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 고대 그리스 철학 :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다. 철학은 사물의 의심, 특히 자기가 소중히 마음에  고수해 온 신념, 즉 교리나 원칙을 의심하게 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이들 신념이 어떻게 우리들에게 확고한 것으로 되었는지 또 남모르는 소망이 사상의 옷갈피에 욕구를 집어 넣어 어느새 그 확실성을 만든 것은 아닌지, 그것은 알 길이 없다고 한다. 마음이 자기 자신을 검토하기 전에는 진정한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철학의 출발점인 불가지론,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단 한 가지만을 안다라고 주장하였다그는 자기 나름의 종교적 신앙이 있었다. 그는 유일신의 존재를 믿으며 죽음이 자기를 멸망  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겸손하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처럼 불확실한 신학 위에 불변의   도덕률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만일 모든 종교적 교리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경건파에게나 무신론자에게도 타당한 도덕체계를 세울수 있다면 여러 가지 신학은 생겼다 없어졌다 할지라도 도덕의 규범만은 늦추어지는 일 없이 어리석은 개인을 공동체의 평화로운 시민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소크라테스는 또한 지적으로 통치된 사회에서 평화와 질서와 선한 의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오직 투철한 통찰만이 필요함을 자각하고 있었다. 국가의 관리를 지적이고 현명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사고로 사회를 구하고 강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플라톤

플라톤은 민주정치를 파괴하고 가장 지혜롭고 선한 사람들이 다스리는 정치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장 슬기롭고 선한 사람들을 찾아내어 국가를 다스리게 할 방도를 세우는 것이 플라톤이 일생을 통하여 전념한 과제였다. 플라톤은 10여년간 이집트, 시칠리아, 이탈리아, 인도 등을  여행하면서 훗날 그가 유토피아 <국가론>을 저술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플라톤은 정의란 단순히 철학이라고 말한다. 만일 인간이 단순하다면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로 족할 것이라고 하였다. 국민은 지성이 없으므로 통치자의 명령에 순종할 뿐이어서 중우 정치는 국가라는 배의 항해를 그리치게 한다. 이러한 민주정치의 종말은 전제정치이며 참주정치이다. 민중은 아첨을 좋아하며 꿀맛에 주려 있으므로 결국 가장 교활한자가 국민의 보호자 자처하여 최고의 권력을 잡게 된다.. 무능과 부정을 공무에서 몰아내고 공동의 복리를 위해 통치할 수 있는 가장 우수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준비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정치철학의 과제이므로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현재의 왕과 군주들이 진지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철학을 하여 지혜와 정치적 지도력이 한 사람에게 겸비될 때까지…… 국가와 인류는 결코 재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 사상이라는 아치의 Key stone(宗石) 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정신분석과 관련한 중요한 이론을 세웠는데 우리의 정치심리학이 혼란되어 있는 것은 인간의 여러가지 욕망과 본능을 충분히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꿈은 이런 미묘하고 포착하기 얼운 성질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고 하여 후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은 이상국가 실현을 위한 국민의 심리적, 도덕적 기초를 갖추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으로서 사회의 도덕적 요구에 대해 초자연적 권위의 승인을 내리는 것이라고 하며 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국민은 신을 믿지 않는 한 강해질 수 없다고 확신하였으며 단순한 우주력이나 제 1원인 또는 생의 비약을 가지고는 도저히 희망,헌신,희생,위안, 용기를 줄 수 없지만 신은 이것을 할수 있다고 하면서 이기적 개인주의자를 흔들어 외경심을 갖게 하여 탐욕에 절도를 주고, 정욕을 억제시킬 수 있다. 만일 신에 대한 신앙에 인격의 불멸에 대한 신념을 더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영원한 삶에 대하나 희망은 우리들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는 용기를 줄 뿐 아니라 사랑 하는 이의 죽음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용기도 준다. 신앙을 가지고 싸우는 자는 이중으로 무장  되어 있는 셈이다. 비록 어떠한 신앙도 증명되지 않고 신은 결국 우리들의 사랑과 희망이 의인화된 이상에 불과하며 영혼은 칠현금의 소리와 같아 외형인 그 악기와 동시에 죽는다 해도 신앙이 우리를 해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며, 우리와 우리의 자손에게 수많은 이익을 줄 철학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리스 시대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알렉산더의 부왕인 필리포스가 그리스를 통일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알렉산더의 스승으로 초빙한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정치적인 상황을 감안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는 정계가 언제 일변하여 평화스런 철학적 생활을 폭풍우로 몰아넣을지 모른다는 사실까지도 생각해야 했으며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만 비로소 아리스토   텔레스의 정치 철학과 그의 비극적 최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수많은 책을 저술했으며 거의 백과사전이라 할만한 문고를 가지고 있다. 그는 인류에게 전문적이고 추상적인 압축된 과학을 유산으로 남겼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위대한 공적은 오직 혼자만의 엄격한 사색으로 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저서오르가논은 중세사상의 참된 옥토가 되어 스콜라 철학의 엄격한 어머니가 되었다. 그러나 그 교리에 얽매여 불임 상태에 이르렀음에도 청년기인 유럽의 지성에 추리와 세말한 분석의 훈련을 베풀고 근대과학의 전문용어를 만들며, 자기를 낳아 주고 길러준 체계와 방법으로는 모자랄 만큼 정신을 크게 성장시켰으므로 마침내 그것을 벗어버리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논리학이란 정확한 사고의 기술과 방법이다. 그것은 모든 학문과 과학 및 기예의 방법이며 음악 속에까지 스며들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큰 공헌은 삼단논법을 정립한데 있다. 삼단논법이란 세 개의 명제로 이루어지는데 제 3명제(결론)는 다른 두 개의 명제(대전제 및 소전제)의 명백한 진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의 형이상학은 생물학에서 성장하였는데 세계의 모든 사물은 내부의 충동에 움직여져 지금 보다 더 큰 것이 되려고 하며 모든 것은 실제 형상일 뿐 아니라 그것의 질료였던 어떤 것에서  생장한 것으로 형상인 그것들은 또 그 자신보다 높은 형상을 생장시키는 질료가 된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자연이 특정한 자기 실현을 향하여 움직인다. 어떤 사건을 규정하는 여러 원인 중 목적을 규정하는 궁극 원인이 가장 결정적이고 가장 중요하다. 달걀은 오리가 아닌 닭이 되는 것과 도토리는 버드나무가 아닌 참나무가 되는 것처럼 내면적으로 계획되고 예정되어 있다. 이는 어떤 외적인 신의 존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인 것이며 사물의 공동형태와 기능에서 생기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신의 섭리는 자연적 원인의 작용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존재한다. 신은 청년기의 젊은 정신이 품을 수 있는 의인관에 의해 상상된 단순한 인간은 아닐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에 관한 오래 된 궁금증에서부터 이 문제에 접근한다. 운동에는 근원이 있는데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마지막에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고 다른 일체를 움직이게 하는 최초의 것, 즉 비물체적이고 분할할 수 없고 넓이가 없고 성이 없으며 감정이 없는 불변의 완전하고 영원한 어떤 존재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은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다. ‘신은 세계를, 사랑의 대상이 그것을 사랑하는 자를 움직이는 것처럼 움직인다.’고 한다. 신은 세계의 궁극 원인이고 사물의 원동력이며 목적이고 세계의 형상이다. 세계의 생명의 원리, 세계의 생성 과정과 힘의 총화, 세계의 성장의 내재적 목표 전체를 현실화하는 엔텔레케이아이다. 신은 순수한 에네르게이아, 스콜라 학파의 악투스 푸루스이다. 이것은 다분히 현대의 생리학이나 철학에서 말하는 신비적인 이라 할 수 있다. 이 신은 인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력이다. 그는 관조를 사랑하여 신의 개념을 희생시켰다. 그의 신은 플라톤의 철인왕과 다를 뿐 아니라 엄격하고 피가 통하는 실체로서의 여호와 신, 인자하고 무엇이든  염려해 주는 아버지 같은 그리스도교의 신과도 아주 다른 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보편개념-이데아-에 관한 실재론과 정치에 관한 이상론을 공격 하고 스승이 그린 미래화에 많은 오점을 발견하였다. 그는 플라톤이 명백히 수호자인 철학자들에게 강요한 병영 생활과 같은 민중과의 끊임없는 접촉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보수적이긴 해도 개성, 사생활, 및 자유를 사회적 능력이나 재능 이상으로 존중한다. 공산주의는 우수한 능력 발휘에 충분한 자극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파탄에 이른다. 획득의 자극은 노동력에 필요하며 소유의 자극은 적당한 근면, 절검 및 장래의 준비에 필요한 것이다가장 오랫동안 인류의 정신을 지배한 그의 업적에 대한 비평을 하자면 우선 그의 논리학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그는 삼단논법을 인간의 추리과정의 기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자기의 추리를 수식하는 방법을 기술한 것에 불과하다또한 그의 자연과학에 많은 불완전한 관찰이 남아 있는 것은, 실험과 유효한 가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윤리학은 논리학의 일부일 뿐이다. 이상적 생활이란 올바른 삼단논법과 같아 그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은 개선을 향한 격려라기보다 오히려 예절의 안내서다. 그는 과도를 피하라는 델포이 신탁의 명령을 너무 완벽히 지키고, 오직 극단을 배격하려던 나머지 마침내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의 계몽을 위해 이처럼 큰 공헌을 한 사상가는 없었으며  후세의 모든 시대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존하였고 그의 어깨에 올라타 진리를 보려고 한 것이다. 그의 저서는 유럽철학에서 신학의 성경처럼 모든 문제의 해결점을 갖고 있는 절대적인 텍스트가 되었다. 1260년에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기독교 학교에서 필독서가 되었고, 종교회의는 그의 견해에서 벗어나는 것을 유죄로 한다는 입장을 선언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인류의 지성을 지배한 정신은 그 외에 다시 없다.

 2 부 근대철학

프란시스 베이컨 .  

베이컨은 철학을 좀 더 유용한 면으로 스콜라적 논쟁에서 떠나 인간의 행복을 밝히고 그것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전향시키려고 결심하였다. 그의 다방면에 걸친 재능과 거의 무한에 가까운 지식은 그를 모든 중요한 위원회의 귀중한 회원이 되게 하였다. 높은 관직이 점차 그의 앞에 열려서 1606년에는 법무차관에 추대되고, 1613년에는 법무장관이 되었으며 1618년에 마침내 57세로 대법관이 되었다그의 작품 <에세이> 명예와 명성에 대한 에세이속에서 그는 모든 등급의 명예를 정치적 및 군사적 공적에 부여하고 문학적 및 철학적 업적에는 하나도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하여속에서는 진리의 탐구, 이것은 진리에 구애하는 일, 또는 구혼하는 일이다. 진리의 인식, 이것은 진리의 찬미이다. 그리고 진리의 신앙, 이것은 진리의 향수이고 인간 본성의 최고 선이다라고 씌어 있다. 그는 문장을 길게 늘이기 위한 말이나 쓸데없는 말을 경멸한다. 그는 짧은 글 속에 무한한 보배를 담고 , 논문에서도 한 두 장마다 인생의 주요 문제에 관한 달인들의 명민한 지혜와 정수를 담았다그는 욕망에 대한 스토아적 억압만큼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본능이란 반드시 나타나기 때문인데 본성은 가끔 은폐되고 압도될 수 있지만, 소멸되는 일은 드물다.  강압은 그 보복으로 본성을 한층 광포하게 한다. 가르침이나 설교는 본성이 귀찮게 조르는 것을 조금은 누를 수가 있으나 오로지 습관은 본성을 개조하고 정복한다고 말한다.

그는 입신출세를 거듭하는 동안에도 철학이 부활이나 재건을 계속 생각했다. 그는 그 <저작계획>속에서 몇 개의 입문적 논문을 써서 철학의 정체는 낡은 방법이 그 기능을 상실  하고도 계속 고집하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것을 설명하고 새로 시작하기 위한 제안을 약술한다. 또한 새로운 학문의 분류를 시도하여 모든 학문에 그 재료를 할당하여 각 분야의 미해결 문제의 목록을 만들며 자연 해석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바쁜 손을 실제로 자연과학으로 돌려 자연의 여러 현상을 연구한다. 그리고 과거의 저술가들이 중세의 말이 많은 배경에서 이탈하여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모든 진리를 향해 기어 올라간 그 지성의 사다리를 가리키며 새로운 방법에서 틀림없이 나오리라고 믿는 과학적 여러 성과의 어떤 종류의 예상도 시도하고 마지막으로 제 2철학으로서 이 모든 싹트고 있는 여러 과학 ---- 그는 예언자가 되기를 바랐으나 ---- 에서 꽃필 미래상을 그리는 데 이 전체가 <대혁신>, 곧 철학의 대재건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 었다. 그야말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제외하고는 철학사상 최초의 일이다. 이론보다는 실천을, 사변적 논리보다도 특수한 구체적 결과를 노리는 점 등이 다른 모든 철학과 그 취지를 달리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식은 임이지, 단순한 논증이나 장식은 아니라고 주장했다베이컨은 철학을 풍요케 하는 새로운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불모지였다고 주장 하면서 그리스 철학자들의 큰 실책은 이론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관찰에는 시간을 쏟지 않은것이라고 한다. 그는 귀납법에 서사시적 모험을 시도하여 논리학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는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을 배격하고 실험을 탐구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자연을 고문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 증언을 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귀납의 필요를 역설하였다. 그에 따르면 귀납법을 통해서 사실에 대한 이 끈질긴 축적과 분석에 의해 우리는 연구하려고 하는 현상의 형상, 즉 현상의 숨은 본성과 그 내적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스피노자

스피노자의 체계에는 실체, 속성, 양태라는 세 가지 주요한 술어가 있다. 간단히 하기 위해 우리는 속성을 잠시 옆에 놓아두기로 한다. 양태란 무엇이라도 좋은 개개의 물건 또는 사건이며 실재가 잠시 동안 취하는 특수한 형식 또는 형상이다. 실체를 거의 영원한 질서와 같은 의미로 씌였고 실체를 자연 및 신과 동일시 한다. 그는 자연을 이중의 모습으로 이해하고 있다. , 한편으로는 능동적으로 활발하게 약동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데, 이것을 스피노자는 능산적자연(베르그송의 생의 비약이나 창조적 진화)이라고 부르며 다른 한쪽에서는 이 과정은 수동적 산물,  소산적 자연, 자연의 재료와 내용, 나무나 바람이나 물, 산이나 들, 그 밖에 무수한 외적 형태로서 이해하고 있다. 그가 자연의 실체와 신의 동일성을 부정하는 것은 후자의 의미에서이고 긍정하는 것은 전자의 의미에서이다실체와 같이 신은 인과적 연쇄 또는 과정, 만물의 기초적 조건, 세계의 법칙 및 구조이다.  양태와 사물 사이에 있는 이 구체적 우주와 신의 관계는 다리와 그 설계구조 및 건설에 따르는 수학 및 역학의 여러 법칙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이것들은 다리를 받치는 기초이자 다리의 기본조건이며 다리의 실체이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다리는 무너지고 만다. 이 다리와 같이 세계 그 자체도 그 구조와 그 법칙으로 받쳐져 있다. 그것은 신의 손으로 받쳐져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신의 의지와 자연의 법칙이 여러가지로 표현되는 동일 실체라고 한다면 모든 사건은 변함  없는 법칙의 기계적 작용에 따르는 것이지 천계에 자리잡고 있는 무책임한 독재자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다. 데카르트가 물질과 무레 소겡서만 본 기계작용을 스피노자는 신과 정신속에서도 본다.

물질과 정신과 관련 그는 자유로운 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 생의 욕구가 본능을 규정하고, 본능이 욕망을 규정하며, 욕망이 사고와 행위를 규정하는 것이며 정신의 결의는 신체의  상태가 다름에 따라 다른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신 속에는 절대적인 의지, 또는 자유로운 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은 이런 일 또는 저런 일을 의지하듯이 어떤 원인에 의하여 결정 되고, 이 원인도 또한 다른 원인에 의하여 결정되어 무한에 이른다고 한다예지와 도덕과 관련 본능은 추진력으로서는 훌륭하지만 안내인으로서는 위험하다고 보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본능의 개인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의하여 각 본능은 전체의 행복에는 무관심 하게 그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식탐, 호전벽, 또는 색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데서 얼마나 큰 황폐가 인간에게 일어났었는가. 그리고 마침내 인간은 자기를 이겨낸   본능--- 다시 말해서 이성---에 결국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가 날마다 사로잡히는 여러 감정은  신체의 어떤 부분이 다른 어느 부분보다도 많이 자극되는 데 관계된다. 그 때문에 감정은 일반적으로 과잉되고 정신을 단 하나의 대상을 고찰하는 데 붙들어 두어 다른 것을 돌아볼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체의 일부나 약간의 부분에만 관계하는 기쁨과 슬픔에서 생기는 욕망은 그 사람 전체의 이익을 돌보지 않는다우리자신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완성하여야 한다고 본다.

볼테르와 프랑스 계몽주의 .

    빅토르 위고는 볼테르의 이름을 말하는 것은 18세기 전체의 특징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극찬하였는데 볼테르는 프랑스에서 르네상스요, 종교개혁이며, 거의 혁명 그 자체였다. 볼테르와 루소는 봉건적 귀족정치에서 경제적 정치적 지배권이 중간계급으로 전환하는 과정의 2대 함성이었다. 신흥계급은 현행 법률과 관습을 불편하다고 느끼면, 관습보다 이성, 법률보다 자연에 호소한다  마치 개인의 마음속에서 반대되는 욕망이 부딪쳐 불꽃을 발하듯이 부유한 부르주아는 볼테르의 이성주의와 루소의 자연주의를 지지했던 것이다.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낡은 풍습과 관습의  힘을 늦추어 감정이나 사상을 새롭게 해서 마음의 문을 열고 실험과 변혁을 받아들이기 쉽게 할 일이 필요했다볼테르는 교회의 횡포에 대한 전쟁에 열중한 나머지 만년에는 정치의 부패와 압박에 대한  싸움에서는 거의 물러나 있었다. 그는 부유하여 보수주의로 기울었으며 공화정체가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결점도 잘 알고 있었다. 군주정체에 대해서는 현자가 군주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현자가 아닌 경우에는 역시 결점이 많은 정체로 보았다그는 <철학사전>인간항 끝부분에 두려운 인간에 관한 일반적 고찰에 대해 쓰고 있다.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에 생존하고 있는 식물적 상태와 유년기의 동물적 상태에서 이성의 성숙을 자각할 때까지 20년이 걸린다. 인간의 구조를 다소나마 발견하는 데도 3천년이 필요했다. 인간의 정신을 알기 위해선 영원한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을 죽이는 데는 눈 깜짝할 사이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볼테르는 항상 이성을 믿었으며 말과 글로 사람들을 보다 잘 계몽하고 개선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칸트

    임마누엘 칸트는 19세기를 지배한 사상이었다. 1781 <순수이성비판>에 의해 세계를 독단의 꿈에서 깨게 하였다.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비판철학은 유럽의 사상계를 지배하여 왔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낭만주의의 물결을 타고 잠시 성행하였으나 그 물결은 1848년에는 잠잠해졌다. 1859년 이후는 진화론이 그 이전의 것을 남김없이 모조리 쓸어버렸다. 그리고 니체의 통쾌한 우상파괴는 세기가 끝나가면서 철학무대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제 2차적인 표면상의 움직임에 불과하고 그 밑에는 칸트주의의 억세고 부단한 조류가 더욱 넓게 또 깊게 흐르고 있었다. 오늘날 칸트주의의 본질적 원리는 성숙한 모든 철학의 공리가 되어 있다. 니체는 칸트의 학설을 이미 증명된 것으로 보고 앞으로 나간다. 쇼펜하우어는 <순수이성비판>독일어로 쓴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라 하여 누구나 칸트를 이해하기  까지는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다고 했으며 스피노자에 대하여 언급한 헤겔의 말을 인용해보면 한 사람의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칸트 학도여야 한다는 것이다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순수한 이성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사물을 그릇되게 하는 감각을통하여 우리가 받아들이는 불순한인식 위에 그것을 높일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칸트에 의하면 순수이성이란 우리의 감각을 통하여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감각적 경험 에서 독립한 인식, 다시 말해서 정신의 내적 본성 및 구조에 의해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인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 <단순한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를 통해 신의존재를 증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보고 세계의 계획성 논의로 되돌아간다. 그는 계획성과 미를 서로 관련시키는 일에서 시작하여 마치 예지의 존재자에 의하여 계획된 것처럼 구조의 균형과 통일을 나타내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는 균형 잡힌 구성의 관조는 항상 우리에게 무관심한 적의를 이루는것, 그리고 자연미에 대하여 그 미 자체를 위하여 갖는 관심은 언제나 선량하다는 표시다라는 것을 간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외적 계획으로 보이는 것은 신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며 신의라는 것을 휘두르는 신학자들은 그것을 버려야 할 것이고, 그것을 버린 과학자들은 그것을 이용하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칸트는 69세노인으로서는 대담하게 종교에 관한 주장을 하는데 종교는 이론이성의 논리 위에기초를 둘 것이 아니라 도덕의 의식이라는 실천이성위에 기초를 두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성서나 계시도 그 도덕적 가치에 의해 평가되어야 할 것이나 그 자체가 도덕법칙의 재판관이 될 수는 없다. 교회나 교의는 다만 인류의 도덕적 발달을 돕는 한에서만 그 가치를 지니는데 불과하다.  단순한 신앙고백과 의식이 종교의 시금석인 도덕적 탁월성으로 변하자 마자 종교는 사라졌다고 할 것이다. 진정한 교회는 아무리 뿔뿔이 흩어져 있다 할지라도 공통되는 도덕법칙의 숭배에 의해 결합되어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이 같은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살았 으며, 또 생명을 버렸던 것이다. 이 진정한 교회를 그리스도는 바리새인의 교회주의에 대립시켜 지지하였으나 어떤 새로운 교회주의가 이 고귀한 사상을 거의 압도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신의 나라를 지상에 접근시켰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해하여 우리들 사이에 신의 나라가 아닌 성직자의 나라를 건설했다는 대담한 주장을 편다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신학자를 경멸하였다. ‘신학자들의 최후수단으로 우리는 수많은 국민 사이에서 화형을 본다고 하였으며 종교를 민간 형이상학이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뒤에는 더떤 종류의 종교적 실천 및 교리에 깊은 의의를 인정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리스도교를 깊은 염세철학으로 표현하였다젊은 처녀에 관하여서는, 연극에서 쓰는 말을 빌리자면 자연은 충격효과라고 불리는 것을 노린 것이다. 자연은 처녀들의 그 남은 생애 전부와 맞바꾸기 위해 고작 이삼년동안 넘쳐흐르는 미와 매력, 그리고 풍만함을 주었던 것인데 그것은 그 이삼년 동안 남자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남자를 열중하게 함으로써 처녀를 한평생 무슨 형태로든 어엿이 돌보아 주자고 생각하기 위해서였다. 만일에 남자가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렇게 하는데 아무런 확실한 보증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자연은 이 경우 늘 상투적인 절약을 하는 것이다.  그리스의 멸망이 헬라스의 뺨에 스토아주의의 창백과 에피쿠로스의 자취를 남긴 것처럼 나폴레옹 전쟁의 분란은 유럽의 영혼에 서글픈 피로를 느끼게 했으며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이 피로의 목소리였다. 유럽은 1815년 무서운 두통을 앓았다. 인격 진단의 단서인 인간의 행복은 외부 사정에 의하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본질에 좌우된다고 쇼펜하우어는 인정하고 있다. 염세관은 염세주의자의 기소장이다. 병적 체질과 노이로제적 정신, 공허한 여가와 침울한 권태의 생활을 가정한다면 쇼펜하우어 철학의 정확한 생리적 전제가 떠오른다. 염세주의자이게 위해서는 여가가 있어야 한다. 바쁜 생활은 언제나 심신을 건강하게 한다. 쇼펜하우어는 알맞은 목표와 견실한 생활에서 오는 밝음을 찬미하였지만 그러나 그런 말을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열반은 한가한 인간의 이성이다. 너무도 많은 것을 원하며 하나의 정열에 전부를 내걸음으로써 일을 시작하고 실패하게 되면 무슨 일에도 열의가 없는 견딜수 없는 권태속에서 여생을 보내는 차일드 헤럴드나 르네 같은 자의 이상이다.

스펜서의 불가지론                          

19세기 영국에서는 생물학의 발달과 진화론이 대표적으로 발달되었다. 이 분야의 과학발전을위한 국제적 협력은 모범적이어서 칸트는 인간이 원숭이에서부터 진화하는 가능성을 논했고 괴테는 <식물의 변태>라는 책을 썼으며 에라스무스 다윈과 라마르크는 종은 단순한 형태에서 사용 및 사용할 수 없는 결과의 유전에 의하여 진화했다는 이론을 제기했다. 1850년대에는 진화라는 관념은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스펜서는 다윈보다 앞서 <진화의 가설> <심리학의 원리>에서 진화의 사상을 기술했다. 1858년에 다윈과 윌레스는 그 유명한 논문을 린네 협회에서   낭독했다. 그리고 1859, 구 세계는 신심 깊은 사교들의 의견에 의하면 <종의 기원>의 출판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 책을 보면, 왜 그런지는 분명하지 안지만 아무튼 고등한 종은 하등의 종에서 진화했다는, 막연한 관념이 아니라 생존경쟁에서의 자연도태, 또는 우량종이ㅡ 보존에 의한 진화의 현실적 경과에 관한 이론이 상세하고도 풍부하게 실증되어 있다. 10 동안은 누구나 다 진화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스펜서를 이 물결의 선두에 올려놓은 것은, 진화의   개념을 모든 연구영역에 적응케 하려고 생각한 밝은 정신과 거의 모든 지식을 자기 이론에 적응케 한 그 폭넓은 정신이었다. 17세기에 수학이 철학을 지배하여 데카르트, 홉스, 스피노자,  라이프니츠,파스칼을 세상에 내보낸 것 처럼, 또 심리학의 버클리, , 콩디약, 칸트의 철학을 지도한 것처럼 19세기에는 생물학이, 셸링, 쇼펜하우어, 스펜서, 니체, 베르그송의 철학적 사고의 배경을 이루었다스펜서는 <제일원리>에서 나쁜 일 속에 친절한 영혼이 존재할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오류속에 진리의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어버리고 산다.’ 그래서 그는 여러가지 신앙의 제각기 다른 형태 밑에서 인간의 영혼을 지배하는 뿌리 깊은 힘을 종교에 부여해 온 그 진리의 핵심을 발견하기 위해 종교적 관념을 음미할 것을 계획했다스펜서는 진화와 관련하여 진화란 물질의 통합과 이에 따르는 운동의 방산이다. 통합하는  동안 물질은 부정을, 연관 없는 동질성에서 일정한 연관 있는 이질성으로 바꾸고, 볼된 운동은 어떤 병행적 변형을 받아들인다며 통합과 이질성, 즉 모든 부분이 모여 점점 큰 전체가 되고 모든 부분이 분화하여 점점 다양한 형식을 취하는 것, 이것이 진화의 초점이다. 확산에서 통합 및 통일로, 동질적 단순성에서 이질적 복잡성으로 변화하는 것(예컨대 166~199년경의 미국)은 진화의 밀물을 타고 있는 것이며 통합에서 확산, 복잡에서 단순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은 분해의  썰물에 떠있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니체

니체는 다윈의 아들이었고 비스마르크의 동생이었다. 그의 부친은 목사였고 그 자신도 마지막까지 설교자였다. 그는 기독교를 공격하였지만, 그것은 자기 속에 기독교의 도덕적 정신을 다분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철학은 온순과 친절과 평화를 사랑하는 성향을 맹렬히 부정함으로써 조정하려는 일종의 시도였다18세때 그는 조상의 신앙을 잃고 남은 생애 동안 새로운 신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초인에게서 찾아냈다. 후년에 그는 이 변화가 쉽게 일어났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냉소적으로 변했다. 종교는 그야말로 그의 생명의 정수였으므로 이제 생활은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는 갑자기 방탕한 생활로 접어들었으나 머지 않아 이러한 생활을 몹시 경멸하게 된다그를 버린 것처럼 생각되던 예술에서 그는 과학과 인간에게 어떠한 폭군도 침입할 수 없는 피난처를 제공하는 철학 속에 숨어들었다. 마치 스피노자처럼 격정을 연구함으로써 진정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우리에게는 감정이 화학이 결핍되어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그 뒤의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는 심리학자가 되어 외과의사처럼 가차 없이 미묘한 모든 감정과 마음속에 품고 있는 신앙을 분석하여 그것을 대담하게 악명높은 볼테르에게 바쳤다.

도덕성이 친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힘에 있는 것과 같이 노력의 목표도 역시 만인의 향상이 아니라 보다 우수하고 강한 개인의 발전에 있어야 한다. 인류가 아니라 초인이 곧 목표이다. 분별있는 현인이 생각하는 최후는 항상 인류의 개선이겠지만 인류는 개선되지 않을 뿐 아니라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추상물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은 개인의 큰 개미집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의 모양은 오히려 거대한 실험실과 비슷하다. 어느 시대나 성공하는 실험은 있지만 대부분은 실패한다. 그리고 모든 실험의 목적은 집단의 행복이 아니라 전형의 진보에 있다. 사회는 보다 훌륭한 전형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망하는 편이 낫다. 사회는 개인의 힘을 강하게 하고 개성을 높이는 도구이기 때문에 집단은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목적도 될 수  없다. 만일 모든 개인이 기계의 운전을 중단시키지 않기 위해서만 필요하다면 그 기계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 자체가 목적인 기계(사회조직), 그것은 인간 희극이다. 처음에 니체는 새로운 종족의 산출을 기대하는 것처럼 말했으나 나중에는 평범한 민중의 수렁속에서 고생 끝에 기어  나와 그 존재를 자연도태의 우연에 맡기기보다는 계획적인 훈육과 신중한 양성에 의한 탁월한 기인으로, 초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3 부 현대철학

앙리 베르그송

진화는 다윈이나 스펜서가 기술한 투쟁과 파괴의 맹목적이고 황량한 기계관과는 전혀 다른것 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진화에서 지속을, 살아 있는 힘의 축적을, 생명과 정신의 발명력을, ‘절대적으로 새로운 것의 끊임없는 전개를 본다. 제닝즈나 모파와 같은 최근의 연구가들이 어째서 원생동물이 행동에 대한 기계론적 학설을 부인하는지, 또 현대 세포학계의 원로 윌슨교수가 세포에 관한 저서에서 세포 연구는 전체적으로 보아 딴 것이 아니라 생명의 최저형태를 무기계로부터 나누는 거대한 간격을 좁히기는커녕 오히려 넓히는 것이다라고 어째서 말한 것인지 우리는 그 이유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생물학계 곳곳에서 다윈에 대한 반역의 소리가 들리고 있는 것이다. 다원주의란 아마도 새로운 기관과 기능, 새로운 유기체와 종의 발생은 유리한 변이의 자연도태에 의한 것임을 뜻한다고 해도 좋다. 그런데 이 견해는 반세기도 못되는 동안에 여러가지 고장으로 일찍부터 좀이 슬기 시작했다. 모든 개체와 모든 종을 실험대로 하는 이 끊임없는 창조적 생명이야 말로 우리가 신이라고 이름 짓는 것을 뜻하며 신과 생명은 하나이다. 그러나 이 신은 유한이지 전능은 아니다. 즉 물질에 의해 제한되고 있으며 물질의 타성을 애써 한 발 한 발 극복하는 것이다. 또 이 신은 전지가 아니며 서서히 인식과 의식에게 더욱 밝은 빛을 구하기 위하여 탐색한다. 이렇게 정의가 내려진 신은 아무것도 완성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신은 부단한 생명,행위,자유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창조는 신비가 아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행동할 때우리의 행위를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우리의 생활을 위하여 계획을 세울 때 우리는 자신 속에서 창조를 경험한다.

베네데토 크레체

크로체는 역사 및 문학 연구로부터 철학으로 들어갔으므로 그 철학적 관심이 문예비평 및  미학의 모든 문제에 강하게 수식되었다. <미학>에서 그는 형이상학이나 과학보다는 예술을 좋아했다. 예술은 우리르 직접 특수한 인물과 사실, 즉 구체적 개별형태로 직관되는 철학적 형태로  끌어 간다. 인식에는 두가지 형식이 있다. .즉 직관적 인식과 논리적 인식, 상상력에 의해 얻어  지는 인식과 지성에 의해 얻어지는 인식, 개별적 인식과 보편적 인식 및 개체의 인식과 개체간의 인식이다. 인식은 심상이나 개념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예술의 근원은 심상을 형성하는 힘에 있다. 예술은 오로지 상상력에 지배된다. 심상은 상상력의 유일한 재산이다. 예술은 대상을 구별하지  않고 대상을 확실하게 현실적이니 비현실적이니 하지 않고 대상을 규정하지도 정의하지도 않고 느낌으로서 표현한다. 그 밖에 다른 것은 없다. 상상은 사고에 앞서며, 사고는 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에 정신의 예술적 활동, 즉 심상 형성의 활동은 논리적 활동, 즉 개념 형성 활동이 전제이다. 인간은 상상력을 작용시키자마자 예술가이며 개념적으로 사고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예술가다.

버트란트 러셀

버트란트 러셀이 불가지론자가 되는 것은 거의 운명적이었다. 그는 그리스도교 속에서 수학으로 나타낼 수 없는 많은 것을 발견하였으므로 그리스도교를 그 도덕률은 별도로 치고 완전히 포기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인정하지 않는 자를 박해하고 그리스도교를 해롭게 생각하는 자를 투옥하는 문명을 경멸해서 말하였다. 이런 모순에 찬 세계에서 그는 신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진화와 진보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만, 진보란 자기 본위로 말하는 방법이며 진화란 분해와 죽음으로 끝나게 되는 일의 그 무도덕적 순환의 반쪽에 불과하다유기적 생명은 원생동물부터 철학자까지 점차 발달하였다고 말하지만 이 발달은 틀림없이  진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유감이지만 이 확신을 우리게에 안겨주는 것은 철학자이지 원생동물은 아니다. 자유인은 아이들과 같은 희망이나 의인관에 의한 신들에게 마음 놓을 수는 없다. 결국 자기도 죽을 것이라는 사실과 만물은 죽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자유인은 용기를 잃어서는 안된다.

조지 산타아나

조지 산타아나는 넓은 학식에 의해 유연할 뿐만 아니라 시인의 영혼과 같이 다감한 그의   영혼은 미국 도시생활의 시끄러움에 못 견뎌 본능적으로 보스턴에서 은거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스턴에서 다시 케임브리지와 하버드로 옮겼으며 제임스나 로이스보다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 텔레스를 좋아하는 조용한 생활로 들어간다. 그의 최초의 철학논문은 <미적감각,1896>이며 5년 뒤에는 단편적이지만 좀 더 알기쉬운 <시와 종교이 해석>을 써냈다. 7년뒤 그는 주저 <이성의 삶>을 저술하였는데 이는 그의 명성을 높여주었으며 1923 <회의와 동물적 신앙>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무엇보다도 우선 현대철학을 얽어매어 그 성장을 방해한 인식론을 떨구려는 시도를 한다. <이성의 생활>을 서술하기 전에는 그도 자진하여 전문적 인식론자가 중요시하는 모든 술어를 써서 인간 이성의 근원, 타당성,  한계를 논하고 있었으나 그도 사고의 커다란 함정은 기존의 여거 가정을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윌리엄 제임스

스콜라 철학자들은 신을 모든 종의 밖에, 그리고 위에 자존하며, 필연적이고 단일한 무한, 완전, 단일, 불변의 무변하고 영원한 지적 존재로서 기술하였다. 이것은 실로 당당한 것이나 이러한 정의를 자랑으로 여기지 않는 어떤 신성이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 정의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 인간에게 어떠한 결과가 되는 것일까. 만약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우리는 허수아비여서 신의 의지가 처음부터 윤곽을 그려 결정한 운명이 진로를 바꾸기 위하여 아무것도 계획할 수 없다. 칼빈주의와 숙명론은 이러한 정의의 논리적 귀결이다. 기계관적 결정론에 똑 같은 음미를 가해도 결과는 똑같다. 만약 정말로 결정론을 믿는다면 우리는 인도인 같은 신비가가 되어 우리를 인형과 같이 조종하는 예측하지 못하는 운명에게 몸을 맡기게 된다.

존 듀이

존듀이 사상의 특색은 진화론을 드러내어 놓고 받아들인 태도에 있다. 신체는 물론이요정신도 생존경쟁의 결과 낮은 형태로부터 진화한 기관으로 보았다. 모든 영역에서 그의 출발점은 다윈주의적이다.  데카르트가 물적 사물의 본성은 이루어진 완전한 상태로써 한꺼번에 만들어졌다고 생각 하는 것보다는 서서히 발달하였다고 보는 편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고 말하였을 때 근대세계는 이후에 지배될 운명의 논리, 즉 다윈의 <종의 기원>을 그 최신의 과학적 업적으로 하는 논리를 자각하기에 이르렀다듀이는 노골적인 자연주의자로서 우주 전반을 이상화하고 이성화하는 것은 우리에게 특별히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물의 경과를 지배하는 능력이 없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이들 우주력은 인간이 창조하고 존경하는 것을 매우 자주 파괴하기 때문이다. 신성은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이지 이들 무색투명한 우주력에 있는 것은 아니다.

< 리뷰 > 

장점  

윌 듀랜트(William J. Durant, 1885~1981)는 지난 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문명사학자로서 일반인들이 어렵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철학을 역사이야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전달함으로써 이의 대중화를 주도하였다. 미국 출생으로 대학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21년에는 성인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에서 철학, 역사, 문학을 전파했다. 철학사상에 관한 그의 강의는 철학의 고전이 되었고 그후 그는 인류의 문명사를 정리, 11권의 『문명 이야기』 시리즈를 인물 중심으로 정리하여 인류 문명의 역사를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편집하여 격찬을 받았다. 그의 저서 「철학이야기」는 전무후무한 철학분야 베스트셀러로서 수많은 학생들을 철학의 길로 인도한 역작이다. 이 책이 기독교 철학에 대해 직접적으로 논하지는 않지만 그 바탕이 되는 지식에 인간성을 주려고 시도하고 철학이 지혜를 위한 종합력을 가져야 한다는 전제에서 서술  되어 기독교적 철학을 논하기 전에 먼저 철학이 모든 지식적 활동의 기본이 될 수 있도록 정지 작업을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철학의 세세한 분류를 가지고 논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역사상 대표적인 철학자를 선정, 그의 일생과 철학을 심도있게 조명함으로써 말그대로 이야기속에 철학이론을  녹여놓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서 거부감을 줄여준다. 마찬가지로 어려운 철학용어의 사용을 자제하고 철학에 인간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한 점을 높이 평가할만하다. 특별히 저자는 인식 과정의 연구는 심리학이 할 일이며, 철학은 경험 그 자체의 양식 및 과정의 분석적 기술이 아니라 모든 경험의 종합적 해석이라고 정의하여 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준다윌 듀랜트의 저서 「철학이야기」는 처음부터 마지막 부분까지 철학에 문외한이면서 관심을 가져보려는 초보 철학도들의 친절한 인도자 역할을 하여 누구라도 철학적 사색의 길에 접어들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신학적 바탕이 되는 철학의 기본을 익히고 앞으로 접하게 될 신학적 역작의 바탕에 깔려 있는 철학적 사색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단점

윌 듀랜트는 그의 저서 「철학이야기」의 머리글에서 철학의 효용에 대하여 언급하면서철학자는 사실을 서술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사실의 경험과 일반에 대한 관계를 알아내어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려 한다고 하였으나 예로 들은 철학자들의 경우에 대입해 보았을 때 해당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 스펜서의 <진화의 가설>같은 저작의  경우는 없는 사실을 가상적으로 상정해내어 오히려 반대로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철학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해도 철학이론에 따라 철학자의 성향에 따라 기상천외한 발상이 존재하는 것을 감안하면 위와 같이 일반화하고 규범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철학자 개인의 전기식으로 구성하여 철학의 전체 흐름을 잡기가 쉽지 않고 단편 나열방식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전문적인 철학용어나 이론을 부각하지 않아서 철학적 깊이를 느끼기가 쉽지 않고 체계를 잡기가 어렵게 되어있다더우기 이 책은 입문서라고 보기에는 내용이 쉽지 않게 되어 있어서 우리 신학도의 입장   에서는 신학을 들어가기 전에 철학개론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입장에서는 철학적 사조를 도표화 한다든지 하는 서비스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적용

1. 개인에게

저자는 철학이 이른바 귀중한 기쁨이었던 멋진 청춘의 나날을 경험해왔다고 고백한다. 당시 깨달을 듯 하면서도 알쏭달쏭한 진리에 대한 사랑이, 육욕이나 이 세상의 사소한 일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찬란하게 느껴졌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인생이란 우리의 본질과 경험하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빛과 불꽃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이 위대한 철학자의 생을 우리가 범접할 수는 없겠지만 학창시절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문학이나 무슨 말인지 잘모르는 철학책을 가지고 다니며 고민하는 경우도 있었고 또 공부는 안하고 니체를 논하고 쇼펜하우어의 기초 논리를 암송하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이런 유치한 젊은 시절에 비해 신학도로서 우리는 철학을 통해 우선 과학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제 문제, 즉 선과 악, 미와 추, 질서와 자유, 삶과 죽음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그 다음으로는 기독교의 주요 교리를 이해하고 분명 철학적인 바탕으로 기술된 신학저작을 합리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철학의 기본을 배워야 한다. .

2. 교회에서

초대교회 시절 기독교 신학의 두가지 원천을 꼽으라고 하면 정경으로서의 성경, 그리고 고대그리스의 철학으로부터 발전된 헬레니즘이라고 볼 수 있다. 갈다디아서 4 4절의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에서 때가 차매의 중요한 부분이 국제어로서 헬라어를 준비하는 시기였다고 해석하듯이 기독교학을 성립하는데 헬레니즘, 특히 그리스 철학역시 하나님의 준비한 때(크로노스)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꼭 이러한 기독교 역사적인 상황이 아니어도 철학은 사물의 궁극적 실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므로 종교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교회에서도 목회자나 교역자, 일반성도를 막론하고 성경공부와 함께 철학의 기본지식도 함께   습득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3. 사회에서

물질만능주의의 현실에서 진리를 탐구하고 보다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형이상학의 양대 분야, 즉 종교와 함께 철학적 역량을 기르는 것은 우리의 사회에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이다. 우리가 전도를 할 때 보통 비크리스천의 경우 이해가 되지 않는 교리를 가지고 설득을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때 가벼운 철학적 논제를 가지고 대화를 풀어나갈 때 훨씬 이해하기 쉽게 대화를 주도해 나갈수 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천들 역시 기독교리 형성과정에서의  철학의 역할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이해력을 길러나가야 하며 교리의 바탕이 되는 철학적 사고를 함으로써 개인발전과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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