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저자는 사제이자 심리학자로서 활발한 사목활동을 하는 전문 상담가이다. 그는 전작 “상처 입은 감정의 치유”로 인간 감정을 둘러싼 오해와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은 데 이어 “상처 입은 관계의 치유”를 통해 특별히 한 개인의 친밀하고 개인적 관계의 여러 측면을 살펴보면서 이러한 관계를 오늘의 세상 속에서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전달한다. 이 책은 1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내용을 보면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7장까지는 “상처와 치유”에 내재한 구성요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8~13장에서 남녀의 결합과 가족을 둘러싼 여러 사건들에 이러한 요소들을 적용하여 실질적인 치유에 대해 논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10장에 구성요소중 하나인 불안과 두려움을 넣음으로써 중요한 인간관계의 원인으로 불안과 두려움이 얼마나 큰 작용을 하는지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마지막 장인 14장에서 이렇게 일생을 통해 일어나는 관계의 상실과 회복이 감사라는 해독제를 통해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자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은 특별히 가장 친밀하면서도 기본적인 관계를 남녀가 결합하여 구성하는 가족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형상”과 남녀간의 상호 보완성이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남녀의 성별과 상호 보완성이 창조 질서 내에서, 신적이고 창조되지 않은 존재인 하나님께 해당하는 무언가를 반영하고 있음을 함축하는 듯하다.[1] 따라서 이 책이 대부분 결혼과 가족관계를 둘러싼 상처와 치유를 논하고 있는 것은 “인간관계”의 핵심을 통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교재 요약

1부: 상처와 치유에 대한 인간 감정의 해부

< 소통, 듣기, 갈등, 친밀감 >

상처 입은 관계를 회복하려면 먼저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지닌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은총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에게 당신을 드러냄으로써 당신과 관계를 맺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도 대부분 관계 맺기와 소통에 관한 것이었다. 긴밀한 관계에서 소통하려면 진지한 개방성과 정직성이 필요하며, 솔직하고 분명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꾸밈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것만이 내가 상대를 알고, 상대가 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독심술사가 아니다.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분명히 말로 표현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관계가 가깝고 깊을수록 소통은 숨김없고 직접적이고 분명해야 한다. 서로를 깊이 나눈 사람들은 침묵속에서도 얼마든지 편안한 기분으로 함께 할 수 있다. 정서적 유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는 공고하며 거리가 없다. 서로를 신뢰 한다. 이들의 침묵은 수준 높은 침묵이다. 반면에 서로를 깊이 나눌 줄 모르는 사람들의 침묵은 공허할 따름이다. 바로 밑에는 두려움과 소외감이 짙게 깔려 있는 침묵이다.

소통이 상호 간에 자신을 드러내는 기술이라면 듣기는 상대방이 자신을 드러낼 때 우리가 그에게 가슴을 여는 기술을 말한다. 소통에는 기술과 정직과 훈련이 필요하다면 듣기에는 주의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또 듣기에는 놀라운 치유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 타인의 고통과 욕구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이면서 그의 고통을 함께 할 때 그러하다. 잘 듣는다는 것이 단순히 말만 잘 들어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의 침묵과 눈물과 고통 어린 신음, 감정의 분출도 기꺼이 받아 주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복음서에 나오는 치유의 기적이 그 사람에게도 일어나게 된다. 무조건 감정을 실컷 표출하게 해 주면 치유가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가까워진 듯한 소중한 느낌이 생겨날 것이다. 잘 들어 주는 일이 치유로 이어지는 이유는, 듣는 행위 자체가 말하는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처 입은 사람은 대개 자기 자신에 나쁜 감정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그들의 말을 들어 주는 것은 연민을 가지고 부드럽고 따뜻하게 상처를 싸매 주는 일이다. 타인에게 마음을 열면서 그들은 내면에서 스스로를 갉아 먹고 있는 아픔의 근원이 무엇인지 보게되고 이 때부터 비로서 진정한 의미의 치유가 시작된다.

갈등은 삶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며,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소통의 기술에는 적절히 갈등을 빚을 줄 아는 능력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건전한 관계를 이루는 데 대단히 핵심적인 요소다. 그동안 악덕으로 여겨온 분노가 사실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감정이다. 따라서 적절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긍정적 갈등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자각이다. 갈등은 사람이 모여 살 때 그리고 모든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갈등은 자기 성찰에서부터 해결해야 한다. 자기가 자라난 가정에 대한 통찰과 이해가 필요하다. 자신의 근본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친밀감은 누구와 가까이 연결되고 싶은 우리 모두의 내밀스러운 갈망이다. 궁극적으로 그 “누구”는 하나님이다. 이 같은 갈망은 우리 존재의 바탕에 깊이 각인되어 있으며, 하나님과의 영적 친밀감을 유지하는 뿌리가 된다. 많은 이가 이 갈망을 식별하지 못할뿐더러 심각한 정서적 장애 때문에 갈망을 왜곡하거나 혼동하게 된다.

성공과 실패로 점철된 여정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친밀감을 향해 길을 나서야 한다. 그 길은 인간적이고 영적인 구도의 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타인과도 정서적 유대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면, 하나님과의 정서적 유대와 친밀감도 체험 하게 될 것이다. 사람간의 친밀감은 하나님과의 친밀감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와 조화로움을 만끽하고 싶다면, 하루 한 순간만이라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와 만나면 통찰력이 생겨난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고,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게 된다. 자신에게 통찰력을 갖게 될 때 성령께서 내 안에 임하심을 체험할 수 있다. 이런 통찰력을 통해 우리의 신앙적 유산에 접근할 수 있다.

< 가장 중요한 관계, 용서와 화해, 상실 >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하면서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똑 같이 중요하다고 한다. 건강한 자기애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과는 다르다. 자기애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아야 하며, 온전한 자신을 찾는 헌신이 요구된다. 진정한 자기애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타인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균형 잡는 능력에 달려있다. 그러려면 부단한 주의가 필요하고 타인과 자신에 대해 정직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은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존중하면서 타인의 개성도 존중하고 배려한다. 자기에 대한 흔들림 없는 사랑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고, 타인에게 신의를 지키는 데도 필요하다. 우리의 모든 관계,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을 유지하는 데 영향을 주는 정상적인 스트레스와 긴장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긴장을 이겨내고 자신에 대한 사랑을 지켜 나갈 때 타인과의 관계도 더욱 좋아지고 건강해진다. 실패와 두려움을 적절히 다룬다면 자신감을 기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로부터 교훈을 얻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

용서에는 실천과 노력이 필요하다. 용서는 일종의 과정이며, 이 과정이라는 말은 앞으로 용서를 설명하면서 자주 다루게 될 심리학적 표현이다. 용서중에 가장 어려운 측면은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가 남들과 화해하는 데 그토록 시간이 걸리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기 용서는 건강한 자기애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자책이 무용한 짓인 데 반해, 스스로를 정직하게 비판하는 것은 건강한 행위이다. 기억을 묻어 보려고 부정하고 회피하기보다는 맞닥뜨려 처리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용서하겠다고 결심하면서 이러한 고통스러운 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죄의 실패에 대해서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더라도, 이성적으로는 자기 죄를 이미 용서한 것을 스스로 알 수 있다.

용서가 놓아 버리는 과정이라면, 화해는 부서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치유의 과정이다. 화해가 이루어지려면 용서를 구체적인 말로 표현해야 한다. 예수께서도 내가 상처를 입었다 하더라도 먼저 용서와 화해를 시도하도록 격려하시는 가르침을 남기셨다. 인생은 상실로 가득 차 있다. 상실에 맞닥뜨렸을 때 즉각 인정하고 대면하여 거기에 딸린 정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며 온전하게 자기 삶을 꾸려가고 있는 사람이다.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상실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사랑과 환상, 의존성, 불가능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상실에 따른 슬픔은, 상실의 경중에 따라 크고 작은 고통으로 슬퍼할 수 있는 시간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감정의 단계이다. 우울증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상실감으로 인한 슬픔이 제때 해소되지 못하고 깔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실 앞에서 모순된 감정을 느끼는 것은 흔한 현상이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상실을 다루는데 곡 필요한 것이다. 이것을 회피하거나 묻지 말고 대면해야 한다.

안도와 슬픔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이다. 이 때 안도하는 마음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애완견의 고통을 지켜보아 온 가족들의 고통을 덜게 되었고 개에게도 차라리 잘 된 일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무감하거나 무신경할 때가 많다. 슬플에 빠져 있는 사람을 마주하기가 꺼려지는 것은 그를 보는 것 자체가 불편하기도 하거니와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유산이나 낙태 후에 스퍼할 시간이 필요하다. 낙태는 시술 후 곧바로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는 단순한 의료 행위가 아니다. 여자 스스로 선택한 일이지만 많은 경우 남자의 동의가 있었거나 남자의 압력으로 내려진 선택이기도 하다. 이 경우 두사람의 영혼을 꿰뚫는 신체적, 정서적, 영적 고통은 대단히 깊이 남게 된다. 낙태 직후에는 안도감이 들 수도 있으나 결국 에는 상실에 직면해야 한다.

2부: 가정을 둘러싼 상실과 치유

< 이혼, 사별과 애도, 불안과 두려움 >

정서적으로 친밀하던 관계가 회복하기 힘들 만큼 무너질 때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고통과 슬픔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정서적, 영적으로 치유되기를 참으로 원한다면, 얼마나 긴밀하고 오래된 관계, 단절된 모든 관계에는 충분히 슬퍼할 시간이 필요하다. 실패를 통해 우리는 더 깊은 정서적, 영적성숙의 차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관계 단절이 결국에는 더욱 원만하고 건전한 관계를 도모하고 발전시키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다. 관계 단절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고통스러운 사건이 이혼이다. 이혼은 금전적 으로나 정서적으로 재앙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에 섣불리 결정할 일이 아니다. 문제 있는 결혼생활은 으레 양측 모두에 책임이 있다. 일단 이혼을 했으면 결혼이 끝난 것을 충분히 슬퍼하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삶을 꾸려 가야 한다. 이혼은 삶을 극단적으로 바꾸는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이혼을 실행한 사람은 실패의 원인을 찾아내어 통찰함으로써 삶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혼으로 무수한 사람과 사회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자녀의 삶은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이미 일어났거나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해 아이들이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 필수이다. 누가 죽더라도 우리가 그와 맺었던 관계는 끝나는 것이 아니고 변화하는 것이다. 사랑하던 사람을 슬픔 속에서 기억한다는 것은 관계가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도의 과정없이는 죽은 사람과의 관계가 완성되거나 치유될 수 없다. 애도는 삶의 일부이며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행위이다. 애도에 지름길은 없는 것이다.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 특히 제 또래의 사람이 죽었을 때, 우리는 굳이 말로 하지 않더라도 우리 역시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어 가는 사람을 눈앞에서 보면 우리 자신의 유한성, 우리도 머지않아 죽을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애도에는 지름길이 없다. 애도의 여정을 직시하고 똑바로 걸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자마자 되도록이면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슬플에 잠긴 상태에서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 모두에게 최선의 결정이 무엇인지는 시간을 두고 생각해야 하며 구성원들간에 오랫동안 논의해야 한다. 두려움이 장차 일어날 문제에 대한 고통스러운 경각심이라면, 불안은 곧 닥쳐올 사건에 대한 불길함에 사로잡혀 안절부절 못하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은 우리의 아군이 될 수도 있으며, 장차 닥쳐올 위험을 경고해 주기도 한다. 물리적, 정서적, 재정적으로 해를 입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해준다.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이해하고 밑바닥까지 내려가 직면하면서 문제의 뇌관을 제거해야, 더 이상 파괴적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그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불안감은 부정적 사고로 인해 나타나기도 한다. 부정적 사고는 불안감을 증대시키고, 불안감은 다시 부정적 사고를 강화한다. 부정적 사고를 변화시킴으로써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불안과 두려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 자각하고 ② 수용하여야 하며 ③ 직면 해야 한다 ④ 또한 꼼꼼히 들여다 보고 ⑤ 현재에 충실하여야 하며 ⑥ 불안을 내려놓고 떠나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불안과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루고자 노력하다 보면 우리 안에서 불안은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 재혼, 행복한 결혼생활, 가족 >

재혼을 할 때는 첫 결혼에서 왜,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통찰해야 한다. 자신의 실수를 직시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이혼의 목적은 재혼이 아니다.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평화와 만족과 행복을 찾으려는 것이다. 행복은 타인에게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자신의 선택에 따라 찾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혼을 해도 2/3는 다시 실패를 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재혼을 할 때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 우선된다. 독신으로 살기를 선택한다면 우선 독신생활이 결코 오점이나 결함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독신은 하나의 삶의 방식이며 그 자체로 소명이다. 독신생활에서 얻어지는 자유를 통해 공부를 더 하거나 일에 몰두하거나, 사회봉사나 종교생활을 통해 남들을 도우면서 자기 삶을 확장할 수 있다. 이혼 후에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것은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이어야 한다. 이것은 정신적, 영적치유 이후에 가능한 것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 부부 각자가 제 몫의 책임을 다 할 것 ② 명확한 소통의 기술을 터득할 것 ③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은 유지된다는 낙관적인 태도를 견지할 것 ④ 용서하는 것 ⑤ 끊임없이 노력하겠다는 의지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뢰는 결혼생활의 토대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두 사람이 함께 할 것임을 믿어야 한다. 완벽한 사람도 없고 완벽한 결혼도 없다. 이 다섯가지 조건은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가족은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이다. 사회의 저력과 내구력은 가족의 응집력에서 나온다. 원만한 가족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가족 누구에게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갈등도 어느 가정에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원동력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꾸밈없고 정직하고 직설적이고 분명하게 소통할 때 갈등은 당연히 발생한다. 자신감도 가정 내 안전감의 토대이다. 사회적 가치관이 부모의 가치관에 반할 때, 부모는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부부간 결속은 아이들에게도 좋은 모범이 되어 준다. 부모도 나름대로 실수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자기 확신이 있는 성숙한 부모는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부모를 신뢰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자녀가 부모에게 화를 내거나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자신감 있는 부모는 자신감 있는 아이를 길러낸다. 반대로 불안해 하는 부모 밑에서는 아이 역시 불안해하고 자신감을 읽을 수 밖에 없다. 아이가 건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부모의 분명한 지도가 필요하다.

3부: 감사

감사는 성숙한 인간과 참된 그리스도인의 특성이다. 감사에는 악과 불의가 존재하는 세상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것들을 넘어서는 힘이 있다. 감사는 우리가 갖가지 고난과 비극을 겪을 때 느끼곤 하는 절망감과 무력감에 대한 해독제로서,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이러한 감사를 실천하여 자신의 말과 모범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이것을 보여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수한 선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더욱 깊이 자각할 수 있게 된다. 감사하는 태도는 가정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쳐야 한다.

비평: 본 교재의 독특성 및 장단점

저자는 종교 상담가로서 이 책에서 일차 집단으로서 가족관계를 둘러싼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 전반에 걸친 조언을 담담한 필체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본인이 직접 겪은 상담가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이것을 집필하였을 것이다. 사람이 일생을 통해서 체험하는 인간관계에서의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회복할 것이냐에 대한 충고적 서술이다. 이에 대한 극복은 결과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 자신과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써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숙독하면서 많은 공감을 느꼈으며 나에게 다가왔던, 어쩌면 앞으로 숙명적으로 다가 올지도 모를 예정되어 있거나 임의로 닥쳐올 상실에 대해서 종교적 평안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과 논리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서평자의 입장에서는 논리의 비약이 있는지도 확인해봐야 하고 객관성이 확보되었는지의 여부도 검토해봐야 한다. 전체적인 책의 구성은 남녀간의 결혼으로 구성되는 가정으로부터 구성원간의 상처를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에 대해서 심리학적 틀을 사용한다. 즉, 사람간의 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구성요소로서 소통, 듣기, 갈등, 친밀감, 자신에 대한 사랑, 용서와 화해, 불안과 두려움, 상실 등을 설명 하고 있다. 그러나 상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요소들은 일생 동안 이루어지는 상실(상처)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것이냐에 대한 고찰이라고 볼 수 있다.

장점

이 책은 인생 전반에 대한 충고를 하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 동안 살아온 자신의 생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또한 번역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매끄러운 번역이 눈을 끈다. 역자의 이력으로 보면 오랫동안 영문 번역이나 저술을 해 온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저자의 견해가 가감없이 표현되었으리라는 믿음이 문체에서 묻어 나온다. 저자는 인간의 정신적 측면에 해당되는 부분들, 예를 들어 갈등, 친밀감, 용서와 화해, 두려움과 불안 등을 객관화, 구체화시켜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놓는다. 이것은 아마 심리학의 테크닉일 것이고 오랫동안 상담 현장에서 사역을 한 저자의 노하우가 집대성된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심리학이나 기독교 상담학 등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책을 읽어 가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다른 사람에 대한 상담 기술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상실로 인한 치유 과정을 심리학적으로 접근을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하나님으로의 귀의, 즉 종교적으로 귀결한다. 사실 상처 입은 모든 이들을 끌어 안고 눈물을 닦아 주실 이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안 계시므로 이 책을 읽어 나감으로써 하나님께서 값 없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 위안을 갖게 된다.

단점

저자는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 주로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용어(“하느님” 등)를 사용하고 성경 구절도 “루카 12.51” 등으로 표시하여 산만한 느낌을 준다. 개신교 신자들이 읽어 나가기에 익숙치 않은 점이 있다. 또한 성경적 통계를 인용하는 구절(성경내에서 “두려워 말라”고 언급한 횟수 등)에서도 개신교 성경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약해질 수 있다. 예화가 너무 부족하다. 저자는 전문 상담가로서 내용상 실제 사례가 다 녹아 있다고 추정되긴 하지만 상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대화를 이끌어 가면서 예화가 없으므로 현실감이 좀 떨어 진다. 직간접적인 예화를 삽입하였더라면 훨씬 생동감 있는 저술이 되었을 것이다.

리뷰 :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

관계는 창조질서의 기본이다. 본서는 남녀간 구성하는 가정을 관계의 기본으로 놓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심리학적인, 종교적인 세부 분석을 한다. 이와 관련 창세기 2장은 남성과 여성의 상호보완성을 관계라는 맥락에서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8)라고 말한다. 인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 의도는 맨 처음부터 새 창조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다. 사람들 간의 수평적인 사랑의 관계는 인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원대한 인류 구원계획의 일부다. 그것은 결혼으로부터 시작되지만 확대되어 다른 모든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다. 그리고 타락이 인간 삶의 관계적 차원을 황폐화시킨 이후에는 건강한 사회적 관계가 죄로 인해 깨어진 곳에서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의 일부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러신 것처럼 지금 여기에서 건강한 인간 관계(개인 간의, 가족, 직장, 교회 전체에서, 그리고 국가들 간의)를 회복하는 일에도 열정을 보여야 하지만[2],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일 것이다.

관계 회복에 장애가 되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이다. 저자가 밝힌 것과 같이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이 365회 나온다고 한다(물론 가톨릭 성경을 얘기하는 것이겠지만) 크리스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사랑이 충만하여 자비롭게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종교적 불안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 사람간의 관계가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이 그 원인일 수 있다. 불안과 두려움은 아마도 우리의 원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상대가 친근 하게 다가가도 사람은 그 죄성으로 인해 또 상처를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주춤하고 멀리한다는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갖지 않고 사람을 대하게 되면 상처를 입을 확률은 줄어들며 설령 상처를 입게 되더라도 긍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원활한 소통을 해야 하며, 상대방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하고, 갈등의 원인분석과 그에 대한 현명한 해결, 친밀감의 유지, 자신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 이타심 배양, 실천과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과정으로서의 용서와 화해와 더불어 임의적 혹은 예정된 상실에 대한 극복 등이 있다. 결론적으로 상실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다. 그 분이야 말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고, 그렇게 하기를 간절하게 원하시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에 창궐하는 전염병 사태,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을 통해서도 우리는 상실을 겪을 수 있다. 이렇듯이 우연으로 보이는 사고 및 상실 말고도 우리는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상실을 마주친다. 급작스러운 죽음이든, 자연사이든 우리 모두는 죽음과 마주해야 한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아내가 먼저, 혹은 내가 먼저 죽는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받아 들일 수 있다거나, 슬픔이나 불편이 덜 하다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좀 더 젊었을 때 겪는 것과 똑같거나 그 이상 으로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이것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내 상실을 내려 놓고 죽음이 최후 승자가 아님을, 우리의 구주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통해 죽음의 권세를 이기 셨으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영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임을 믿고 감사해야 한다. 감사는 선한 동기를 더욱 강화하는 능력이 있고 잘못되고 악한 동기를 약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상처에 대한 치유가 쉽지 않은 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에 있다. 감사는 상대방에게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더 큰 유익을 준다. 교육적으로 보면 감사하는 태도는 가정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치지 않으면 그 아이는 일생을 통해 영혼을 치료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할 것이다. 감사를 통해 우리는 상실을 이겨낼 수 있다. 상처 입은 관계는 감사와 사랑이라는 해독제를 통해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인간적이고 근본적인 고통들에 쉽게 노출된다. 욕망, 허무, 사랑 등에 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이들이 납득 가능하도록 성경적인 설명을 해줄 있어야 한다. 반면 다른 세계관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며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점을 느끼게 하여 그들이 평생을 살아 가면서 진정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어 올바른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만을 믿는 올바른 믿음을 갖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인간의 근본적인 외로움의 문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교회에서, 기도 모임에서, 성경공부의 강당에서 사람들은 상실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다. 사실 독실한 기독교인의 기도에 상실로 인한 고통의 치유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대교회는 이러한 상실 치유의 장으로서는 그렇게 활용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교회는 이렇게 비탄과 상심에 빠져 있는 교인들을 위한 체계적인 상담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상실을 경험 하고 간절히 기도하여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어야 한다. 사실 사회에서도 이러한 상실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구를 만들어서 도와 주는 기구들이 있다. 청소년 상담이나 자살 방지 상담 전화 운영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시스템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결국 종교적인 치유가 그 답이 될 것이다. 질곡의 심연에서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그는 그 선택의 과정 속에서 그분이 이미 우리를 선택하셨고 자신에게로 이끄셨다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을 맞아들일 수도 거절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안고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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