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윤리 - ⑧ 성적 문란​

최근 그리스도인(목회자)들의 성적 문란행위가 세상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목회자와 여성 신도들의 불륜문제가 아닐까 한다. 사이비(pseudo)나 이단종교에서 대형 성문란 사건이 터지는 것을 많이 보아 왔을 것이다. 사실 사이비, 이단종파의 대부분은 금전적인 부패와 성적문란 등은 충분히 예상되는 타락이다. 그들의 교리라는 것이 애당초 사람들을 현혹시켜 그릇된 길로 유도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재산을 빼앗고 육체적으로 타락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통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교회들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이단, 사이비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최근에  목회자의 성적 윤리와 관련한 다양한 세미나에서 개최된 여러 문제점과 대책을 살펴보았다.

전문 직업군 중에 성윤리, 성범죄 관련 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케이스가 목회직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교육 등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예방과 사후 대책 역시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고 한다. 어떤 분은 "이진 아웃제(두 번 잘못하면 퇴출하는 것)"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목회자도 인간으로서의 약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유혹 받을 수도 있고 스스로 탈선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행위가 반복되는 경우라면 상습이며 질병으로 보아야 하므로 목회직을 맡으면 안되고 이미 목회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빨리 물러나서 다른 일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한다. 그러나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아서 오랫동안 사역해 온 직업으로서의 목회직을 단번에 떠나기도 어려울 것이고 또한 교단에서도 여러 사정을 고려해 엄정한 처벌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성에 대한 욕망은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모두는 회심이전이나 이후를 막론하고 마음으로라도 이미 범죄하였으며 앞으로도 범죄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딜레마를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 7:23)"라고 통찰하고 있다. 결국 목회자의 성윤리 문제를 풀어나가는 핵심은 목회자의 윤리에 맡기는 것 보다는 시스템으로 갖추어야 할 것 같다. 목회자의 건강한 부부관계와 함께 예방교육의 강화, 그리고 목회자가 탈선하고 타락할 수 있는 자리 자체를 피하는 것 등은 흔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예방책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목회자 자신이 항상 죄인임을 인식하고 통렬한 회개와 자기반성을 통한 간절한 기도가 유일한 내적 해결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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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윤리 - ⑦  명예, 영적 탈진 그리고 돈​

목회자를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살면서 한편으로 명예를 추구하는 것 자체는 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순수한 의미에서의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성결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장려해야 할 일이다. 다만 명예를 위하여 위선적인 행동을 한다든지, 진실한 신앙생활 보다는 명예를 얻는 데만 치중한다든지 한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길을 걷는 것이다.  이렇게 올바르지 못한 신앙생활을 이어갈 때 그리스도인의 영적탈진을 겪게 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수시로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이' 행동하는 때가 많다.  특별히 교회생활이나 사회생활 속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그들이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비난할 때라든지,  신실한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인생에서 역경과 고난만 계속될 때라든지 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탈진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은 믿음이 약할 때 발생한다. 믿음이 굳건할 때 고난은 고난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가 진심으로 십자가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회개할 때 놀라웁게도 고난이 기쁨으로 승화되는 것을 겪는다. 성경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 (로마서 5:3–4) 이라고 증명해주고 있다. 고난이 오히려 소망을 이루는 바탕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신앙생활이 영적탈진을 막아준다.

돈(재화)의 경우는 현실적으로 목회를 지속할 수 있느냐 그만 두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사실 많지 않은 것 같다. 늦은 나이에 교회에 출석하면서 교회내에서 줄곧 여러 문제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많이 봐왔다. 심지어는 장로파, 목사파로 나뉘어 서로 소송전을 벌이면서 교회 밖의 사람들도 하지 않을 행위들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 금전적인 문제였는데 이렇게 한 번 싸움이 벌어지고 나면 다시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대방이 자기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인력을 동원해서 상대 파벌의 강대상(pulpit)을 점령하고 예배당을 지키고 서서 예배를 훼방하거나 하는 일까지 감행한다. 돈 문제도 물론 심각하지만 교회내에서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이 일반 신도들을 더 힘들게 한다. 내가 오랬동안 다니던 교회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고 지금도 그들은 파벌을 지어 싸움중이다. 그 교회는 정식 신도가 8,000명이 넘는 교회여서 싸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돈이 풍족했다. 목회자에게 주는 사례금이나 선교, 교육, 구제 등 각종 교회활동에 지출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돈을 엉뚱한 곳에 쓴다고 법적 소송이 일어났던 것이었다. 교회의 돈을 각자 자기들 돈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런데 비슷한 상황을 이 곳 북미에 와서도 겪었다. 이민 교회의 현실은 대부분 금전적으로도 힘들고 교인들도 적어서 목회자들이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 큰 교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교인부족으로 어려워 한다. 그런데 이 작은 교회에서 교인들끼리 합심을 해서 운영해도 부족한데 여기서도 파당을 지어 싸움을 하고 있다. 역시 돈에 관련된 다툼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역사상의 초대교회 신도들을 부러워 한다. 그들은 가난했어도 먹을 것이 부족했어도 서로 나누면서 위로하고 격려하며 신앙생활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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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윤리 - ⑥ 성적소수(동성애) 문제​

동성간의 성행위에 대해서 로마서 1장 23~27절은 다른 문란한 성적 타락과 함께 설명을 한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로마서 1:23–27, NKRV). 성적인 문란이나 기형적인 성행위 등에 대해서 원인을 암시하는 듯한 구절들이다. 사도 바울은 번갈아 가면서 우상숭배와 육체적 타락을 두 번에 걸쳐 반복적이고 점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논리를  살펴보자. 먼저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성적으로 타락하도록 내버려 두신다 --->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바꾸어 피조물을 하나님 보다 더 경배한다 --->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동성애 등 비정상적인 성행위를 하도록 내버려 두신다. 여기에서 "내버려 두다"는 헬라어로 "paradidwmi"로서 "surrender", "turn over"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우상숭배가 없었더라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까지 성적으로 타락하여 참담한 상태가 되도록 놔두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성적타락 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인 것이다. 성경에서 반복하여 기술하는 것은 강조를 뜻한다.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이 인간들을 정욕과 부끄러운 욕심에 빠져들도록 내버려 두신 것이다. 특별히 남자들끼리의 행위를 "역리", "부끄러운 일" 등으로 표현하면서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우상 숭배의 배후에는 사탄, 즉 어둠의 영과 타락한 세상 권세가 존재한다고 설명한다(고전 10:19–22). 이러한 성경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으로 하나님을 거역함으로써 하나님께 범죄했고 이로 인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우매해지면서 우상숭배를 하게 된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육체적 타락에 넘어 가도록 놓아 두시고 또한 역리적인 육체적 타락에 까지 이르게 하신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육체적 타락의 최정점에 동성애가 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도 결국은 동성애로 인한 성적 타락이었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서 우리는  우상숭배와 성적타락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또한 우상숭배를 배격하고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의지하며 그의 자비를 간구하는 것 만이, 동성애를 포함한 성적타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성경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우리의 주변 사람중에서 (혹은 가족 구성원중의 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동성애와 같은 끔찍한 타락에 빠지는 사람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있을 때,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바를 완곡하게(euphemistically)  설명해 주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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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윤리 - ⑤ 팬데믹(pandemic)화된 4차 산업혁명 시대​

그동안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처해야 할 교회의 역할은 금번 팬데믹(pandemic)시대를 맞아 그 특징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급변하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윤리의식은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가. 대중문화는 현 시대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문화이며 매스미디어는 그 문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중문화와 매스미디어가 팬데믹(pandemic) 시대의 기독교 문화와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교회음악을 대중음악으로 대체할 수 있느냐의 여부, 교회당에서의 설교 대신 인터넷 설교로 마찬가지의 효과를 볼 수 있는지의 여부, 성경책 대신 어플로 보아도 되느냐의 여부, 인공지능이 설교자가 될 수 있느냐 등 현재진행적인 많은 문제들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자랐던 시대를 비교해보면 많은 변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그 자체로서 가치 판단을 할 것이 아니라 본래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배치되는 지의 여부를 살펴보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실상 현대 교회는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위기에 처해 있다. 금번 전염병 사태로 이 위기는 가속화될 것이다.  이러한 위기가 신학이라는 학문에 영향을 끼친다기 보다 신학이 가져다 주는 방향성과 역사성, 그리고, 정체성이 개인화되고 사유화된 경험주의적 신앙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신학의 정체성이 자기가 경험한 것만으로 한정하면 개인주의화 하게 된다. 기독교의 사상, 정통성, 역사를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며 자신의 가치만이 최고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성을 띤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과학기술 만능주의와 빅데이터가 보편화 되는 시대를 맞아 기독교는 절대 진리의 붕괴로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과의 가치관이 충돌되어 고정가치가 변화되는데 다원적인 실재들이 현재하고 있기 때문에 성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될 것이다. 기독교의 가치가 사회적 이슈로부터 밀려나게 됨에 따라 사회에서 마주치는 고통과 고민을 교회에서 해결하지 못해서 교회 이탈 현상이 가속화 할 것이고 그에 따라 교회는 사회도피처로서의 왜곡된 이미지로 변질이 심화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도래할 새 세상이라고 한다.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어떨까? 적 그리스도가 주관하는 빅브라더 시대에 대응할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외에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보인다. 인류가 지금껏 쌓아 놓은 축적된 과학기술을 버리고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같이 비인간적인 세상이 도래할수록 오히려 영적인 리더가 더욱 필요하게 된다는 예측이 많다. 거기에 직접 대면을 꺼리는 팬데믹(pandemic) 시대는 그리스도인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한다. 세상에 문제가 많아질수록 교회가, 영적 리더가 할 일은 더 많아진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기독교 세계관이 상식과 가장 진보된 과학에 부합하는 최상의 선택임을 널리 알려야 한다. 대중문화와 매스미디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더 빨리 임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제 4차 산업혁명시대에 기술은 극단적으로 발달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시대에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인 영성과 인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교회가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가야 한다. 교회는 팬데믹(pandemic) 시대에 4차 산업혁명의 첨단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영적으로 시대를 선도해 나가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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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윤리의식 - ④ 가정폭력, 결혼과 이혼​

그리스도인(목회자 포함)의 가정폭력, 결혼, 이혼이라는 문제는 특별히 목회윤리 차원이라기 보다는 일반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를 굳이 목회윤리에 포함하여서 고찰하는 이유는 목회자는  일반인이 아니라 성직자(제사장)라는 구별된 개념으로 인식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식은 일반 신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회는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유난히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불교신자(buddhists)나 승려(monks), 도교신자(taoists)나 도사(ascetic)등에 대해서 사회가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는 것 같은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가? 정말 수준 낮은 중은 '땡중(hypocrite)'이라고 비하하지만 그렇다고 교인들이나 목사들에게 요구하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지는 않는 것 같다. 또 도사(ascetic)라고 하는 사람이 마을에 내려가서 막걸리(a kind of wine) 한잔 마시고 혼자서 횡설수설(gibberlish) 한다고 해서 뭐 대단한 흠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무흠결이어야 하고 신성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목회자의 경우는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러므로 해서 이들에게 가정폭력이나 비정상적인 결혼, 이혼 등의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면 일단 "교회 다닌다는 것들이..., 목사라는 자가..."라고 하면서 혀를 차는 것(click their tongues)이다. 특별히 목사라든지 사제라든지 성직을 맡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파문이나 지위 박탈 등 엄격한 정죄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로교의 전통은 목회자나 교사 등도 신도들 중 적임자를 선정하여 그 직을 맡기는 하나의 직분을 의미한다고 한다. 물론 그 경우에도 목사직 같은 경우는 다른 직분보다 훨씬 엄격한 선발 기준이 있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전제는 목사도 일반 성도들 중의 하나, 즉 보통 인간임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북미권의 교회는 최소한 목회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그 교회내에서 존재하면 돌아가면서 설교도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담임목사가 전적으로 설교를 전담하는 한국교회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처럼 목회자도 하나의 직분자라고 보았을 때 목회자의 가정폭력, 결혼, 이혼이라는 문제도 일반 성도들과 똑 같은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더구나 목회자 커플의 일방 당사자가 비신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다만 신실한 목회자라면 가정생활도 충실하게 수행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존경받는 목회자나 신실한 교회 장로, 권사분들의 부부 사이가 원만하고 자녀가 축복 받아 잘 자라고 있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감사한 일이다. 결국 이렇게 가정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일반 성도나 목회자가 우선 당사자 스스로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격려하고 위로해야 하며 교회 공동체에서 목회자 가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 보살펴 주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 또한 그들도 연약한 인간으로서 가정폭력이나 결혼과 관련한 제반 문제, 이혼의 고통 등이 분명히 따를 수 있다. 이럴 때 이들을 정죄하고 원칙론적인 주장만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 일이 아니라, 기독교인들 답게 하나님 앞에 다 내려 놓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 주면서 공동체로서 희로애락을 같이 해주는 과정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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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윤리의식 -  ③ 이단(heresy) 논쟁

이단(heresy)과 사이비(pseudo)의 문제는 세계 어느 곳에서보다도 한국사회에서 훨씬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한국교회의 폭발적 부흥의 이면에는 그 안에 기생하면서 더러운 개인적 이득을 챙기려는 사이비 세력들이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 대부흥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기독교 이단이라고 하면 누구나 떠오를 만한 단체들이 많이 있다. 현대교회의 이단의 계보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들도 상당수 있다. 유튜브에서 '이단 계보'로만 검색해도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는 코너들이 여럿 있다. 이단적 신앙이 문제가 되는 것은,  잘못된 교리로 기독교를 믿으려면 안 믿는 것보다 더 큰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단의 계보를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나왔다 하면 멱살을 잡고 싸우게 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은혜만 강조하고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은 결과이다.  기독교 정통 교리를 연구하여 대처를 잘 하여야 신도들을 올바르게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단, 사이비의 문제는 공부해보면 금방 잘못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단, 사이비에 미혹되는 교인들의 몽매함만 깨우치면 된다. 하지만 정통으로 분류되는 교단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고 복잡하다. 세계의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운동에 정통교단이 무분별하게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소속교인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교단차원에서 강제로 진행하고 있다. 또한 현대 교회의 대다수가 성령으로부터 온 것 같지 않은 방언(tongue) 기도를 묵인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그 영을 반드시 분별해야 한다. 또한 거의 모든 개별 교회는 신도들이 늘어나는 성장을 제일의 목표로 삼고 있을 뿐 아니라 교단간에 이기적인 분열에 익숙해져 있다. 교회내에서는 파벌싸움 등으로 공동체의 신앙생활은 곪아(festered)가고 있다. 사실 이렇게 혼란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있다. 필자도 성인이 되어 세례를 받은 후 본의 아니게 여러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해당 교파나 지교회 등이 적어도 반수 이상은 조금은 애매하지만 정통교리라고 보기 힘든, 이단적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다. 한국 교회는 또 한 번의 쇄신을 하지 않고는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독교 신학이 교회를 중시하는 이유는 '공동체의 구원'이라는 조직신학적인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내용인 것은 맞다. 하지만 작금의 현대교회의 현실을 보면 우선 개인적인 신앙의 올바른 정립이 더 급선무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먼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해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보다 많은 시간을 성경 읽기에 할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 자체를 읽고, 주요부분을 암기하고 성경원어인 헬라어, 히브리어도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성경이 말하는 원래의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성경읽기(암송 포함), 성경원어에 기초가 탄탄하면 그 위에 성경해석을 위한 여러 과목들은 독학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성령을 간구해야 한다. 성경은 단지 지식으로만 습득될 수 있는 서적이 아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성령으로 인도된 성화되는 삶이 아니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갈급함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의 신앙은 올바른 방향성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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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윤리의식 -  ② 임신중절(낙태)의 문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긴다“라고 한다. 의학적인 차원으로 수태하는 순간 사람으로서의 인권 존중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임신중절(낙태) 현황을 보면 2010년 34만회에서 2017년에 100만건이었으며 대개 12주 미만의 태아에 해당이 되었다고 한다. 이 수치는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 금지의 헌법 불합치 판정 후 통계도 제대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폭증하고 있다고 한다. 낙태와 관련하여 찬반양론이 거세다. 혹자는 낙태는 그 부모의 권리이므로 아무도 침범 못하며 태아는 의사표시를 할 수 없으므로 인격자가 아니라는 관점에서 부모가 자유의지로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입장에서는 우리 인간은 모든 권리가 허용된 것이 아니며 병원에서 의식을 잃고 있는 사람이나 갓 태어난 아이도 의사표시를 할 수 없다고 해서 부모의 자유의지를 존중한다고 해도 사람을 죽여도 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임신중절(낙태)의 문제는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당사자(the person directly concerned)들에게는 큰 상실로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실 신학이라기 보다는 목회상담적 접근이라 문외한( those on the outside)인 사람의 입장에서는 대안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 단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법적인 문제는 시대에 따라 국가에 따라 달라지고 있으니 논외로 친다고 해도 윤리적으로는 마땅히 태아를 포함한 당사자(the person directly concerned)의 관계적, 상황적 현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주변적 논리 위에 성경 말씀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성경은 여러 구절을 통해 태아는 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인격성을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을 중심축으로 하여 다른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삶을 추스르고, 우선순위를 점검하고, 방향을 새롭게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당위적으로는 임신중절은 태아라는 인격체를 죽이는 것이라 안되는 일이므로 사전예방이 최선의 방책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수많은 실제 결과에 대해서는 사후대책, 즉 치유를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낙태의 실행이었든지, 장애나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무릅쓰고 출산을 했든지 온전히 당사자(the person directly concerned)가 겪어야 할 고통이다. 그 현실을 직시하고 과감히 마주해야 한다. 어떤 불행이 엄습하고 난 뒤 극복은 쉽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든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임신당사자(the person directly concerned)들의 의견이 출산(불행이 예상되는)이나 낙태를 결정한다고 보았을 때, 그들에게 사후에 슬퍼하고 위로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낙태를 결정할 경우에도 그들은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스스로를 용서하고 자신들의 결정의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여야 한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우선 인권보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그의 은혜와 자비를 구해야 한다. 이것은 이혼, 사별 등 다른 모든 상실과 함께 온전히 당사자(the person directly concerned)들이 겪어야 할 고통이다.  제럴드 싯처(Gerald L. Sittser)는 "이러한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위대한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몸소 겪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이러한 심각한 상실에 대해 능히 대답하실 수 있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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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윤리의식 - ② 정의와 불의​

목회자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강대상이나 교단에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나 자신도 목회자나 교수도 아니지만 오랫동안 정치적인 논의는 의도적으로 피해 왔다. 어떤 정파든지 선거운동기간에는 국가를 위해 순수한 열정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지만 집권후에는 본성이 드러나 정치권력을 유지하는데만 혈안이 되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투표조차도 참여하지 않는 냉소적인 유권자들이 증가한다.

이제 전세계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전세계적 유행병으로 인한 팬데믹(pandemic)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정치판도도 일변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인류는 오랜 경험을 통해 민주주의를 최고의 정치체제로 인식하고 합의된 선거제도를 통해  이러한 이상을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전세계의 절반은 아직도 전체주의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더구나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어떤 세력들의 세계 단일정부 수립 시도, 적그리스도의 등장, 종교통합 등이 이 세상을  '빅 브라더스'의 통제 아래로 몰아 넣을 것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 지고 있다. 

한국에서 군사독재를 경험하고  1980년대를 전후해서 대학생활을 한 사람들은 급변하는 산업화 사회를 살아왔다. 경제적으로 그 당시 정권의 공과를 논하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당시 학생들은 대체로 정치적으로 편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민주화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정착이 되었다고 보지만 아직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요소는 의외로 많이 있다. 인류가 선택한 최고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극단적인 전체주의 정치가 아닌 한 이데올로기적 사상은 그리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자유야 말로 우리가 수호해야 할 가치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정의나 자유는 하나님안에서 성경 안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 의로움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치적인 선택은 이러한 의로움이 구현되는, 하나님을 믿는 자유를 보장받는 선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세상을 위기의 구렁텅이에 빠트리고 있는 종교탄압자들은 종교자유의 최대 적이다. 정의와 불의의 문제를 현실정치에 대입하였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단합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종교적 순수성은 정치세력에 의해 이용당하고 유린되어 왔다. 신앙인들은 좀 더 영리해 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죄만으로 강제수용소에 수감되고, 고문에 의해 불구자가 되며, 급기야 목숨을 잃는 신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다. 우리의 신앙을 교란하기 위해 적그리스도가 조작하는 사건들은 여러 정황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실수도 아닌 것이다. 백 번 양보하여 이것이 그들의 조작이 아니라고 해도 수억명의 신도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저지르는 범죄들만으로도 이들을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문제와 더불어 세계는 언제까지 종교탄압자들을 두고 보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이에 대한 침묵의 대가를 하나님 앞에서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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