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조 개관과 시대에의 적용

 

. 들어가는

1643년부터 1649년간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에서 개최된 웨스트민스터 총회(Westminster Assembly of Divines) 만든 4개의 표준문서 ,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예배모범』, 『장로회 정치(government)』는 교회사 전반을 통해 교회가 만들어 가장 귀한 신앙의 표준이라고 말할 있다. 특히 앞의 문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은 논란의 여지없이 가장 완벽한 신조와 교리교육서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수많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이를 그대로 수용하거나 일부 수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웨스트민스터 표준서들이 완벽하다거나 나은 신앙의 표준서들이 나타날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이 역사적 배경과 저자의 배경 속에서 영감되었듯이 이들 웨스트민스터 표준들도 역사적, 시공간적 환경 속에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웨스트민스터 표준서들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총회의 개최와 과정에 대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우선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장로교는 합동측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교리로 채택하고 있으며 통합측과 대신측에서는 헌법 교리로 채택하고 있다. 회중교회 침례교 등은 교리 일부를 수정하여 채택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성경을 제외하고 개혁교회의 가장 권위있는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중세말부터 시작된 종교 개혁의 정점이자 귀결이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장로교회의 교인들은 교회를 처음 다니면서부터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대해 자주 듣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장로회는 이들 표준에 대한 교육과 이해가 부족하며, 표준을 만든 웨스트민스터 총회나 표준들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어떠한 상황에서 소집되었고, 표준서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통해 의미와 한계를 고찰하고 신앙고백과 대소요리문답의 의의와 구조, 특이 사항을 점검해보고 이를 시대에 적용해 본다.

. 역사적 배경의 이해

1.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

웨스트민스터의 신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7세기 당시 각각 독립적인 왕국이었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교회와 왕실통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잉글랜드 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 1534 헨리 8세가 교황으로부터 이혼을 허락받지 못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스스로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그러나 잉글랜드 국교회는 완전한 종교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같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모습에 불만을 가지고 국교회를 완벽하게 개혁하고자 사람들이 퓨리턴 (청교도)이었다. 퓨리턴은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개념이지만 주로 잉글랜드에 장로교 조직과 칼뱅주의 교리를 도입하려던 사람들이라고 있다.

반면, 스코틀랜드 국교회(the Church of Scotland) 1560, 제네바 망명 중에 칼뱅으로부터 지도 받았던 녹스(John Knox) 귀국하면서 성립되었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녹스와 신교 귀족들의 주도로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스코틀랜드 국교회를 탄생시켰다. ‘ 왕국이론이라고도 불리는 장로교 정치이론은 교회와 정부가 서로의 영역에 직접적으로 간여할 없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다만 교회는 정부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통치하지 않는 경우 비판이나 경고를 있었다.

2.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the Regal Union)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개최

1603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잉글랜드의 왕관을 스코틀랜드 제임스(James) 6세에게 물려주었다. 그가 영국에 가서 통합왕으로서 제임스 1세가 되면서 강력한 왕권을 갖게 된다. 그의 치세에 성경이 영어로 번역되었다. 흠정역(the Authorized Version) 부르는 바로 성경이다. 그의 이름을 킹제임스역(the King James Version)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는 교회에 대한 국왕의 통치권을 거부하는 스코틀랜드 장로교를 매우 혐오했다. 그의 치세에 스코틀랜드 교회는 오염 되었고, 일부 청교도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의 아들 찰스(Charles) 1세는 완전히 가톨릭적인 예배에 빠진 인물이었다. 찰스의 교회 정책은 스코틀랜드 장로교도와 잉글랜드 청교도들 아니라 잉글랜드 국교회에 만족하고 있던 대다수 국민들로부터도 분노를 샀다. 그러나 반대하는 이들을 왕은 가차 없이 처벌했다. 1638 스코틀랜드 국민은 국민언약(the National Covenant) 맺고 그들의 장로교를 지키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다. 번에 걸쳐 국왕의 군대를 물리친 스코틀랜드인들은 1640 완전한 종교적 자유를 얻었고, 그러나 국왕의 완고한 반대에 부딪치면서 잉글랜드에서는 전통적인 잉글랜드 국교회의 모습을 지키려는 왕당파와 잉글랜드 국교회를 완전하게 개혁하려는 의회파 간에 내전이 일어났다. 내전 초기에 전세가 의회파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1643 잉글랜드의 청교도 지도자들과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지도자들은엄숙동맹과 언약 맺었다. ‘엄숙동맹과 언약 내용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개혁을 위해 총회를 소집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소집된 총회가 바로 웨스트민스터 총회이다.

3.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성격과 의제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법률적으로 잉글랜드 의회에 종속된 회의였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총회는 스코틀랜드 교회를 대표하여 8명의 특사를 파견하였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장로교 이론으로 철저히 무장된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총회는 그들에게 전권을 위임하였다. 총회의 진행과정에서 스코틀랜드 특사들의 활약은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가지 주목할 일은 4개의 표준문서들이 만들어 마다 스코틀랜드 교회는 총회를 열고 이를 자신들의 표준문서로 수용하였다는 사실이다.. 이는 스코틀랜드 교회가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영국(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합친 개념) 총회로 수용했다는 분명한 증거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는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예배모범』, 『장로회 정치(government) 이다.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문서들은 만든 역시 스코틀랜드의 영향 때문이라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조의 작성에 있어서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4.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결과물

4개의 표준 문서 가운데 이후 가장 영향을 미친 문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이다. 예배 부분과 신조 문제에 대한 논의는 거의 대립이 없었다. 『예배모범』은 성경 낭독, 기도, 설교로 구성되는 예배를 강조하였고, 세례식, 성찬식, 결혼, 장례, 금식일, 감사일 등을 포함하고 있다. 많은 청교도 목회자들과 스코틀랜드 특사들의 활약으로 신앙고백서도 무리 없이 작성되었다. 요리문답서는 , 성인을 위한 『대요리문답』과 어린이를 위한 『소요리문답』으로 나누어 만들었다. 『소요리문답』은 『대요리문답』과는 달리 신앙고백서의 순서를 따르지 않았는데, 이는 스코틀랜드 특사들이 귀국 준비로 『소요리문답』의 초안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음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5 이상의 기간 동안 1163회의 회의를 가진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1649 2 22일의 회의를 끝으로 폐회하였다. 오늘날 거의 모든 장로교회들이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만들어 결과들을 헌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기존의 모든 신앙고백이 해결할 없는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교 신앙의 표준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총회의 유산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라고 있다. 장로회 표준들이 하나씩 만들어 때마다 스코틀랜드 총회는 잉글랜드와의 언약에 따라 이들을 스코틀랜드 교회의 표준으로 수용하였다. 잉글랜드 교회를 위해 잉글랜드 땅에서 잉글랜드 목사들의 결정으로 작성된 문서들을 잉글랜드 교회가 아니라 스코틀랜드 교회가 수용했다. 역사의 아이러니이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신 신비였다. 1660 잉글랜드 교회는 왕정복고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을 폐기하였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교회는 이들을 수용하였고 이는 복음과 함께 세계로 전파되었다. 한국 교회가 이러한 하나님의 신비 가운데 일부가 것은 복이 아닐 없다.[1]

. 본론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    의의

웨스트민스터 회의는 외적으로는 내전과 내적으로는 심각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신학자들이 함께 이룬 뛰어난 작품을 작성하였다. 고백서와 교리문답서 뿐 아니라 예배지침, 교회정치, 임직서 등 이후 장로교회의 이정표를 세웠으며 교파주의를 따르지 않고 교회의 일체성과 공교회성을 추구하였다. 웨스트민스터 회의에 모인 청교도들의 고민은 이기주의세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교회와 사회를 통합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수많은 핍박의 근원인 잉글랜드 성공회의 지배를 벗어난 진정한 신앙의 자유를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신앙에 기초한 진실한 기독교 사회를 모색했다. 많은 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살아 움직이는 신앙생활의 자유를 실천하기 위하여 1620년대부터 잉글랜드를 떠나 미 대륙으로 향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자 하는 것은 참된 기독교 신자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그리고 믿는 바를 체계 있게 고백하는 것은 성장한 신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교리적 입장은 청교도적 개혁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신앙고백 장로교의 기본교리로 채택되었으며 장로교회의 직분자들에게 성경적 교리로 받아들이도록 요구하고 있다.[2]

2)      구조 내용 개관

고백서 안에는 평생, 설교하고 가르쳐야 성경의 핵심적인 진리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33장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요한 내용은 성경, 하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창조와 섭리, 타락과 죄와 형벌, 자유의지, 칭의, 양자됨, 성도의 견인, 성례와 세례, 성찬, 교회의 권징, 성례와 세례, 성찬, 교회의 권징, 죽은 자의 부활과 심판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매우 중요한 진리에 관한 내용들을 집약적으로 정리하여 명제화시켰다. 특히 성경대로 믿기를 원하는 성경 신자들에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의 처음에 나오는 성경에 대한 믿음 대단히 중요하다. 종교개혁의 5 원리 중에 첫번째가 바로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다. 중세 가톡릭교회는 구원을 가르치는 권위가 성경과 거룩한 전승이라고 주장했으며,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성경을 해석하는 최종권위를 가지고 있었던데 대한 반발로서 특별히 신앙고백이 성경을 중시하고 최종권위가 성경에 있음을 선포한 것이다.

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변천

앞에서 언급한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웨스트민스터 회의(Westminster Assembly, 1643.7.1. -1649.2.22.) 기간 중에 작성된 장로교회의 신앙 고백서로서 원래 영국과 스코틀랜드 청교도들의 교리통일과 유럽 대륙 내의 개혁파 교회들과의 연결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1643-1647년에 전문 33장으로 만들어졌다. 그 후 스코틀랜드 1647)와 영국 의회에서(1648) 인준을 받았다. 이 고백서는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인 낙스(John Knox, 1514-1572)신앙고백과 제네바 신앙고백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전체적으로는 칼빈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장로교는 20장과 23장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며 20장과 31장을 개정하기로 하고 1788년에 개정안을 가결한다. 이후 1842년에 미국 남장로교회가 34장 〈성령에 관하여〉과 35장〈하나님의 사랑복음선교에 관하여〉을 추가했고, 1903년에 미국 북장로 교회도 이를 수용하였다. 이러한 수정과정은 대체로 영국에서 작성되었을때 미진했던 정교분리의 원칙을 반영한 것이었다. 한국교회는 고백서 20, 23장과 31장의 개정, 그리고 새롭게 첨부된 34장과 35장을 처음부터 채택하였다.

2.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서

1)    의의와 목적

흔히 교리문답으로 번역하는 카테키즘(Catechism)신앙교육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 교회는 교회 지체들에게 기독교 교리를 잘 가르치고 그들로 배우게 하기 위해 여러 교육방법을 이용했는데 이 모두를 카테키즘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카테키즘이 교육적으로 효과가 뛰어난 문답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카테키즘을 자연스럽게 교리문답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여러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을 작성했다. 기독교가, 신자가 누구를 믿으며(대상)’, ‘무엇을 믿는지(내용)’를 여러 이유로 정리해야 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또한 비슷한 이유로 작성되었다. 기독교 진리의 엄밀함을 추구하고 선언하되 그 엄밀함 안 에서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 바르게 믿고 예배하며, 거룩하게 살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 또 이전의 신앙고백들보다 기독교 진리 체계를 보다 풍성하게 다루기 위해서도 지어졌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은 이러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내용을 교회에서 보다 잘 가르치고 배우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것은 이전의 다른 교리문답들과 비교해서 내용이 깊고 정확하며 훨씬 풍부하다. 당시까지 작성된 교리문답들을 잘 정리하되 이전의 교리문답들이 충분히 다루지 않은 내용들을 포함해서 성경 전체가 말하는 주제를 온전하고 깊이 있게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탁월하고 풍부한 대요리문답은 분량이 적지 않아 어린이와 청소년, 믿게 된지 얼마 안된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고 배우기에 많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대요리문답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소요리 문답을 비슷한 시기에 작성하게 된다. 대요리문답서는 소요리문답서의 작성이 시작되기 전에 완성되었다. 교리문답서의 인기는 좋았다. 특히 소요리문답서는 큰 환영을 받아 스코틀랜드 국민들의 정신적, 영적 훈련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2)    구조 및 내용 개관

대소요리문답의 개관을 보면 다음과 같다.

a. 대요리 문답

1–5문답. 사람의 목적과 성경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6–8문답. 하나님은 누구신가 / 9–11문답. 삼위일체 하나님 /12–14문답. 하나님의 작정 / 15–17문답. 창조 / 18–20문답. 섭리 / 21–23문답. 사람의 타락 / 24–27문답. 타락의 결과인, 죄와 비참 / 28–29문답. 죄의 결과 / 30–35문답. 은혜 언약 / 36–42문답. 은혜 언약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 43–56문답. 그리스도의 직분과 일하심 / 57문답. 구속과 은혜 언약의 다른 혜택들 / 58–64문답. 구속에 참여하는 교회 / 65–90문답. 구속에 참여하는 교회가 받는 은혜

(구원의 서정: 효과적인 부르심, 칭의, 양자됨, 성화, 견인, 영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는 무엇인가〉

91–101문답. 사람의 순종과 십계명 / 102–121문답.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 (1-4계명) / 122–148문답.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 (5-10계명) / 149–152문답. 십계명과 우리의 한계 / 153문답. 믿음, 회개, 중보의 혜택들을 전하는 외적 수단들 / 154문답. 외적 수단들인 말씀, 성례, 기도 / 155–160문답. 말씀 / 161–164문답. 성례 / 165–167문답. 세례 / 168–175문답. 성찬 / 176–177문답. 세례와 성찬 / 178–185문답. 기도 / 186–196문답. 주기도문

b. 소요리 문답

1–3문답. 사람의 목적과 성경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4–12문답. 하나님과 작정 / 13–19문답. 사람의 타락 / 20–28문답. 그리스도, 직분과 일하심 / 29–38문답. 성령님과 구원의 서정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는 무엇인가〉

39–84문답. 사람의 순종과 십계명 / 85–107문답. 믿음, 회개, 말씀, 성례, 기도

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대요리() 소요리()문답서의 연관성과 특이점

1)    세 신조간 통합적 고찰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신조 역사에서 특이하게도 먼저 성경으로 시작한다. 17세기 초엽부터 성경에 대한 본문 비평, 특히 구약 원문에 대한 비판적 연구가 나타난 것도 성경에 대한 고백을 초두에 이유라 있다. 하나님의 계시로서 성경은 완성되었고, 완전하고, 충분하다(1,1). 히브리어로 구약을 하나님께서 직접 영감하셨다는 고백(1,8), 학자들이 후대에 첨가된 히브리어 원문의 모음은 영감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이중성,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동시에 말한다(1,1; 2). 고백서는 성경이 지닌 교회론적이고 구원론적 성격을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본성의 빛과 창조와 섭리를 통한 일반계시 외에 여러 모양으로 자기를 계시하시고 그것을 기록한 성경을 자기 백성과 교회에 주시고 구원의 길을 알리셨다(1,1; 4). 성경에 대한 신뢰는 성령님이 주신다. 고백서가 제시하는 논거로는 내용의 천상적 성질, 교리의 유효성, 문체의 장엄성, 모든 부분의 일치, 수많은 탁월성과 성경의 전적 완전성 등이 있다. 이외에도 성경이 구원의 유일한 길을 완전하게 전개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려는 의도로 기록한 점도 성경의 권위를 뒷받침한다(1,5). 성경은 우리의 구원과 믿음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명시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성경의 충분성이다. 하나님께서 구약과 신약 성경 66권을 직접 영감하시고(1,8) 믿음과 생활의 법칙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1,2). 성경은 신행(信行) 유일한 법칙(1,4,6,7)이다. 그리고 성경은 종교의 모든 논쟁에서 최종적인 법정이다(1,8). 이런 고백의 배경에는 회의 대표들이 당시와 이전에 겪었던 수많은 논쟁과 박해가 있다. 이들은 성경을 유일한 법칙으로 삼아 성경대로 살기 원했으며 성경 번역을 주장함으로 핍박을 받았으나, 이제는 공적으로 회의에 참석하여 담대하게 고백서를 작성하고 있다.

성경은 믿음과 삶의 법칙이다(1,2). 문답서는 이런 고백을 따라 믿음의 법칙(6–90; 4–38) 생활의 법칙(91–196; 39–107) 차례로 취급한다. 고백서는 차례를 엄격하게 따르지는 않지만 믿음의 법칙은 고백서 1–18, 25–33장에서, 그리고 삶의 법칙은 19–24장에서 부분적으로만 다룬다. 고백서는 중간에 생활의 법칙 일부만을 다룸으로써 믿음의 법칙을 양분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종교개혁에서 나온 대부분의 신조들은 믿음의 법칙 부분에서 사도신경을, 생활의 법칙 부분에서는 십계명과 주기도문을 제시하고 해설한다. 성경은 믿음과 삶의 법칙이다(1,2). 문답서는 이런 고백을 따라 믿음의 법칙(6–90; 4–38) 생활의 법칙 (91–196; 39–107) 차례로 취급한다. 고백서는 차례를 엄격하게 따르지는 않지만 믿음의 법칙은 고백서 1–18, 25–33장에서, 그리고 삶의 법칙은 19–24장에서 부분적으로만 다룬다. 고백서는 중간에 생활의 법칙 일부만을 다룸으로써 믿음의 법칙을 양분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종교개혁에서 나온 대부분의 신조들은 믿음의 법칙 부분에서 사도신경을, 생활의 법칙 부분 에서는 십계명과 주기도문을 제시하고 해설한다. 믿음의 법칙은 고백서를 중심으로 삼아 살피고, 생활의 법칙은 교리문답서를 중심으로 삼아 비교하는 방식으로 익히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2)    주목해서 봐야 할 교리적 강조점 및 특이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가장 주목하여야 부분은 특히 1장의 성경에 대하여 관련된 내용이다. 우선 성경은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특별계시임을 밝히고 있다. 통상 조직신학이 신론부터 시작하는 것에 비해 신조는 성경부터 시작을 한다. 성경에 최고이자 최후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은 부패한 로마 가톨릭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오직 성경이라는 위대한 선언이다.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별하여 오남용을 방지할 있는 것이다.

시대 교인들의 특성 중의 하나가 하나님으로부터 직통 계시를 받아야지 신앙이 성장한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처음부터 명백히 정경이 완성된 이상 직통 계시는 없는 것임을 명시한다( 1,1). 성경은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특별계시로서 과거에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천사, , 선지자 등을 통해 계시하시던 방식은 종료되었다는 것이다. 작금의 많은 이단들이 표적을 구하는 것에 경종을 가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66권의 책으로 기록된 것으로 모든 책들은 신앙과 삶의 규범이 되도록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졌     ( 1,2) 으며 외경 (Apocrypha)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일반 저작으로 성경이 아님( 1,3) 명기하고 있다. 이에 반해 가톨릭 성경은 트렌트 공의회에서 외경을 포함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 성경은 다름 아닌 하나님 말씀이므로 성경 자체를 믿고 순종해야 한다( 1,4). 이와 관련하여 신학이론 중에는 성경해석에 인간 이성을 우선시하고 그것을 신자들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있는데 옳고 그름을 떠나 웨스트민스터 신조와는 배치되는 것은 확실하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조는 성경의 일치성과 완전성, 효용성 등을 보증( 1,5)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경은 무오한 규범( 1,9)이며 신앙과 교회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최고의 심판자는 다름 아닌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 1,10)임을 확정하는 것이다.

3)      웨스트민스터 신조와 킹제임스성경(KJV)과의 연관성

웨스트민스터 3 신조에는 성경을 근거로 했다는 많은 인용 각주가 달려 있는데 많게는 1개조에 각주가 16개이며 평균 6 정도의 각주가 있다. 신조에 딸린 각주의 성경 구절은 대체로 수천 구절이 된다. 그런데 각주를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인용된 성경이 모두 킹제임스성경(KJV) 이라는 있다. 현대 한국교회에서 방언기도 논쟁만큼 격렬한 논쟁 중의 하나가 KJV 성경 논쟁이다. 방언기도를 고무, 장려해야 한다는 측과 방언기도는 성령으로부터 것이 아니라는 측의 대립 논쟁과 함께, KJV 고수하려는 측과 사본학적 성과를 근거로 KJV 인정하지 않는 측의 논쟁이다. 우리는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어느 측을 일방적으로 지지 한다든지 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다만 표적 구하기를 간구하고 KJV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면 웨스트민스터 신조와는 배치되는 입장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유를 짚어 보고자 한다.

먼저 방언기도와 관련해서는 감사와 함께 드리는 기도는 종교적 예배의 특별부분이다. (중략) 소리내어 기도할 때에는 알려진 언어로 해야 한다.”( 21,3)라고 명기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 4절에서 방언(글롯사) 자체의 개인적인 효용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있다. 그러나 방언 기도와 관련해서는 부정적인 뉘앙스 같기는 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표현(고전 14:14)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는데 반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에 대해 분명히 소리 내어 기도할 때는 알려진 언어로 해야 한다 못박고 있다.

한편 삼위일체를 증명하는 구절인 하늘에 증언하는 분이 계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 이시라”(요일 5:7) 관련, 신앙고백 2 3절의 번째 각주로 달려 있고, 하나님의 신격에는 위가 계십니까? ( 9, 6) 답으로 되어 있는데, 사본학에서는 구절이 후대에 의도적으로 삽입된 것으로 주장하면서 KJV 신뢰할 없다고 한다. 한편 사후 세계와 관련하여 KJV    지옥을 명확하게 규정하면서 천당(heaven) 지옥(hell) 가지로 분명히 구분하는 반해 한글 개역개정은 가지로 구분을 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KJV 입장을 분명히 지지한다. ( 29).

한편 웨스트민스터 신조의 십계명 주기도문의 해설은 탁월한 것으로 정평이 있다. 이중 주기도문과 관련하여 개역개정의 번역이 못된 것이 눈에 띈다. “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자를 사하여 같이에서 대부분의 역본들은 ‘debts’라고 해서잘못이나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반해 개역개정과 NLT 등이 (sins)라고 번역을 하고 있다. 신조는 사죄를 간구하는 기도의 근거가 우리가 행하는 사죄가 아님을 아주 정확하게 밝힌다. 우리는 우리가 사함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임을 고백해야 한다. 기원의 해설에서 원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공의에 빚진 우리의 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순종으로 인하여 죄와 죄책과 형벌에서 해방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중보에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매일의 범죄를 사하시고 확신을 가지고 우리가 평강과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도록 간구해야 한다. 이렇게 사함을 받은 자가 이웃의 잘못을 사할 있다. 우리 신조의 해설은 아주 정당하다. 우리의 믿음도 사죄의 조건이나 근거가 아니듯이,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는 것이 우리가 용서받을 근거가 아니다.[3]( 194, 105)

Ⅳ. 웨스트민스터 신조의 신학적 의의 및 현실에의 적용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사실 종교전쟁이며 신앙의 전쟁이었던 내전 중에 소집되어 시시각각 닥쳐오는 위험 속에서 신조를 작성하였다. 총회는 세개의 신조를 작성하여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하나의 종교와 신앙을 구현하려고 하였다. 신조들에는 종교개혁의 5 표어 중에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뚜렷한 자세가 아주 강력하게 스며 있으며 순간순간마다 묻어 나온다.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인간의 자유가 손상되지는 않는다. 종교개혁의 5 표어를 따라 하나님의 작정을 고백해도 우리가 숙명론에 빠질 필요는 없다. 그리스도의 속량을 받아 기도로써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계명을 지키는 자유자로서, 죄와 투쟁하고 승리하는 능동적인 삶을 있다. 이것을 교회에서 예배로 체험하며 훈련 받고 세상으로 나가 하나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동사(同事)한다. 이것이 동시에 우리가 받을 영광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조가 한국교회에 전수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기초한  은혜이다. 부흥과 성장 뒤에 교회의 부패와 타락으로 교회가 쇠퇴하고 있는 이때 개혁교회의 신조를 통하여 성경으로 돌아가고 성경을 사용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 다시 한국교회가 바로 서고 부흥하는 복을 받기를 희망한다.[4]

웨스트민스터 회의는 영어권 기독교계에 교리, 예배, 권징과 정치를 제공하였고 이들이 선교한 교회에도 이 유익을 전하였다. 우리 한국교회도 여기에 속한다. 하나님께서는 영어권 선교사들의 선교를 이용하여 한국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한국교회는 가깝게는 출발부터 교파주의를 익혔지만, 멀게는 웨스트민스터 회의 대표들이 염원하였던 참 교회의 일체성과 공교회성도 물려받았다. 생활의 원리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다. 이 강령과 생활원리는 교파주의의 흥왕 중에서도 웨스트민스터 회의와 그 결실인 신조가 부르짖는 참 교회의 일체성과 공교회성을 잘 표현한다. 한국교회는 부흥과 성장의 여파로 교리와 교회론, 예배와 정치의 혼란은 말할 것도 없고 성경과 교리를 빙자한 여러 이단의 도전을 받고 있다. 이런 때에야말로 웨스트민스터 교리표준과 관리 표준에 따라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고 선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궁극적 목적은 이 땅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기독교 진리를 공교회의 표준문서인 신앙고백으로 배우는 것과 어떤 한 사람의 교의학 (조직신학) 으로 배우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물론 신앙고백들이 작성된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당시에 충분히 다루지 못했거나 이후에 새롭게 다뤄야 할 어떤 내용들은 신학서적들을 통해 다룰 필요도 있다. 그러나 건강한 교회는 공통된 고백과 교의가 있어야 한다. 때문에 우리는 역사적으로 신앙적으로 공인된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을 먼저 잘 배우고 익혀서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예배드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큰 혼란 없이 성경이 가르쳐주는 본질적이고 중요한 교리들을 하나 된 믿음으로 받을 수 있다. 공인된 신앙고백과 교리문답들로 배우는 것은 우리의 시간을 절약해주고 불필요한 논쟁을 줄여준다. 수많은 도전과 박해 속에서 다듬어지고 살아남은 것이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5]

목사와 장로는 경건한 웨스트민스터 회의의 선배들의 작품의 도움을 받아 이런 중대한 직분을 잘 감당하고 수행해야 하며, 설교단의 순수성 그리고 세례단과 성찬상을 정결하게 지키는 중차대한 치리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고백서뿐 아니라 대요리문답서가 큰 유익이 될것이다. 장년교육과 직분자 교육에도 교리공부는 유용하다. 이단이 극성을 부리는 이유 중에는 교회에서 체계적인 장년교육이 없었거나 있어도 충분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다. 교인들을 교리로 무장시키면 이단이 발붙일 수 없을 것이다. 교인들을 돌볼 때에는 교리가 지침이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한 교리교육도 더 강화해야 한다. 소요리문답서는 교회교육에 아주 적합한 교재이다. 특히 이 문답서를 매주일 교회에서 가르치고 토론하고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이 암기하면 좋을 것이다. 학교 교육이 교회교육을 잠식한 지 오래되었는데, 이는 곧 이들이 믿음에서 떨어지고 교회를 떠날 위험이 그만큼 커졌다는 말이다. 교인들이라 하면서도 자녀들의 학교교육에는 올인하면서 성경 공부나 교리문답서 공부는 무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요약 정리한 교리문답서를 배우고 암송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지혜가 넘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기려는 믿음으로 뚜렷한 인생 좌표를 가지고 학교교육에서도 성공할 것이다. 이렇게 충실히 교회교육을 받아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꿀 인재들의 출현이 어느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교육을 맡은 교역자와 선생님들이 우리 신조와 본 해설서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면 건강한 신앙인을 길러내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성경과 교리로 직분자와 모든 교인들이 무장한다면, 건강한 장로교회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거둘 것이고 한국교회 전체도 든든히 설 것이다.[6] 아멘.



[1] 김중락,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의 역사적 배경 in 영국사 (대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2] 박윤선 and 조주석,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수원: 도서출판 영음사, 2012), 5.

[3] 유해무, 헌법해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 대소요리문답서 (서울: 예장 고신총회, 2015), 243–244.

[4] 유해무, , 250.

[5]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노트 (수원시: 그 책의 사람들, 2017), 27–30.

[6] 윤희구, 성희찬 외 5헌법해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 대소요리문답서 (서울: 예장 고신총회, 2015),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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