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 신학 하동안 교수)

1. 저자의 성서학자로서의 지위

저자는 호남 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고려대학교, 장신대 신대원, 동 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저서로서 교회란 무엇인가?(1999,공저), 구원이란 무엇인가?(2002,공저)등이 있다대한 예수교 장로회 통합측 교수로서 다락방+개혁교단 회원자격 철회운동, 최삼경 목사 이단결의 취소 촉구 등 활동을 하였음

2. 2. 신약성서 신학내용분석

신약성서 신학은 근세의 태동과 함께 시작되고 발전되어 왔음. 근세는 인류가 나아갈 길을 모르고 역사의 진행방향을 알지 못하는 위기의 시대에 교회는 성서의 원어 연구와 성서의 본래의 뜻을 교리에서 해방되어 새롭게 알아보고 노력하는 종교개혁운동으로 나타났다. 신약성서 신학은 늘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맞추어 신약성서를 새롭게 해석하고 시대문제의 해결과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도록 도전을 받는 것이다신약성서 신학은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역사비평학의 혹독한 연단을 받고, 다시금 변증법적 신학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중심한 신앙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신약성서신학은 신앙의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궁극적임을 깨달아 그리스도를 온전히 찾고자 노력하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하나님의 나라 ]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가 선포한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옳게 이해하는 것은 복음서를 바르게 알 수 있는 길이 된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신약성서의 주요 사상은 그 역사적인 배경을 통해서 그 기원과 발전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며, 그에 따라 올바른 해석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적 성격

먼저 하나님 나라의 역사적 성격을 살펴 보면 세계 역사를 볼 때 역사를 이루는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민족인 것을 지금까지의 역사 진행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다. 민족이 역사의 진행속에서 제 기능을 완수하기 위하여 힘과 지혜를 동원할 수 있는 조직이 국가라 말할 수 있다. 역사 진행에서 국가의 의미는 큰 것이다. 국가를 옳게 이해할 때 역사의 뜻과 의미를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인류를 향하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국가의 조직으로 지상의 국가 조직과 대비되나, 지상의 국가 조직이 시사하는 바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실마리를 주는 것이다계약백성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맺어진 계약을 위반하고 범죄의 길로 나아갈 때, 그러한 국가가 멸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며 역사의 순리라고 말할 수 있다. 멸망의 위기에 선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로 정치적인 혁명을 피하여 예언자운동으로 나아간다예언자들의 활동가운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암시와 전조를 읽을 수 있다.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알 수 있는데 아모스는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5:4~15 )라고 예언하였다. 아모스 선지자는 국가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의로움임을 예언하고 있다. 호세아의 예언속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성격은 어떠한가? “에브라임아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히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4-6)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분열과 멸망, 이방 민족의 압제를 통하여 그들의 영적인 세계가 넓어지고 깊게 되어 이스라엘의 지방색을 탈피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땅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민족의 땅에도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방민족의 압제와 질고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은 세상적인 소망을 가지지 못하고 깊은 절망 속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상의 죄와 악의 무서움을 통감하고 새로운 소망을 가지게 되는데 하늘의 세계와 영의 세계의 질서 정연함을 깨달아 지상의 혼돈과 죄억을 하늘의 세계와 연결지어 해결하려는 사상이 움트게 된다. 여기서 이러한 문제를 깨닫고 세상의 악함을 깨닫게 되는 이원론적인 사고가 생겨나는 것이다하나님의 나라는 종말론적인 성격이 강하게 스며들었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옛 질서를 변화시킨 것이기 때문에 새 질서가 초월적인 언어로 묘사되며 포로 후기의 묵시문학 속에서는 먼저 현세적이며 지상적인 왕국이 존재하고 후에 새롭게 변화된 영원한 질서가 뒤따른다. 고난과 억압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유대의 포로 후기 묵시문학은 이러한 영과 육, 하늘과 땅,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대별시키는 사상이 강조됙고 여기서 메시야는 수난의 종으로 묘사된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53:4-5)

하나님 나라의 현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활동 가운데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그 역사하는 힘이 강하고 종말론적인 성격으로 나타난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쫒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1:20)고 예수는 벙어리를 고치신 후에 말씀하고 계신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1:12)고 기록하며 마태는 하나님 나라의 힘의 관련성을 설명구약성서를 통해서 보여 준 하나님의 모습은 만군의 여호와이거나 만군의 하나님과 같이 권위와 위엄으로 가득찬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제사가 의식적이요, 형식에 치우친 면이 많다. 예수가 자기 의식이 탄생하는 성장기인 12세에 예루살렘의 유월절 행사에 참여하였을 때 많은 짐승이 도살되어 제단에 바쳐지는 희생제서를 통해서는 피비린내 나는 인간의 잔혹함을 느꼈을 뿐 하나님의 현존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랍비들과 토론해서 선생님과 부모님을 놀라게 했다.(2:41-51)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인류와 가장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는 아버지가 되시고자 하신 뜻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는 것으로 인간의 영적인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모시게 된 계기가 되었다하나님의 나라는 새 이스라엘을 암시. 이스라엘을 통한 국가공동체의 모습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 진실된 통치자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메시야 모습이며 그를 통한 메시야의 온전한 지상 구현으로 실현된 것이다. 거기서 탄생된 새로운 이스라엘 모습은 교회를 통해서 구현된 것으로 암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 민족을 모태로 이루어지나 그것은 국가이든, 교회이든 새로운 공동체인 것이 암시된다하나님의 나라는 새로운 삶의 윤리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데, 구약의 율법이 규율적이요, 제약적인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윤리는 진리요, 생명으로서 기쁨과 자발적인 의욕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윤리는 슈바이처의 말과 같이, 중간 시대의 윤리로 주님의 오심과 그의 재림 사이를 연결하는 임시적인 것으로서, 그 성격은 철저한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완전한 윤리적 수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하나님 나라의 중심은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가 함께하는 곳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된다는 말은 진리이다. 예수의 활동, 즉 하나님의 종 메시야로서의 그의 생애는 하나님의 진실된 뜻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 아버지시라면, 그의 왕국의 권세를 이어 나갈 분이 아들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것이 된다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를 수반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실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태니시니”(16:21). 이는 왜냐하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10:45) 때문이다. 그리스도이 진실된 면은 십자가에서 나타나며, 그의 참된 영광과 부활의 의미도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다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예수의 공생애 첫 말씀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15)였다. 이 말씀 중 2개의 동사, 때가 찼다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말씀은 모두 현재완료 동사를 쓰고 있다. 현재완료형 동사는 시제상 지금 바로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하나님 나라는 신구약에서 달리 표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찬가지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구약의 언약과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 및 승천, 그리고 예수 재림으로 실현되는 새창조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해석

하나님 나라는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상징어로서 인간의 지각세계와 영적인 체험을 전달해 주는 단어이다. , 하나님 나라는 진공 속에서 무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개념을 가진 것이 아니라 역사와 인간생활의 체험을 통해서 무수하게 다양하고 변형된 모습 속에서 그 의미를 읽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하나님 나라의 해석이나 하나님 말씀의 해석은 개념을 이끌어 내는 해석일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력을 이끌어 주는 말씀의 해석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의 해석은 한 번 내려진 해석이 표준이요, 완성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해석은 한 시대속에서는 창의력과 진리가 주어지는 해석일지라도 모든 시대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케리그마와 초대교회 ]

케리그마

케리그마는 신학의 전문용어로서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가 보여준 선포적인 사실을 말한다. 도드는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기의 설교 내용을 요약.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서위의 시대가 도래.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2:16)라고, 그리스도 예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초대교회의 영적 현상을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1:17, 2:28-29)라는 요엘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해석이 일은 예수의 사역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그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2:23 ) 이루어졌다는 성서의 증거와 함께 간단한 설명을 제시. 예수는 부활로 말미암아 새 이스라엘의 메시야로서 하나님 우편에 올리우심을 받았다(2:22-36, 3:13) 교회내의 성령은 그리스도의 현재적인 능력과 영광의 표적이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2:33) 메시야 시대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곧 그 완성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다케리그마는 항상 회개를 호소하고 죄 용서와 성령을 제시하며 구원을 약속함으로 즉 선택 받은 공동체에 들어가는 자들에게 오는 세대의 생명을 약속함으로써 끝맺는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다”(2:38-39)

초대교회

지상교회의 출현은 신비한 것으로, 그 기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 땅에 신약성서의 출현이나 교회의 성립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으로 초대교회의 사상은 케리그마에 나타나 있고, 성례전인 세례나 성찬은 교회와 관련된 것이다. 근대 과학주의 물결에 따른 성서에 대한 비평적인 입장에서의 접근과 탐구는 성서의 문서와 이전인 구전 단계를 알아보는데 까지 이르고 있다또한 교회는 왜 성립되는가?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의 구주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에 의한 것이다. 이 고백을 위해서 또한 공동체적으로 이루기 위해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모이고, 찬송하고, 기도한 것이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난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어하게 하시니라”(2:42-47)고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부흥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초대교회는 공동생활을 이념으로 함에 따라 성도의 사귐을 특별히 강조한다. 성도들은 한 몸과 같은 하나의 단체이다. 한 몸의 지체와 같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12:4-13)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다. 교회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이루어졌다는 실현된 종말론을 가졌다. 그리고 교회는 예수의 부활이라는 새 생명위에 기초된 것으로 예수의 부활은 새 생명의 표본이 된다그리스도 교회는 유대교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형식과 내용이 변화되어 새로운 의식을 갖게 되는데 세례와 성만찬은 교회의 중요한 의식이 되는 것이다. 세례는 물로 씻는 결례의식이지만 가장 중요한 뜻은 세례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예한다는 뜻을 가진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따라 사람이 죄에는 죽고, 그의 부활하심을 따라 의로 다시 살아 새 삶을 누린다는 뜻으로 바울은 해석한다. 세례를 받으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같이 경험하는 것으로 죄는 죽고 의는 사는 새로운 생활로 바꾸어진다는 것이다. 성만찬은 세례받은 신자들의 의식으로, 이러한 성도 간의 교제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신비스러운 교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 바울의 신학사상 ]

바울의 인간관

바울의 인간관은 죄인관이다. 즉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려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3:10-18) 그러나 바울은 죄를 밖에 나타난 개개인의 행위로서 본 것이 아니고, 인간성에 깃들어 그것을 지배하며 악한 생각과 행위를 산출하는 우주적인 큰 세력으로 보고 있다바울의 사상속에는 죄는 단순히 생명의 타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생명의 부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서 죄란 하나님의 목적들에 대한 적대감을 의미하며 또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반역을 의미한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의 심각하고 치유 불가능할 정도의 소외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개념만이 죄를 묘사하는 데 가장 적절한 개념이다.

바울 서신에서 인간성을 설명하는 말로서 육체나 육이라는 말이 쓰이는데, 이것은 인간의 죄성을 말하는 상징어이다. 바울의 육체를 신뢰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업적의 성취자로 만족하는 것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독립을 선언하는 것을 의미한다바울은 죄를 자랑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피상적이고 심리적인 의미에서의 자부심혹은 자만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라고 했다. 자랑하는 것도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피조물이나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죄(자랑함)는 인간 상황의 오해, 즉 생명이 하나님에게서 온 선물(고전 4:6)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임바울의 육체에 대한 개념만이 아니라 율법에 대한 견해도 그의 죄에 대한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육체가 죄의 주인이라면 율법은 죄의 중개자라는 것이다. 구약에서 율법을 지키면 살리라고 약속한 것같이 율법의 본래의 뜻은 살리는 것이다. 율법은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도정으로 세워 두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이 사람을 죽이는 데 이른다고 율법의 실제성을 파악하고 있다. 율법의 기능은 최를 알게 하고 죄를 산출한다. 인간은 율법이 없다면 죄를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나, 율법을 통해서 실행 불가능한 율법을 깨닫고 자기의 죄인됨을 철저히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7:8-11) 율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자기 실존인 죄인 됨을 깨닫는 자의 울부짖음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2-24)

바울의 구원관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의가 없이는 아무것도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피조세계의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대망하는 모습을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8:19-23)라고 기록하고 있다. 피조세계가 도처에서 죄로 말미암은 멸망의 모습 속에서 몸부림치며 구원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의 파괴가 죄이며 이것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의의 회복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룩되었다는 것이 바울의 구원관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1:17 )라고 바울은 증거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이신칭의행동이 인간을 하나님과의 원만한 관계로 회복시키는 것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괴리의 두 편 사이에 존재하는 적대감을 극복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바울의 화해 개념속에 잘 나타나 있다바울은 하나님의 화해의 행동에 관한 사상을 도입할 때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고후 5:18)라고 말한다. 의인과 성화의 관계는 성화가 의인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이룩된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신앙의 실천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으로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고 인도하심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화는 이미 달성된 도덕적 품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하나님과의 특수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하나님의 의는 의인과 성화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하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죄의 종이 된다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이탈, 즉 죽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의인은 하나님과의 화해를 의미하며 그 의인의 열매는 성화(하나님에 대한 봉사), 그 성화의 종말은 차례로 영생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6:22)

3. 리뷰

신약성서 신학은 중세 십자군 전쟁이 실패하고 인류가 중세의 그릇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반성과 더불어 인문주의 문예부흥, 계몽철학, 포스트 모더니즘 등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태동되고 발전되어 왔다. 교회는 성서의 원어 연구 등을 통해 중세의 교리에서 해방되어 종교개혁운동으로 활로를 모색하였다종교개혁을 주도했던 독일인 마르틴 루터는 성경을 원어로 연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 그 은혜를 통하여 죄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근거로 히브리어 및 헬라어를 읽는 것이 개혁지도자가 가져야 할 위대한 책임과 특권으로 생각했다고 한다하나님나라는 구약부터 신약을 거쳐 새창조에 이르는 노정에서 일관되게 깔려 있는 기독교 이론의 밑바탕이다. 구약에서의 언약부터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까지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고 이끌고 이루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선택받은 민족이었으나 디아스포라로 전세계에 흩어졌지만 이것은 인류의 구원을 세계만방, 땅끝까지 전파하려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에 근거한 것이었다사복음서에서 공관복음 세 책은 예수님을 목격한 것을 증언한 복음서이며 네 번째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그 목격한 것을 묵상한 결과를 복음서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복음서의 가장 놀라운 소식은 예수님의 복음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계획이라고 선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에게 가장 어필하고 있으며 마가복음은 이방인 특히 로마인에게 어필하고 있고 누가복음은 논리적인 그리스인들에게 어필하는 점이 크며 요한복음은 요한의 묵상인 만큼 모든 인류를 향한 통합적인 복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은 누가행전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누가의 저술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하나의 세트로 보아 누가복음을 읽고 사도행전을 읽을 때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부분이 있다. 사도행전은 역사서로 보아야 하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두 책을 합하면 신약전체의 30%를 차지한다. 누가에 의하면 복음은 십자가에서 끝난 것이 아니고 사도행전에서 오히려 십자가 이후 그 복음이 유대에서 로마까지 어떻게 퍼져나갔는지를 생동감있게 전달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사실상 바울과 베드로 두 사도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신약신학은 많은 부분을 바울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으며 바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노력을 기울여 왔다. 본서 역시 특히 바울신학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으므로 리뷰에서는 바울의 사상과 신학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이방인의 사도 바울신학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바울서신을 정리해본다. 논란이 있는 히브리서를 포함 총 14편의 서신서가 있는데 이를 상황변화에 따라 구분해 보면 재림서신으로 데살로니가 전서, 데살로니가 후서, 갈라디아서,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가 있고 옥중서신으로 골로새서, 에베소서, 빌레몬서, 빌라도서가 있으며 유언서신으로 히브리서와 로마서, 디도서, 디모데 전서, 디모데 후서가 있다.

사도바울의 서신서 14

특징

서신서

내용

 

재림서신

살전, 살후

갈라디아서

고전, 고후

교회에 찾아온 성도들의 죽음

이방인들도 율법을 따라야 하나

내재되었던 문제들의 재폭발

 

옥중서신

,

빌레몬서

빌라도서

이방인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대한 대항

골로새의 지도자 빌레몬에게 보내는 해방서신

진정한 믿음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뻐하는것

 

유언서신

히브리서

로마서

,딤전,딤후

사랑하는 동족 유대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마지막으로 남기는 사도 바울의 신학 총정리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보내는 마지막편지

 

바울은 우리에게 사탄으로 대표되는 선과 악의 대결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인류구원드라마를 총 4개의 막으로 구분했다. 두 아담에 의해서 인류전체의 운명이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 두 번째 아담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다. 첫 번째 아담으로부터 죽음이 들어왔으며 두 번째 아담으로부터 부활이 이루어졌음. 이것이 바울의 아담 기독론이다. 아담에서 토라까지를 첫 번째 막으로 보는데 여기에는 아담과 아브라함이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원형이 아브라함이다. 그러면 토라는 왜 존재했는가. 토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지만 이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는 교육의 하나의 과정인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훈련시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도 한번도 토라를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다. 인간은 아무도 의로운 사람이 없음을 확인시켜주기 위한 하나님의 프로그램으로 보아야 한다. 토라의 기능은 한시적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바울은 토라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을 거룩한 것이라고 했다. 토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예비적 과정으로 토라시대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다. 성령과 동행하면 그리스도의 법을 따르면 토라는 자동으로 따라 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이다. 하나님 만나는 경험이 다시 필요하다. 바울은 교회시대를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새창조로 넘어간다토라 시대 이전에 이미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조상이 있었다. 두 번째 아담을 통해 인류의 구원과 새창조를 이룬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의 모형인데 약속을 믿는자를 구원한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율법을 향한 열정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율법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선포한다. 삶의 변화가 토라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성령의 법이 생명의 법인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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