어둠의 영과 타락한 세상 권세가 존재한다고 설명한다(고전 10:19–22). 이러한 성경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으로 하나님을 거역함으로써 하나님께 범죄했고 이로 인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우매해지면서 우상숭배를 하게 된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육체적 타락에 넘어 가도록 놓아 두시고 또한 역리적인 육체적 타락에 까지 이르게 하신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육체적 타락의 최정점에 동성애가 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도 결국은 동성애로 인한 성적 타락이었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서 우리는  우상숭배와 성적타락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또한 우상숭배를 배격하고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의지하며 그의 자비를 간구하는 것 만이, 동성애를 포함한 성적타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성경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우리의 주변 사람중에서 (혹은 가족 구성원중의 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동성애와 같은 끔찍한 타락에 빠지는 사람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있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바를 완곡하게(euphemistically)  설명해 주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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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윤리 - ⑤ 팬데믹(pandemic)화된 4차 산업혁명 시대​

그동안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처해야 할 교회의 역할은 금번 팬데믹(pandemic)시대를 맞아 그 특징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급변하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윤리의식은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가. 대중문화는 현 시대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이며 매스미디어는 그 문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중문화와 매스미디어가 팬데믹(pandemic) 시대의 기독교 문화와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교회음악을 대중음악으로 대체할 수 있느냐의 여부, 교회당에서의 설교 대신 인터넷 설교로 마찬가지의 효과를 볼 수 있는지의 여부, 성경책 대신 어플로 보아도 되느냐의 여부, 인공지능이 설교자가 될 수 있느냐 등 현재진행적인 많은 문제들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자랐던 시대를 비교해보면 많은 변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그 자체로서 가치 판단을 할 것이 아니라 본래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배치되는 지의 여부를 살펴보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실상 현대 교회는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위기에 처해 있다. 금번 전염병 사태로 이 위기는 가속화될 것이다.  이러한 위기가 신학이라는 학문에 영향을 끼친다기 보다 신학이 가져다 주는 방향성과 역사성, 그리고, 정체성이 개인화되고 사유화된 경험주의적 신앙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신학의 정체성이 자기가 경험한 것만으로 한정하면 개인주의화 하게 된다. 기독교의 사상, 정통성, 역사를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며 자신의 가치만이 최고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성을 띤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과학기술 만능주의와 빅데이터가 보편화 되는 시대를 맞아 기독교는 절대 진리의 붕괴로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과의 가치관이 충돌되어 고정가치가 변화되는데 다원적인 실재들이 현재하고 있기 때문에 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의 가치가 사회적 이슈로부터 밀려나게 됨에 따라 사회에서 마주치는 고통과 고민을 교회에서 해결하지 못해서 교회 이탈 현상이 가속화 할 것이고 그에 따라 교회는 사회도피처로서의 왜곡된 이미지로 변질이 심화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도래할 새 세상이라고 한다.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어떨까? 적 그리스도가 주관하는 빅브라더 시대에 대응할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외에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 인류가 지금껏 쌓아 놓은 축적된 과학기술을 버리고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같이 비인간적인 세상이 도래할수록 오히려 영적인 리더가 더욱 필요하게 된다는 예측이 많다. 거기에 직접 대면을 꺼리는 팬데믹(pandemic) 시대는 그리스도인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한다. 세상에 문제가 많아질수록 교회가, 영적 리더가 할 일은 더 많아진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기독교 세계관이 상식과 가장 진보된 과학에 부합하는 최상의 선택임을 널리 알려야 한다. 대중문화와 매스미디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더 빨리 임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제 4차 산업혁명시대에 기술은 극단적으로 발달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시대에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인 영성과 인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교회가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가야 한다. 교회는 팬데믹(pandemic) 시대에 4차 산업혁명의 첨단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영적으로 시대를 선도해 나가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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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윤리의식 - ④ 가정폭력, 결혼과 이혼​

그리스도인(목회자 포함)의 가정폭력, 결혼, 이혼이라는 문제는 특별히 목회윤리 차원이라기 보다는 일반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를 굳이 목회윤리에 포함하여서 고찰하는 이유는 목회자는  일반인이 아니라 성직자(제사장)라는 구별된 개념으로 인식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식은 일반 신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회는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유난히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불교신자(buddhists)나 승려(monks), 도교신자(taoists)나 도사(ascetic)등에 대해서 사회가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는 것 같은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가? 정말 수준 낮은 중은 '땡중(hypocrite)'이라고 비하하지만 그렇다고 교인들이나 목사들에게 요구하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지는 않는 것 같다. 또 도사(ascetic)라고 하는 사람이 마을에 내려가서 막걸리(a kind of wine) 한잔 마시고 혼자서 횡설수설(gibberlish) 한다고 해서 뭐 대단한 흠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무흠결이어야 하고 신성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목회자의 경우는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러므로 해서 이들에게 가정폭력이나 비정상적인 결혼, 이혼 등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면 일단 "교회 다닌다는 것들이..., 목사라는 자가..."라고 하면서 혀를 차는 것(click their tongues)이다. 특별히 목사라든지 사제라든지 성직을 맡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파문이나 지위 박탈 등 엄격한 정죄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로교의 전통은 목회자나 교사 등도 신도들 중 적임자를 선정하여 그 직을 맡기는 하나의 직분을 의미한다고 한다. 물론 그 경우에도 목사직 같은 경우는 다른 직분보다 훨씬 엄격한 선발 기준이 있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전제는 목사도 일반 성도들 중의 하나, 즉 보통 인간임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북미권의 교회는 최소한 목회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그 교회내에서 존재하면 돌아가면서 설교도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담임목사가 전적으로 설교를 전담하는 한국교회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처럼 목회자도 하나의 직분자라고 보았을 때 목회자의 가정폭력, 결혼, 이혼이라는 문제도 일반 성도들과 똑 같은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더구나 목회자 커플의 일방 당사자가 비신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다만 신실한 목회자라면 가정생활도 충실하게 수행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존경받는 목회자나 신실한 교회 장로, 권사분들의 부부 사이가 원만하고 자녀가 축복 받아 잘 자라고 있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감사한 일이다. 결국 이렇게 가정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일반 성도나 목회자가 우선 당사자 스스로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격려하고 위로해야 하며 교회 공동체에서 목회자 가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 보살펴 주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 또한 그들도 연약한 인간으로서 가정폭력이나 결혼과 관련한 제반 문제, 이혼의 고통 등이 분명히 따를 수 있다. 이럴 때 이들을 정죄하고 원칙론적인 주장만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 일이 아니라, 기독교인들 답게 하나님 앞에 다 내려 놓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면서 공동체로서 희로애락을 같이 해주는 과정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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