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문제의 제기 

 

.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

A. 연구의 필요성

한국 교회에서방언”(γλῶσσα) 대한 논쟁은 쉽게 과열이 된다. 서로간에 속을 열고 이야기도 하지 않지만 일단 논의가 시작되면 격렬한 논쟁으로 비화 아니라 상대의 말을 경청하거나 수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만 고집한다. 이렇게 과열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성경내방언”(γλῶσσα) 개념이 한가지를 뜻하지 않고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말로는 그저방언이라고만 쓰고 있는 것이 가장 이유이고 번째는 해당 성경구절이 아주 까다로워서 해석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해가 다르게 되고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서로 다른 개념으로 말하게 되어 논의가 뒤엉켜서 나중에는 뭐가 뭔지 수가 없게 된다.[1]

필자는 늦은 나이에 교회를 다니게 되고 성경을 읽으면서 기독교 신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자의반 타의반으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처음 교회를 나가고 세례를 받은 성경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현대교회에서 기도를 많은 사람들이 뜻을 없는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이것을방언이라고 한다는 것과 이에 대해서 교회마다, 신도마다, 목회자마다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대교회의 방언현상 기독교 신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서 우리 기독교적 세계관 자체를 좌지우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문제를 정확히 알고 넘어가야 올바른 신앙의 길로 접어들 있을 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에 대한 정확한 성경적 분석을 위해 논문을 쓰게 되었다.   

기독교는 분명 신비로운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다. 우리는 계시로서만 하나님을 추측할 영적인 세계에 대해 확실하게 답할 있는 사람은 없다. 현대 교회의방언”(γλῶσσα) 무엇인지는 오직 하나님 만이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서방언”(γλῶσσα)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감안한다면 이를 성실하게 추적해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20세기에 접어들어 성령과 영적 은사를 강조하는 오순절 운동(Pentecostalism) 발흥하여 전세계를 강타하는 엄청난 부흥을 이루었다. 미국 개신교는 자유주의계열과 근본주의적 계열로 나누어졌고 새로운 교파들을 형성 하였는데 구자유주의는 신정통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발생을 열어 주었으며, 또한 “Ecumanical”운동(교회연합운동) 촉진하였다. 심지어 보수주의적 개신교조차도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로 나누어져 있다. 최근 미국의 기독교 무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운동은 특히 신유와 방언을 강조하는 은사주의적 부흥 운동, 신오순절운동 (new Pentecostalism)이다. 따라서 방언의 근본적 성격을 알고 그것을 성경에 비추어 검토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2]

이러한 오순절 운동은 가히 20세기 이후의 기독교 역사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자랑하던 한국의 유수한 대형 교회들도 오순절 운동에 힘입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규모로 보았을 초대교회 시절의 폭발적 신도의 증가, 종교개혁으로 인한 인간의식 전환의 쓰나미 같은 물결에 비견할 만한 일이 전세계적으로 특히 한국교회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파도의 근저에현대교회의 방언 자리하고 있다. 이것을 인정 하든 인정하지 않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든 부정적으로 생각하든 모든 신도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현대교회의 방언 연구하고 이를 어떻게 바라 보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이유다.

오순절 계열의 성령운동(The Holy Spirit Movement, 이하오순절파’) 주창하는    사람들은 방언현상을성령세례라고 하여 방언을 하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까지 주장을 하고 있으나 이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현대교회의 방언현상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니며 성경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고 반발하고 있다. 방언 (γλῶσσα)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문제는 단순히 어떤 교파에서 어떤 교리를 갖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신도들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 아니면 잘못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구별 짓는 문제가 수도 있기 때문에 우선 성경에서 이것 어떻게 해석 해야 하는지 확인해야 필요가 생긴다.

문효식은 현대 기독교에서 오순절파의 성령운동에 대한 영향력을 대단히 강조 하면서 이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중요성을 역설하고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 하였는데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참고할 만하다.

오순절파는 현대교회의방언”(γλῶσσα) 근거를 고린도전서 14장에 두고 있는데 이것이 성경적 근거가 있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20세기 이후 전세계 기독교계를 휩쓸고 있는 오순절운동의 핵심이 바로 현대교회의 방언 현상, 황홀경의 발화이므로 이에 대한 실체를 파악해야 천주교를 포함한 세계 모든 기독교에 영향을 미치다시피 오순절 운동, 소위 성령 운동이라는 것에 대한 정체를 규명할 있다 것이다.[3]

 

B. 연구의 목적

그동안 국내외에서 현대교회의 방언에 대해서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를 놓고 수많은 의견들이 나왔고 저서들이 출간되었다. 대체로 방언체험이 신앙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방언기도가 기도를 길게, 열정적으로 있게 한다 소극적이던 신앙생활에 긍정적 변화를 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방언을 반대하는 일부 논문과 소수 의견들은 신약성경의 방언은 외국어로서 사람들이 알아 들을 있는 언어이며 현대교회의 방언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극단 중간의 입장에서 현대교회의 방언이 성경적인 근거는 없지만(혹은 성경적 근거가 미약하거나 분간하기 어렵지만) 실제 신도들에게 도움이 되므로 굳이 금할 것까지는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현대교회의 방언현상이 성령으로부터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하나님만이 아실 일일 것이다. 우리는 현대교회의 방언현상이 긍정적인 현상인지, 부정적인 현상인지 혹은 가지가 혼재하여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단지 이것이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 것이다. 특히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고린도전서 14장의 방언” (γλῶσσα) 대한 해석을 모를 없는 소리 보는 외국어 보는 가지 (, ) 혼재한다고 보는 설의 가지로 구분하여 학자별로 선행연구를 살펴 분석함으로써 현상을 어떻게 바라 것인지에 대한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4] 만약에 현대 교회의 방언이 성경적인 진짜 방언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것을 사모하고 구하여야 하며 이미 받은 사람은 더욱 개발 하고 장점을 분석하여 다른 신도들에게도 권장하여야 것이지만 만일 현대 교회의 방언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면 그것이 성령인지 아니면 다른 이상한 영인지를 우선 분별하여야 한다. 또한 성령과 이상한 영이 혼재한 것일 수도 있다. 때문에 요한사도도영을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요일 4:1)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내에서방언”(γλῶσσα) 해석을 해내기는 결코 쉽지 않으며 많은 논란이 있다. 성경은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을 있는 여지를 남겨 놓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본별, 역본별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외국어인지 일종의 황홀경의 발화(“ 모를 없는 소리포함)인지 구분해 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논문에서는 먼저 고린도교회를 둘러싼 당시 역사문화적, 사회경제적 상황을 밝히고 사도바울의 서신 저작 목적 등을 고찰할 것이며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방언(γλῶσσα)’ 용례를 비교, 검토함으로써 고린도전서 14장에방언(γλῶσσα)’ 포함한 핵심 성구를 분석하고 관련된 맥락을 파악해서 바울의 관점에 대해 성경적인 근거에 의해 결론을 내릴 것이다.

. 연구의 방법과 범위

A. ‘방언(γλῶσσα)’에 대한 용어의 정의

방언은 영어로 “tongues”라고 하는데 이것은 “tongue”(언어) 이란 단어의 복수이다. 고린도전서 14장에는 단수와 복수가 같이 쓰였다. 보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두개의 그리스어가 합성된 형태인 “glossolalia”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단어는 19세기 무렵 만들어진 방언을 가리키는 합성어로서 “γλῶσσα” (tongue) 라는 단어와 “λαλέω” (to speak)라는 단어가 합하여져 만들어졌다.[5]

라이프 성경단어 사전에는 “‘로서의 방언(γλῶσσα) 지방의 언어들 (13:24; 36:13; 8:23; 7:9), 외국어(2:4–11)라는 의미와 성령의 역사로 무아지경(無我之境) 상태에서 말하는 신비한 언어이며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람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사(고전14:2, 21, 22)이다. 따라서 회심한 모든 사람에게 방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6] 라고 하고 있다.

스탠리(Stanley Mr. Brugess) 중세기에 나타난 실례를 연구하여 방언의 종류를 분류해 내었는데본인이 알지 못하는 외국어를 말하는 것에 해당하는제놀랄리아’ (xenolalia), 상대방이 외국어로 말할 듣는 사람들이 자기 나라 말로 내용을 알아듣는헤테로글로솔랄리아’(heteroglossolalia), 혹은 듣는 소리가 없이 들리어지는아코랄리아’(akolalia)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지 못하는 언어로 발성되어지는 현대교회 방언현상으로 추정되는글로솔랄리아’(glossolalia) 있다[7] 하였다. 그가 주장 하는헤테로글로솔랄리아”(heteroglossolalia) 이론은 난해구절인 고린도전서 14 21절에 대한 해석에 결정적 역할을 것인데 이것은 Chapter 3에서 언급한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 가운데 성령만이 방언의 근원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방언에 관한 여러가지 문헌들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방언의 출처가 성령 뿐이 아닌 여러 곳에서도 있는 것을 있다. 성령이 주시는 방언은 물론이요, 악령이 주는 방언도 있을 아니라 심리학적으로는 방언이 인격해리 (人格解離, Dissociation) 인한 다중 인격현상으로 인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8] 따라서 논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후서를 저술할 당시 상황을 추론하여 고린도교회의 방언현상이 성령으로부터 것인지를 확인할 것이다.

신약성경에는 방언”(γλῶσσα)이란 용어가 50 정도 나오는데”, “외국어”, “천사들의 언어”, “종교적 황홀경”( 모를 없는 소리) 뜻으로 사용되었지만 대체로 논란이 되는 것은 고린도전서 14장의방언”(γλῶσσα) 어떤 뜻이냐의 해석을 놓고 학자들의 견해가 심하게 엇갈린다. 따라서 논문에서는 신약성경에 나오는방언”(γλῶσσα) 중에서 고린도전서 14장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에 중점을 것이다.

B. 연구의 방법

논문에서는방언”(γλῶσσα) 성경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먼저 동안의 선행 연구 사례를 살펴보고 먼저, 고린도전후서, 특히 고린도전서를 저술한 바울 사도의 본래 의도를 파악할 것이며 번째로는 현대교회의 방언과 관련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고린도전서의방언”(γλῶσσα) 의미, 특히 14장에 나타난 정확한 성경적 의미를 심도 깊게 분석할 것이다.

우선 고린도전서는 고린도교회내에 발생한 수많은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처리 하라는 아주 구체적이면서도 성실한 사도 바울의 기독교적 철학이 담겨 있는 귀중한 서신이다. 아마 현대교회에서 마주치는 대부분 문제들이 있다고 정도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대처방법이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나와 있다. 그렇게 크지 않은 교회에 이렇게 많은 문제가 동시다발로 발생한 것도 참으로 이해 하기 어려운 점이다. 당시 고린도교회를 둘러싼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바울의 해법을 보면 현대 교회의 문제와 해법을 찾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렇게 많은 문제점들 중에서도 바울은 방언에 대한 문제를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면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만큼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일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사역을 당시에는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었지만 고린도 사역을 마치고 떠난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을 것이다.[9] 왜냐하면 고린도전서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방언” (γλῶσσα) 대해 언급하였지만, 후세 해석가들에게 혼란을 초래할 만큼 자신의 말에 일관성이 부족한 같아서이다. 그러나 문제에 대해 바울은 뒤따르는 서신들 (고린도후서, 로마서 )에서방언 (γλῶσσα)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점으로 판단했을 , 고린도후서를 전후할 때까지는 완전히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논문에서는 먼저 고린도전서 14장의방언”(γλῶσσα) 해석과 관련하여  γλῶσσα 황홀경의 발화”(‘무아경의 없는 소리포함) 보는 설과 로마제국내의 지역언어로서외국어 보는 , 황홀경의 발화외국어로서의 의미가 혼재한 것으로 보는 설에 대한 학문적 선행연구를 진행할 것이며 다음 으로 고린도전서의 용례를 분석하기 위해 마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나타난 방언현상 으로서의γλῶσσα’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를 살펴보고 추가로 요한계시록의 용례에 대한 분석을 통해 고린도전서의방언”(γλῶσσα) 의미를 판단하는데 여기에는 구약성경 이사야서 28 10절의라숀”(לָשׁוֹן)  분석도 포함한다.

최종적으로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쓰여진방언”(γλῶσσα) 단수와 복수로 구분 하여 복수로지방 방언(외국어)”이라는 의미와 단수로서황홀경의 발화” ( 모를   없는 소리) 의미를 확실히 구분할 것인데 특히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우리말로방언이라고만 표현하여 가지 의미가 번갈아 가면서 쓰임으로 해석에 혼란을 주고 있는 것을 명확히 논증하여 해결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영문판 킹제임스 버전(KJV) 외국어를 의미할 ‘tongues’라고 하고 있고 모를 소리는 ‘an unknown tongue’ 으로 정확히 번역하고 있으며 헬라어 원어 성경에도 “γλῶσσα” 단수와 복수로 분명 하게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고찰을 위주로 살펴볼 것이다.

C. 연구의 범위

γλῶσσα대한 정확한 해석을 위하여 고린도전서 14장에서 필요한 부분의 원문을 분석할 것인데 특히 한글 개역개정판이 오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14 2ὁ γὰρ λαλῶν γλώσσῃ οὐκ ἀνθρώποις λαλεῖ ἀλλὰ θεῷ· οὐδεὶς γὰρ ἀκούει, πνεύματι δὲ λαλεῖ μυστήρια·”(NA28) 해석에 있어서θεῷπνεύματι”, “δὲ 번역을 자세하게 진행 것이고 이와 관련, NA28 θεῷ 앞에 정관사를 쓰지 않는 비해 TR1550MR  (텍스투스 리셉투스) 정관사를 쓰고 있는 (τω θεω) 군데에서 헬라어의 세미 콜론(‘·’, 영어에서는;’ ) 쓰인 부분까지 고려할 것이다. 또한 14 4ὁ λαλῶν γλώσσῃ ἑαυτὸν οἰκοδομεῖ· ὁ δὲ προφητεύων ἐκκλησίαν οἰκοδομεῖ.” (NA28) 해석을 통해 바울이 단수로 쓰인 γλώσσῃ 대해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고 있는지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고 있는지를 파악할 것이다. 이와 함께, 14 14ἐὰν [γὰρ] προσεύχωμαι γλώσσῃ, τὸ πνεῦμά μου προσεύχεται, ὁ δὲ νοῦς μου ἄκαρπός ἐστιν.” (NA28) 번역에 있어 역본별 비교와 용례별 쓰임새를 면밀히 고찰하고 가정법 구문의 정확한 해석을 통해 사도 바울이 “an unknown tongue”으로서의 방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분석할 것이다.  14 21절과 22절에서는 바울이 구약성경 이사야서 28 11, 12절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방언이라는 표현으로 구약성경(라숀, לָשׁוֹן)이나 70인역(LXX )에서 사용한 단수 표현 ἑτερογλώσσος 사용하지 않고 굳이 복수로 바꾸어서 (ἑτερογλώσσοις) 사용했는지를 논증할 것이다.

신약성경은방언”(γλῶσσα)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특히 고린도 전서에는 방언이 최소한 가지 의미(“외국어황홀경의 발화”) 쓰이고 있으며황홀경의 발화(반복되는 모를 소리)”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으로 나뉘고 있다. 논문에서는 이에 대해 면밀히 분석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연구가 오순절파의 방언의 효용성에 대해서 객관적 결론을 내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수로서의방언천사들의 언어 수도 있고황홀경의 발화( 모를 없는 소리)” 수도 있을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미전도 종족의 언어 수도 있기 때문이며 일반적으로황홀경의 발화 경우 이를 통해서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를 느끼고 있는 많은 신도들이 있는 것이 분명한 데다 이러한 현대교회의 방언현상에 대해서는 다시 복잡한 분류와 논증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문의 연구의 범위는 고린도전서 14장에 나타난방언”(γλῶσσα) 의미를 밝히는 두며 연구가 현대교회의 영적 현상에 대해서 좋은 제안을 것으로 기대한다.



[1] 이성호, 「교회의 직분자가 알아야 할 7가지」 (서울 : 세움북스, 2017), 219.

[2] Robert G. Gromacki, 현대방언운동연구, 김효성역 (서울 : 기독교문서선교회, 1983), 7-8.

[3] 문효식, 방언에 대한 신학적 평가, 국제신학 제 4(2002.12) (국제신학대학원학교 출판부), 101

[4] 의 뜻 모를 알 수 없는 소리로 보는 학자는 「두란노서원의 목회와 신학 편집팀」, 김동찬, 샌더스(J. Oswald Sanders), 이상훈, 유명복, 배종렬 의 외국어로 보는 학자는 어거스틴(Augustine), 캘빈(J. Calvin), 권기현, 데이어(Joseph H. Thayer), 그로마키(R. G. Gromacki) 의 두 가지 의미가 혼재한다고 보는 학자는 터툴리안(Tertullian), 에봇-스미스(Abohott-Smith), 노우호 등이 있다. 

[5] Douglas Webster, Pentecostalism and Speaking with Tongues (Londo, England:Highway Press, 1964), 21.

[6] 가스펠서브, ed. 라이프 성경단어 사전 (서울 : 생명의말씀사, 2011), 221.

[7] Stanley Mr. Brugess, medieval Examples of Charisatic Piety in the Roman Catholic Church, Perspectives on the Pentecostalism, ed. Russel P. Spittler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76): 19-21

[8] 옥한흠, 성령과 방언 (현대교회와 성령운동 : 정음출판사, 1984), 137-38

[9] 노우호, 「고린도전후서 주해」 (산청 : 에스라하우스, 2019), 9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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