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Packer ; 제임스 패커 저/ 정옥배 옮김 / 송인규 해설 

1부 여호와를 알라

1.    하나님에 대한 연구

하나님에 대한 연구를 위해 우리는 다섯 개의 기본진리, 곧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다섯가지 근본 원리가 이 행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결정할 것인데 다섯 가지 기본원리는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하셨으며,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갖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② 하나님은 그분이 지으신 세상의 주님이시며 왕이시다. 하나님은  하시는 모든 일에서 완전하심을 나타내 보이시면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이로 인해 인간들과 천사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미한다 ③ 하나님은 구세주로서, 믿는 자들을 죄책과 죄의 권세로부터 구하시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권적인 사랑을 적극적으로  나타내 보이신다. 그리고 그들을 자녀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합당한 복을 주신다 ④ 하나님은   삼위이시다. 신성 안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세 위격이 있으며, 구원 사역은 이 세 위격이 함께 하시는 역사다. 곧 성부께서 구속하기로 결심하시고, 성자께서는 그 구속을 이루시며, 성령께서는 그것을 적용하신다 ⑤ 경건이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신뢰와 순종, 믿음과 예배, 기도와 찬양, 복종과 섬김으로 반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삶은 하나님의 말씀 아래서 드러나고 영위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참된 종교다.

2.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우리는 다니엘서를 통해 이에 대한 대답을 해보기로 한다. ①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다 ②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생각을 품고 있다 ③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한 담대함을 드러낸다 ④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커다란 만족을 얻는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원한다면 먼저,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인식하고 우리를 깨닫도록 주님께 간구하여야 하며 둘째로, 우리는 구세주를 찾아야 한다. 주 예수를 찾은 사람들만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하나님을 안다고 증거할 수 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을 찾으면, 분명히 그분을 찾게 되리라는 것이 예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3.    아는 것과 아신 바 되는 것

우리는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는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다. 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하는가?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니이다”( 17:3).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매우 낮아지는 것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죄와 죄책과 연약함과 무지함과 어리석음에 대해 말씀하셔서, 당신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절망적이고 무력하다고 판단하며 소리쳐 용서를 구할지 않을 수 없게끔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일 때 하나님은 실제로 마음을 열어 보이시며, 당신과 친구가 되시고, 당신을 동료로, 바르트의 말로 하면 언약의 동반자로 삼아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하나님을 아는 것은 은혜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리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도록 하셔서 우리와 사귀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사람을 아시는 것은, 자비로운 구원이라는 전체 목적과 관련되어 있다. 그 아심은 아시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개인적 애정, 구속의 행위, 언약적 신실함, 섭리적 보살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앞에서 우리가 암시한 것처럼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어지는 구원이다.     

4.    오직 참되신 하나님.

형상들은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림과   형상을 금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그것들이 묘사하는 신적 존재의 인격적 본질과 특성에 대한 진리의 대부분을---전부는 아니더라도불가피하게 숨기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형상들은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인도한다. 그것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개념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 상을 기도의 보조물로 사용함으로써, 경건을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고난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과 같다고 보는 위험에 빠지곤 했다. 그리하여 육체적 고통의 영적  가치에  대해 불건전한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부활하신 구세주를 알지 못하게 되었다. 성경이 계시보다 철학적 추론에 의거하는 모든 사변적인 신학은 이 점에서 잘못되어 있다. 바울은 이런 유의 신학이 결국 어떻게 되는가를 말한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고전 1:21). 신학의 영역에서 자기 마음의 상상력을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여전히 무지한 채로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추측과 상상력으로 만든,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형상인 우상을 숭배하는 길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제 2계명의 적극적인 측면은 명백하다.  계명을 소극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는 예배 방식과 종교적 관행에 대한 경고다. 반면 적극적으로 보면, 창조주 하나님은 초월하시고 신비로우시며  불가해 하시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상상과 철학적 사고 범주 너머에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명령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견해는 다름 아닌 성경으로부터 취하여야 한다. 

5. 성육신하신 하나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 성육신을 어떻게 설명해 주느냐에 있다. 여기에는 두가지 신비가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1:14).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짜 걸림돌이다. 하지만 일단 성육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난점들은 사라진다. 우선,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그 아기는 진짜 하나님이었다.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오해하기 쉬운 연상들로 더럽혀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이 주장하셨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에게 있다고 생각되는 아들 됨은 바로 신성을 말하는 것이며,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그래서 유명한 요한복음 서문( 1:1-18)이 나오게 된 것이다. 신약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의 의미와 본질을 여기처럼 분명히 설명하는 곳이 없다. 또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그 아기는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다. 그분은 하나님에서 신성의 어떤 요소를 뺀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인성을 취하심으로 인성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더한 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신인이신 성자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성부에게 순종하신 것은 성육신에 의해 생겨난 새로운 관계가 아니라, 하늘에서 누리는 성자와 성부의 영원한 관계가 시간 속에서 계속되는 것이었다. 하늘에서와 마찬가지로 땅에서도 성자는 성부의 뜻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성자께서는 알 수 있을 만한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알지 않으셨고 오직 성부 하나님이 알도록 뜻하신 것만을 아셨다. 성자의 지식은, 그분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성부하나님의 뜻에 의해 제한되어 있었다.

6. 그가 증언하실 것이요     

요한복음은 성령을 보내실 분은 성부 하나님임을 알린다. 성자를 보내신 분이 성부이신 것과 마찬가지다.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성부께서는 내 이름으로 즉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대행자로 활동하며 그분의 권위를 가진 그리스도의 대리역으로서 성령을 보내실 것이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사, 아버지의 대리인으로 활동하시고,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셨으며아버지의 일을 하시고, 자신을 사자로 보내신 하나님을 끝까지 증언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사, 세상에서 예수님의 대행자와 증인으로 활동하실 것이다성령론은 기독교 교래에서 재 속에 묻힌 보석과 같으며 거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기독교의 진리를 우리의 논증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눈 먼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전능하신 역사가 없이는 어떤 사람도 기독교의 진리를 입증할 수 없다. 인간의 양심에 복음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의 주권적인 특권이다.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성공하리라는 소망의 근거가 자신이 진리를 잘 제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진리를 권능 있게 나타내 보이시는 데 있음을 배워야만 한다. 만약 성령이 계시지 않다면 세상에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2부 네 하나님을 보라

7.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곧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말하면서도 성경이 씌어진 그 때와는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현재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하며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도 알지 못한다. 공간과 시간, 문화라는 견지에서 보면 그 사람들과 그들의 시대는 우리에게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한다이러한 의구심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불변성으로부터 얘기를 시작해가야 한다. 하나님의 생명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의 성품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리는 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방식들도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목적들도 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도 변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13:8) 그분의 손길은 여전히 예전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매우 커다란 위안을 준다.    

8. 하나님의 위엄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해 올바른 개념을 가지는 방법에 대해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알려준다. 첫 번째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할 때 하나님을 왜소하게 만들 만한 제한들을 제거해  버리라는 것인데 시편 139편에서 기자는 사람들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임재와 지식과 능력의 무한하고 무제한적인 특성에 대해 묵상한다. 시편 기자는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다고 말한다. 당신은 동료 인간과는 관계를 끊을 수 있다. 하지만 창조주에게서 달아날 수는 없다. 나를 인간의 시야에서 감추어 주는 흑암이라도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가려주지 못한다. 만물을 꿰뚫어 보는 하나님은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위대함을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 임재, 능력이 얼마나 무한한지를 인식하는 것이다두 번째는 우리가 위대하다고 여기는 권세나 힘과 하나님을 비교해 보라는 것이다. 이사야 40장에서 하나님은 그 분이 행한 과업을 보라고 말씀하시고 선지자는 계속해서 열방을, 세상을 보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크기와 다양성과 복잡성을 생각해 보고 거기에 사는 70억의 인구와 그 위에 있는 하늘을 생각해 보라 .우리가 사는 지구 전체에 비할 때 우리는 얼마나 하잘 것 없는 존재들인가! 그렇지만 이 거대한 전체 행성도 하나님과 비교할 때 어떠한가? 위대한 자들을 보라. 하나님은 이 세상의 위대한 자들보다 더 위대하시다. 마지막으로, 별들을 보라. 몇 백만개에 이르는 별의 숫자나 몇 십억 광년에 이르는 거리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추가할 수가 없다. 우주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생각하려 할 때, 우리는 정신적으로 마비되고 어지러워진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수중에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다. 너희 하나님을 보라!

9. 지혜로우신 하나님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단순한 영리함이나 교묘함이 아니다. 지혜는, 최선이며 최고인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을 보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선택하는 성향이다. 지혜는 도덕적 선의 실제적인 측면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전능함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좌절이 없다. 하나님 안에 무한한 지혜와 무한한 능력이 한데 결합해 있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은 완전한 신뢰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 되신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지혜는 언제나 활동하고 있으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와 섭리와 은혜의 사역은 지혜를 나타내 보이며, 우리는 그것들 안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지혜를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것들을 제대로 본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관련하여 바울이 자신의 육체의 가시(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안에서 볼 수 있었던 만큼의 목적은 볼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그것이 사탄의 사자로서 그에게 왔으며, 하나님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들을 하도록 유혹했다고 말한다. 바울은 이러한 유혹에 저항했고, 가시가 제거되기를 구하면서 세 번 그리스도의 얼굴을 구했다. 바울이 받은 유일한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는 것이었다. 숙고한 끝에 바울은 왜 그 같은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그가 계속 겸손하도록 곧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기위함이었다. 이러한 생각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그는 족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7-9)

10. 하나님의 지혜와 우리의 지혜    

옛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다룰 때, 비공유적인 속성과 공유적인 속성이라는 두 그룹으로 분류했다. 지혜는 공유적 속성에 포함된다. 하나님이 원래 지혜로우신 것 같이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지혜를 나누어 주신다. 우리는 지혜를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이 은사를 우리 손에 넣으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성경에 따르면 이를 위한 선행 조건이 두 가지  있다. 첫째, 하나님을 공경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게서 지혜를 받기 에는 너무 교만하고 자만심이 강한 상태로 온 생애를 보내는 것은 염려할 만한 일이다. 성경에서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11:2)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딤후 3:15-17) 해주는 성경에 푹 잠김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하나님은 원리들을 적용함으로써 우리를 인도하실 때, 때로 우리가 신호로 즉시 인식할 만한 색다른 섭리를 통해 그 같은 인도를 확증해 주신다. 그러나 사실 지혜의 은사란 이러한 능력과는 무관하고 우리가 그런 쪽에 무능력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만사에 대해 신적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기대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비관적 결론으로 이끌 것이라고 전도서는 말한다.

11. 주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성경에 나타난 삼위 하나님에 관한 두 가지 사실은 첫째 하나님이 우주의 모든 일을 조정  하시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우주의 절대적인 왕이라는 사실 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자신의 뜻이 행해지도록 하기 위해 그 뜻을 표현하는 말씀을 하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살펴볼 것인데 하나님의 주권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말하는 바에 비추어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왕이신 하나님에게서 온 토라는 세 가지 특성을 지닌다. 그 중 일부는 율법(제재 규정들이 첨부된 좁은 의미의 명령 혹은 금지 사항)이다. 그 중 일부는 약속(호의적이거나 비호의적이거나)이다. 그 중 일부는 선포(하나님 자신과 사람들, 그들의 행동, 목적, 본질, 기대에 대해 하나님이 주시는 정보)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고 반드시 그렇게 된다. 이를 두 가지 맥락에서 살펴보면, 첫째,  하나님의 계명은 진리이다. 성적 방종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덜 인간적인 모습으로 만든다. 그것은 인간을 짐승처럼 만들어 버리며,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곳에서는 어디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고 애쓰는 바로 그만큼만 진정 인간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은 참되다. 하나님이 그 약속들을 지키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약속을 틀림없이 이루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12.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사역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식을 부어   주심으로 화평과 기쁨과 소망과 사랑을 주시는 성령의 일상적인 사역보다는, 치유와 방언의 은사들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전 12:28~30). 바울이 성령과 관련하여 에베소인들에게 바랄 수 있었던 최선은, 성령이 그들을 향해 계속해서 더욱 능력 있게 로마서 5:5이 사역을 하심으로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알아 가게 되는 것이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숙고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속을 들여다 본다. 우리는 거룩한 땅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고 그 땅을 밟으려면, 경외함이라는 은혜가 필요하다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약속(8 :28)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하나 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며,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제임스 오어는 사랑이란 일반적으로 한 도덕적 존재가 다른 도덕적 존재를 바라고 기뻐하도록 해주는 원리로서, 각자가 상대방의 삶 속에서 사는 인격적 관계, 상대방에게 자신을 나누어 주고 자신도 상대방의 애정을 받는 것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그런 인격적 관계에서 최고의 형태에 이른다.”고 하였다. 로마서 8 32절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한다.

13. 하나님의 은혜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이며, 그들의 생활 규칙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2:21) 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하나님의 응보적 정의를 깨달아야 하는데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하신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은 도덕적인 세상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죄를 벌하시지 않는다면 이는 그분의 본분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이 사실, 곧 행악자들에게 소망이란 없으며 하나님께 응보적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느끼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을 수 없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3:20)라고 단언한다. 한번 하나님의 은총을 잃어버린 후에 그것을 되찾음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개선하는 일은 누구도 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성경적 믿음을 가지려면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이 앞에 고개 숙여야 한다은혜와 구원은 원인과 결과로서 한데 결합되어 있다.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 2:5,8).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2:11). 복음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3:16)에 대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는지”( 5:8)에 대해, 예언서에 따라 어떻게 샘이 열려”( 13:1) 죄와 더러운 것들을 씻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지금 복음 듣는 사람에게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8)고 외치신 것에 대해 선포한다.  

14. 심판자 하나님

구약성경을 살펴보면 그것이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의 행동이란 주제가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것도 하나님을 피할 수 없다. 인간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아시며, 우리를 있는 그대로 심판하신다. 바울이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실재한다는 것은 분명 우리의 인생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야만 한다. 인생의 끝에서 응보적 심판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그렇지 않을 때와는 다르게 살 것이다최후의 심판은 우리의 행위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그리스도 위에 어떤 생활 방식을 세울지를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2-15). 지금 예수님을 찾으면 그분을 발견할 것이며(“찾는 자는 찾을 것”), 그렇게 되면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없다”( 8:1)는 것을 알고, 장차 예수님과 만나는 것을 기쁨으로 고대하게 될 것이다.

15. 하나님의 진노

성경에서 가장 놀라운 점 가운데 하나는 신약과 구약이 하나님의 진노의 실상과 그 두려움에 대해 아주 강력하게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라고는 그분이 벌하시는사람들이 스스로 따르기로 선택한 길에 의해 이미 자신들에게 부과한 그 심판을 비준하고 확증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인간에 대해 하나님이 최초로  보이신 진노의 행위에 대한 기사에서 나타난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기도 전에 이미 아담이 하나님에게서 숨고 그분의 임재를 피하기로 선택했음을 알게 된다. 똑 같은 원리가 성경 전체에서 적용된다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신약의 논법은 로마서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며,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4:15)한다. 율법은 우리 안에 잠복해 있는 죄를 불러일으키며 범죄진노를 유발하는 행동가 충만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5:20;7:7-13). 양심 속에 사실로 계시된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이 세상에서 힘으로 작용하는 증거를 원한다면, 바울은 단지 주위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하나님이 무엇에 그들을 내버려 두셨 는가를 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16. 인자하심과 준엄하심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사람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그 뿌리에는 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배우기 보다는 자신의 종교적 직감을 따르는 습관에 빠져있다는 점을  들 수 있고 ② 현대인들이 모든 종교를 대등한 것으로 생각하여 기독교적 출처뿐 아니라 이교적 출처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고 ③ 사람들이 자기 죄성의 실상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④ 오늘날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자라는 개념을 하나님의  준엄하심이라는 개념과 분리시키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다우리는 이렇게 분석한 혼란의 원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다음의 노력을 하여야 한다. ① 사람들이 생각하는 확신의 기초를 성경에서 말하는 것을 근거로 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② 하나님이 인간에게 최종적으로 주신 말씀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성과 최종성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애써야 하고 ③ 자기 자신을 믿지 말고 기꺼이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자신을 바로잡도록 해주어야 함과 동시에 ④ 하나님의 인자라는 개념을 하나님의 준엄하심이라는 개념과 분리시키려는 습관을 고쳐주어야 한다바울은 로마서 11:22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고 말한다. 준엄하심은 문자 그대로 잘라내다라는 의미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일축해 버린 자들에게서 그 인자를 단호히 거두시는 것을 나타낸다. 바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는 모든 표현의 배후에는  만일 그 인자하심이 멸시를 당했을 때는 준엄한 심판이 있으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

 17. 질투하시는 하나님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임을 명백히 알리고 있다.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24:14)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질투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① 하나님의 질투는 신인동형론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인격적인 존재이면서도 타락된 본성은 없는 상태이므로 하나님의 질투는 인간의 질투와 같이 좌절과 시기와 원한의 복합체가 아니라, 어떤 것을 가장  값지게 보존하려는 찬양할 만한 열심으로 나타난다. ② 인간의 질투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며 그 중 하나만이 악덕이다. 종종 성적 질투라 불리는, 거부당한 혹은 밀려난 구혼자의 미친 듯한 광포함은 바로 이런 종류의 질투다. 또 다른 종류의 질투는 사랑하는 사이의 관계를 보호하려는 혹은 그것이 깨어졌을 때 복수하려는 열심이다. 하나님의 질투는 후자와 같다하나님의 질투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해 열심을 갖도록 촉구한다. 바울은 주님을 위해 한 마음을 품었으며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열심 있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감옥과 고통에 직면해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노라”( 20:24)고 단언했다. 또한 하나님의 질투는 하나님에 대해 열심이 없는 교회들을 위협한다. 차든지 뜨겁던지 하라는 말씀이다

3 부 하나님의 우리를 위하시면

18. 복음의 핵심

복음의 핵심에는 화목의 개념이 있다. 신약에는 화목에 관련된 4개의 본문이 나오는데 ① 이제는 율법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3:21-26)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이 죄를 속량하려 하심 이라”( 2:17)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 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요일 2:1-2)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8-10). 이처럼 신약의 신앙에서 화목은 중심을 차지한다화목은 속죄를 의미하는 것에 더하여, 또한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는 것을 나타낸다. 화목제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로 인한 희생적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셨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사랑만큼이나 인격적이고 효력이 있다.

19.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됨이라는 선물은 태어남으로써가 아니라 중생함으로써 우리의 것이 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12-13). 요한일서에서 중심이 되는 사상은 하나님이 사랑으로 주시는 최고의 선물인 아들 됨(요일 3:1), 아들 됨의 도리인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2:9-11), 아들 됨의 특권인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2:13), 아들됨의 증거로서 의와 죄를 피하는 (2:29), 아들 됨의 소망인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3:3) 등이다양자됨은 복음이 제시하는 최고의 특권이다. 그것은 심지어 의롭다 함보다 더 높다. 양자됨은 하나님과의 더 풍성한 관계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또한 양자됨은 지속되는 복이다. 부모는 완전히 지혜롭고 선하며, 자녀의 위치는 영구히 확보되어 있다. 양자 됨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도의 견인이며 보증이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는 양자됨에 의하여 비추어져야 한다. 아들 됨은 모든 점에서 지배적인 생각, 말하자면 규범적인 범주가 되어야 한다. 이는 문제의 본질상 당연한 결론이며, 주님이 늘 이러한 견지에서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에 대해 가르쳤다는 사실로 확증된다. 또한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양자의 영으로 주어지며, 그리스도인과 관련된 모든 사역에서 양자의 영으로 활동하신다는 것이다.

20. 우리의 인도자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문제를 놓고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사도행전은 서너 번에 걸쳐 상세한 인도하심에 대해 기록한다. 꿈과 환상과  직접적인 말을 통한 인도는 사도들과 당시 사람들에게조차 예외적인 사건이며 통상적인 것은 아니라고 여겨졌지만, 이 사건들은 적어도 하나님이 종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시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도와 관련 사람들이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이를 본질적으로 기록된 말씀과는 별개로 성령이 주시는 내적 충동으로 생각하는 것이다우리의 이성적인 창조주가 그 분이 지으신 이성적인 피조물을 인도하시는 근본적인 방식은, 그 분의 기록된 말씀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성령을  우리의 인도자로 존중하는 참된 방법은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수단인 성경을 존중하는 것이다. 로마서 8:14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것은 내적 음성이나 그러한 체험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알려진 죄를 억제하고 육신에 따라 살지 않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인도의 제한 내에서만 하나님은 소명을 위한결정이라는 문제데 대해  우리에게 내적 충동을 주신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초월해서가 아니라 그 말씀이 정하는 한도 내에서 인도하신다. “그가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23:3).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과 대치되는 다른 어떤 길로도 우리를 인도하지 않으신다.

21. 내적 시련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장미빛 환상만을 전해서는 안 된다. 복음적인 사역의 기초는 성경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그리고 그 약속들을 하나님의 보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거기서 통상적  으로 등장하는 주제는 십자가를 통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 성령을 통한 새로운 탄생,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 안에서 얻는 새로운 삶 등이다. 성경은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진리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부적절하게 적용할 경우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우리는 복음이 가지고 있는 두가지 측면을 가감 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란 하나님에 대한 더욱 깊어지는 지식 그리고 하나님과 계속 친밀해지는 교제야 말로 모든 은혜의 역사가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 죄인을 그분께로 점점 더 가까이 끌어당기는 것이다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확신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 경건한 삶의 비결을 가르쳐 주는 전형적인 성경의 문구를 빌린다면 여호와를 앙망하도록하기 위해, 조처를 취하신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 죄와 실수를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과 육신과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막아 주시거나, 부담스럽고 좌절되는 환경들로부터 보호해 주시거나, 우리 자신의기질과 심리로 인해 생겨나는 문젯거리들을 막아 주시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이 모든 것에 노출되도록 하신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을 깊이 인식하고, 하나님께 더욱 매달리게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 삶을 이러저러한 괴로움과 당혹스러운 일로 채우시는 궁극적인 이유다.

22. 하나님의 충족성

로마서는 어느 모로 보더라도 성경의 정점이다. 루터는 로마서를 가장 분명한 복음이라고 하였고 칼뱅은로마서를 이해한다면 그에게는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확실한 길이 열린 것이다라고 했다. 틴데일은 로마서 서문에서 이 두 개념을 연결하면서, 로마서를 신약의 주요하고 가장 탁월한 부분 그리고 가장 순수한 유앙겔리온’, 즉 우리가 복음이라고 부르는 기쁜 소식, 또한 전체 성경에 이르는 빛이요 길이라고 불렀다. 성경 안의 모든 길은 로마서로 통하며, 성경에서 제시하는 모든 관점은 로마서에서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고, 로마서의 메시지가 어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 중에도 8장이 압권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라는 간단한 진술은, 사실 성경에 담긴 가장 풍성하고 중대한 말 중 하나다. 바울은 하나님이자기 아들을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사실 자체가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리라는 보증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신실하시며, 또한 당신에게 충분하시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 이상은 절대로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이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공급하시는 것은 그 때마다 언제나 충분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넉넉히 이길 것이며,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충족성 안에서 기뻐하면서 로마서 8장처럼 살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27:8).

< 리뷰 > 

장점

제임스 패커는 금세기를 대표하는 복음주의 신학자로 리젠트 대학 교수(조직신학)를 역임   하였고 무엇보다도 성경적 경건과 신학적 이해 사이에 조화와 통합을 추구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성경의 무오성과 함께 이러한 무오적인 성경이 가리키는 그리스도가 개인과 교회의 삶에서 생생히 드러나도록 해야 함을 역설한 학자이다저자는 신학이론을 수필형식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평이한 문체로 신학 전반을 서술하여 초신자나 일반인에게는 어렵지 않게 조직신학적 지식을 전달하고 있는데 특히 신학적 난제로 볼 수 있는 성육신 개념을 요한복음 서문을 근거로 명쾌하게 설명한 것 등은 그만의 장점이다또한 이 책은 신학적 기반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신학지식을 실제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잘 보여주고 있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일독시 조직신학+성경통독의 효과를 낼 수 있게 해주고 있는데 특히 22장의 로마서 8장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주해는 독자로 하여금 당장 로마서 8장으로 달려가고 싶도록 만드는 생생한 충격을 안겨준다. 이 책은 저자의 성경적 통찰력과 함께 유려한 문체로 독자로 하여금 순수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해주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해주며 복음의 핵심을 설파하여 감동을 선사함으로써 우리를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에 다가가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귀한 책이다.  

단점

제임스 패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머리글에서 발코니에 앉은 사람들과 여행자들을실례로 들면서 이 책이 여행자들을 위한 책이며,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는 여행자들이 던지는  질문이라고 하였으나 본서의 내용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실제 삶에서 경험적으로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에 대한 측면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부록인 「연구 및 토론문제」에서 이 점을  보완하고는 있으나 본문내용과 부록이 독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 내용을 본문 안에 녹여 놓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또한 이 책은 각 장마다 통일된 구성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개념을 핵심적으로 규칙적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서 어떤 장에서는 결론 부분을 우리의 반응으로 잡는 반면 어떤 장에서는 결론 부분을 그저 저자의 이야기의 계속일 뿐으로 각 장마다의 통일된 형태가 있지 않다. 통일된 형태로 구성하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뿐만 아니라 저자 자신의 언급과 같이 각각의 장들은 잡지에 연재된 것을 모아서 편집하다 보니 조직신학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개념상 빠지는 부분들이 생길 수 밖에 없으며 어떤 장들은 주제가 되풀이되고 반복되는 것이 있어서 한 권의 책으로서는 완성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적용

1. 개인에게

저자는 담담한 묵상과 유려한 필체로 우리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을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독서를 하면서 기회가 되면 장거리 열차여행에 원어로 된 성경책과 함께 이 책을 함께 가져가서 읽고 싶은 소망이 생길 정도로 묵상해야 할 많은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이고 만물을 꿰뚫어 보시며 전능하신 분이다. 우리는 그 분의 위엄을 묵상하는 가운데 이러한 것들을 마음에 새김으로써 새로운 힘을 얻을 때까지 여호와를 앙망하여야 한다하나님의 지혜의 두 가지 목적은 개인적인 성화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 속에서 정해진 사역과 섬김을 완수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좌절스럽고 괴로운 상황에서 내재된 하나님의 목적을 어떻게 확인해나가야 하는가? 첫째로 그것들을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복음이 그것들에 대해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에게 어떤 반응을 요구하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둘째로 특별히 그것들에 대해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행한다면, 우리는 괴로움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온전히 파악하게 될 것이다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형제로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존중하고 순종하고 따르며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기꺼이 묵상하느냐, 묵상하기를 꺼려하느냐가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정말로 영향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확실한 검증수단이 된다. 하나님의 진노를 경외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은혜를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다.

2. 교회에서

우리는 교회 내에서 성령의 사역을 인식하고 성령만이 우리 증거가 참되다는 것을 인증해 주실수 있음을 기억하며, 성령이 그렇게 하시도록 기대하고 그렇게 하실 것을 믿으며, 우리의 생각과 기도와 실제 생활에서 성령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는 핵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삶의 온갖 변화와 불확실함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여전히 구원할 수 있는 전능하심을 지닌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교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성서를 포함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해결하여야 한다성서는 지혜의 열매가 그리스도를 닮는 것 화평과 겸손과 사랑( 3:17) – 이며, 그 뿌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난 것으로(고전 1:24, 30) 믿는 믿음(고전 3:18; 딤후 3:15)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혜를 추구하는 우리의 노력이 이러한 것들에 대한 노력이 되도록 하며,  세상에는 가질 수 없는 그런 지식을 추구하다가 믿음과 신실함을 소홀히 함으로써 하나님의 지혜로운 목적을 좌절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 교회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그 아래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주어졌을 뿐 아니라, 그들 주위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정돈하기 위해 주어졌음을 안다. 성경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의 환경을 조정하신다는 생각은 우리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다.

3. 사회에서

우리가 믿지 않는 신도들에게 전도를 할 때 신학적으로 어려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놓고 있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성육신, 삼위일체의 부분에 대해 비 신도들의 의구심을 어떻게 해소해주어야 할지를 스스로 이론화 시켜 놓고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비 신도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들을 올바르게 전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이 느끼는 바대로 하지 않고 성경에서 말하는 것을 확신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종교 통합주의로 같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성과 최종성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며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믿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라고 충언해야 하고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복 주시기만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순종하지 않을 때는 혹독한 징계를 가하시는 분임을 알려줘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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