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윤리의식(倫理意識) -  죄의 뿌리 

우리 안의 죄성을 극복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은혜만을 가지고 죄성을 덮으려고 하니 이것이 해결될 수 없다. 내가 스스로 자각하여 바뀌려고 하지 않는 한 죄성은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말이다. 이 문제를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연결시켜 보면 ‘목회자의 성 윤리의식’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자신 안에 있는 죄성을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대답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로마서 1:23~26까지의 말씀에는 성적타락이 우상숭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구절이 있다. 우상숭배와 성적타락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은 남녀가 합하여 한 몸이 되는 사건에 대하여 몇 곳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5:31-32) 라고 한다. 바로 남녀의 관계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형상'은 이 '남녀의 관계' 자체를 의미한다고 한다. 묵상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로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왜 수치와 두려움으로 하체를 가렸는지에 대해서 성경적인 해답을 찾아야 한다. 실제로 죄를 지은 것은 입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들은 수치와 두려움으로 입을 가렸어야 했다. 이것은 모 이단교파가 제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한 명확한 반박논리를 정통교리로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도 연구대상이다. 영적인 간음과 육적인 간음은 어떤 관계가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간음을 더 큰 범죄로 보시는 것 같다. 물론 여기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우상숭배를 영적인 간음이라고 전제하는 한도내에서의 논리이다. 앞서의 로마서 구절에서 영적인 간음을 범한 인간을 육체적 타락에 내던지셨다고 한 것을 생각해 보자. 이 구절은 선후로 보아 영적인 간음이 육체적 타락의 원인이 된다.  또한 ‘그들의 마음의 정욕대로’라는 구절로 비추어 보아 원래 인간은 원초적으로 ‘정욕의 죄를 짓는 존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육체적으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지만, 영적인 간음을 하지 않으면, 즉 하나님 한 분만을 온전히 바라보고 성령의 열매를 바라고 우상숭배를 철저히 배격하면 육체적으로 타락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성령의 은사로, 이에 더하여 성령의 은사만이 인간의 육체적 타락을 막아 줄 수 있다고 해석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죄의 근원은 그릇된 정욕에 있으며 이에 대한 치료는 성령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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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무엇인가? --- 神學 斷想 3​

특별히 구원론을 중심으로 하는 존 웨슬리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그의 신학의 성패가 달렸다고 생각된다.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하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인성(humanity)보다 신성(divinity)을 더욱 중요시 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루터파나 칼빈주의와도 견해를 달리하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구분에 있어서 어느 한 쪽을 더 중시하는 것이 복음주의 정통신학에 비추어 가능한 것인지 알고 싶다. 구원론과 관련하여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설파한 로마서 7장의 '죄'를 살펴보면 “이전에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죄의 욕정이 우리 몸의 지체 안에서 작용해서,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로마서 7:5, NKSV) 라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Greek 원문을 포함한 여러 성경을 대조하여 분석하고 묵상해 보았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죄의 욕정이 우리 몸의 지체 안에서 작용해서' 의 부분에 대해서 '죄가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율법을 이용하여 우리 지체중에 역사하여'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경세적 삼위일체( the Governing Trinity)의 하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 활동하신다. 이 하나님의 구원과정에서 성령(the Holy Spirit)께서는 인간 개개인의 구원에 있어서 역사하신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구원론의 궁극적인 목표는 공동체적 역할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는 죄가 없었고 죄로 인한 소외도 없었으나 한 사람(Adam)의 죄로 인해 인간이 죄의 노예가 된 이래 사람들 사이에서의 소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소외를 가져 왔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소외를 치유하기 위한 대부분의 역할을 성령께서 인도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담당하고 있다.​

교회는 단순히 어떤 건물이나 사람들이라는 정태적 관계라기 보다는 계약, 하나님 나라의 표지, 공동체와 같은 동태적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 교회는 현재 살아 움직이며 변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별한 계약 관계 속에 있는 백성들을 종말까지 인도하는 공동체이다. 즉, 교회는 종말론적 계약 공동체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계약 백성이 필수요소가 된다. 하나님의 통치는 교회 개념 정립에 선결되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은 시간적 순서가 있지만 하나님에게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이 시간이 있을 수 없고 과거, 현재,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이미 인간세상에 들어와 계신다. 그 분께서는 우리의 현재적 실존속으로 뚫고 들어와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이미 현존하고 있으며 우리가 들어가도록 초대받고 있다. 교회에서의 현재의 삶은 앞으로 도래할 영원한 세상을 위한 훈련도장이요 준비장소이다. 종말론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류구속의 원대한 계획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어디로 이끌고 계시는가. 지금의 세계는 하나님의 계획중에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묵상해 본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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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무엇인가? --- 神學 斷想 2

인간 존엄의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찬양하도록 피조물을 지으셨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셨으므로 피조물 사이에는 연결점과 유사점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더불어 살아가야 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고 더불어 구원의 길로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섭리란 “종말을 향한 사물들의 질서의 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피조물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신다. 악을 징벌하지 않으신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섭리를 통해 역사의 완성 때에 삶의 모든 악과 불의들을 고치실 것이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 목표의 근원이시며 그 목표의 완성을 향해 모든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이 세상의 역사를 종말론적인 구속사로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지어짐으로써 공통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떠한 목적 하에서 지으셨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각 사람은 하나님에게 의지해야 하는데 여기에 육체와 혼과 영이 따로 떨어져서 의지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 셋이 각기 기능을 달리할지언정 ‘통일된 전체’가 다 하나님께 의존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사람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을지라도 마르틴 루터가 얘기한 것처럼 ‘말씀과 성령’으로 회복할 수가 있다. 결국 하나님의 형상은 타락하기 전의 아담이고 그리스도이다. 칼빈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 점진적으로 회복된다는 루터의 이론을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완전한 형상의 회복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결론을 맺고 또 다른 삶에 가서야 완성된다고 본다.

하나님의 형상을 종말론적인 목적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리스도안에서의 공동체로 보아야 하며 그것은 교회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본성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교회공동체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친히 “누구든지 자신의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3)라고 하시어 영생을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닮는 것에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서 순교에 까지 이른 것을 생각나게 하는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에 따라 순종하여 삶으로써,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가야 하는 것이다. 기독론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온전한 신성과 온전한 인성을 지닌 분임을 인정해야 하고 한 인격안에서의 두 개의 완전한 본성을 발견하게 된다. 즉,  '말씀(Logos)이신 예수' 개념으로 하나님의 창조적 및 계시적 측면을 강조하고 '아들이신 예수' 개념으로 예수의 역사적 측면을 조명한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신적인 아들이며 인간의 욕정으로 부터의 결과가 아닌 '동정녀 탄생'으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임을 성서의 증거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은 대속 죽음을 통한 인간 구원이었는데 이로써 우리는 구원론이 기독론을 근저로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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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무엇인가? --- 神學 斷想 1

신학이란 신(theos)과 말(logos)의 결합어이다. 즉 신을 논리적이고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학은 각 시대마다 그에 맞는 적절한 소명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소명을 정확하고 깊이있게, 역사 책임적 과제를 설정하고 구체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 나라에 어떻게 봉사할지에 대해서 묵상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을 정확하고 바르게 알기 위하여 신학을 공부한다. 일반적으로 신학은 성서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그리고 실천신학으로 나누어서 학습하게 된다. ‘오직 성서로'라고 외친 복음주의자들의 의로움을 경외한다. 그들의 통찰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일점 일획 까지 성경전체가 성령의 역사로 기록된 것을 믿지 않고서는 성경을 통한 감동과 그에 따른 삶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이 쓰여진 이후 수천년동안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구절들까지 최근의 과학적 연구의 성과로 그 내용이 진실이었음이 속속 드러남을 보면서 성경은 인간의 능력으로 이해할 수없는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것이며 이것이 인간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인간 구원의 메시지임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중국 전한시대의 역사가 사마천은 사관으로 일하고 있던 49세때 흉노를 토벌하던 이릉의 사건에 연루, 누명을 쓰고 치욕스러운 형벌을 받는다. 이때 그는 "하늘의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부르짖으면서 이후 여생을 전국을 돌며 자료를 수집, 역사상 최고의 사서 "史記"를 저술하는데 투신한다. 이른바 '사마천의 사기'이다. 그가 알고자 했던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얘기하면 '하나님은 계시는가?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신가?'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마천이 만약 우리의 하나님을 알았다면 신학의 위대한 전제인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계시며 하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신적인 말씀 속에서 계시하시면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공의롭고 유일무이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시대는 다르지만 그가 성경을 접하고 읽고 연구했더라면 로마서 5장 3~4절 말씀에 큰 위안을 얻었을것 같다.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교회를 다니지 않던 때에(다니고 있었더라도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 신앙의 단계가 초등학문의 수준에 머물고 있을때) 친구들과 종교문제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면 늘 등장하는 주제가 삼위일체론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AD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신성을, AD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성령의 온전한 신성을 선언하여 삼위일체론이 정통신앙으로 인정된 것과 관련해서 일종의 정치적인 회의에서 정통과 이단을 구획하는 것일 뿐 이런 문제들이 종교의 본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쓰여졌음과 그러한 공의회조차도 하나님의 섭리로 된 것을 이해하지 못했던 결과였던 것 같다. 지금도 삼위일체론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규정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대표적으로 창세기 1:26의 '우리라는 복수개념' 요한복음 14:26에서 말하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등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성령의 신성과 관련해서는 경륜적인 삼위일체 즉, 구속사역, 구원의 계획 속에서 성령 하나님을 이해하여야 하며, 성도들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성령이 실제로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면, 우리가 성령에 참여함으로써 신적인 본질을 공유하는 것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의 종교가 그 위에 설 수 없을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자유의지이며 창조된 세상으로부터도 초월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즉, 창조의 교리는 성서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 창조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성자께서 이루시고 성령께서 완성하시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바 ‘볼트만’은 특히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창조교리는 기독교를 다른 종교들과 구별하게 해주며 우리 믿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창조교리에 대한 믿음을 통해 성서의 다른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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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신 하나님의 속성

신학일반/신학 산책 2020. 7. 10. 06:03 Posted by forest38

위대하신 하나님의 속성

 

1. 서론

삼위일체 하나님은 관계적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고 자기 백성과 온전한 신적 생명을 나누기 위해 활동하고 계신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고자 그분의 속성들에 관하여 질문을 한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면서 다양한 속성을 가지고 계신다. 어떤 속성을 가지고 계신 분인가 알아보고 이 속성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와서 실천적인 의미를 지니는지 확인해 본다.

2. 본론

하나님의 속성들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범주로 분류된다. 자존성, 불변성, 무한성, 통일성 등 비공유적 속성과 지식, 지혜, 정직, 선, 거룩, 의, 의지와 능력에 있어서의 주권성을 포함하는 공유적 속성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전능, 거룩, 사랑이시다. 본질적인 속성은 하나님의 본질을 의미하며 하나님 자신이다. 관계적인 속성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속에서의 이야기이며 하나님의 존재이다. 인격적인 속성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속에서 지, 정, 의 같은 인간의 인격을 의미하며 도덕적 속성은 피조물의 창조에서 만남, 통치에서 나타나는 속성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으로서의 하나님의 속성은 편재, 전지, 전능을 포함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분으로 홀로 완전하시다. 또한 자의식이 있으시고 인격적이시며 사회적인 관계를 가지고 계시는 존재 자체만으로 영광 받으실 분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며 영원히 존재 하는 분(I am who I am)으로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분이며, 만물은 하나님에 대하여 직접적이면서도 본연의 모습으로 현재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전지하시다. 또한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 으로 창조를 위한 자신의 계획을 완성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피조세계에 대하여 심판을 행하시며 세계에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분으로서 세계를 아신다. 심판과 구원은 종말론적인 실재들이다. 우리의 고통을 보고 함께 하시는 불변의 존재로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관계하시기를 원하시며 도덕적으로 순결하신데 거룩하시며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으로 순결한 분으로 온전하시며, 자존성,단순성,무한성 및 능력, 선, 자비를 갖추고 계신 분이다. 또한 의로우신 분인데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우리와 관계 될 때 하나님의 율법은 완전하고 의롭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으로 우리의 죄를 심판하신다.하나님은 참 하나님으로서 참 모습 그대로 보이시는 진정성을 갖추고 계신 분이며 그의 말씀은 진리로서 인간과 사물의 본질 모습 그대로 드러내신다. 하나님께서 정직성을 본질로 하시면서 백성에게 정직하게 다가가시므로 우리도 그분에게 정직하게 다가가야 한다. 또한 그분은 약속을 철저히, 완벽하게 성취하시는 신실성이 있는 분이시다. 그분은 또한 사랑으로 자격이 안 되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백성의 필요에 따라 거저 은혜를 베푸시면서 우리는 믿음 으로 그 분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으로 오래 참으시는 분이다. 우리는 그분의 인내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하나님에 대한 기쁨이며 경외심으로 찬양하도록 한다. 또한 우리를 담대한 기도로 인도하고 믿음으로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종말론적 구원계획에 우리를 부르시는데 우리에게 주시는 수단은 열렬한 간구와 순종의 행동이다. 기도와 행동을 통해서 우리는 현재의 삶의 자리에 미래의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다. 사랑의 하나님은 피조세계에 대해 오래 참으심과 긍휼로서 응답하신다. 이것은 우리의 사역의 모형이 되어 주는데 긍휼의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는 마찬가지로 긍휼을 타인들을 향한 우리의 특징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거룩한 긍휼은 우리로 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부터 나오는데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 우리 안에 창조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결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통시적인 편재성으로 존재하고 전체적으로 완성되고 완전한 상태로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완성의 때에 하나님은 악을 이기시고 새 질서를 창조하실 것임을 믿어야 한다. 또한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에 있어서 공의롭다는 점에서 거룩하신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긍휼로서 피조물을 대하신다.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님의 성품은 둘 다 사랑이신데 우리는 성령께 탄식으로 간구하여 우리 안에 긍휼이 넘치고 사랑이 만들어지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간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종말론적일직선적인 구속사역에 담대히 참여해야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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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인간관과 인간 창조의 신학적 의미

1. 서론

우리는 하나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의 개인적 실존과 우리가 공유하도록 부르심 받은 인간적 본성의 기원임을 믿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이 세계에 대한 개방적인 피조물들이라는 전제하에서 우리의 정체성에 관한 신학적 전망을 설명하기로 한다. 우리는 먼저 인류의 본질과 관련하여 살펴보기로 하고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성경적, 신학적 개념 아래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논의하고자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우리가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 즉 인류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에 드러내 보여 줄 때,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종말론적인 공동체는 현재적인 실재가 될 수 있다.

2. 본론

[ 기독교적 인간관 ]

인간의 기원은 하나님의 창조행위이다. 하나님이 의도적 행동으로 인간을 만드신 것이다. 결정론에 의하면 창조적인 인류는 인간 이외의 그 어떤 힘들의 산물이다. 우리가 행하는 선택들은 예정되어 있고 심지어 결정되어 있기 까지 하다. 인간에게는 영원의 차원이 있으므로 시작과 출발이 있다. 인간은 흙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시작이 분명하고 하나님 안에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가치를 부여하였으므로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창조주를 섬기고 사랑할 때 만족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은 다른 피조물에게는 없는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고유한 것으로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개념 파악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우리 인간의 운명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였고, 지금도 이루어 가고 있을뿐 아니라, 언젠가는 온전히 실현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의 의미가 있다. 또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가지므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부르실 때 대답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인들끼리 특별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그 연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발적 참여는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변화는 회심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의 형상과의 완전한 합치를 우리에게 가져다 줄 저 위대한 종말론적인 갱신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 인간창조의 신학적 의미 ]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 함은 인간은 독자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의 한 부분으로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는데 일곱째 날은 안식하신 날이라 여섯째 날이 창조의 마지막날로 볼 수 있다. 피조에는 연속성이 있다. 창조의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창조된 피조물들은 생태학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의 거대한 가족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인간은 우주에서 가장 우월한 대상이 아니다. 창조주에 의한 피조물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하나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가 없다. 우리는 이러한 유한성을 인정해야 하고 서로 돕고 협력하며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창조에 있어서 독특한 위치에 있으며 이들 인간들 사이는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의 관계인 것이다.

신앙 공동체는 하나님과 세계의 기본적인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두 용어로 설명한다.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가 지으신 도덕적인 피조물들과 나누고자 하시는 특별 관계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우리의 실존 자체는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증언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실존을 창조주 하나님에게 빚지고 있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와 그의 은혜를 베푸실 자유에 따라 우리에게 실존을 수여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원(origin)이 하나님 안에 있다’고 하는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인간의 실존의 근거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격적 삶 자체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의미도 우리에게 내재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개인의 삶의 의미를 우리 자신을 초월하는 실재로부터 가져온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미를 부여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부여된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의도하신 목표, 목적, 운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 의미를 바로 찾는 것은 우리 믿는 자들의 사명이다.

3. 결론

하나님은 인간과 공동체적으로 교류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인간의 가치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규정지어지고 그를 섬기고 사랑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시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엡 1:4-5).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끼리 특별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그 연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공유하며 위대한 종말론적인 갱신에 이르기까지 지속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서 하나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가 없다. 우리는 이러한 유한성을 인정해야 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계획, 즉 공동체의 구원을 갈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실존의 가치를 부여하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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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회심

신학일반/신학 산책 2020. 7. 8. 07:36 Posted by forest38

기독교적 회심

가. 서론

개인 구원의 시작은 성령을 통한 회심이다. 회심은 이전의 타락한 상태로부터의 단절과 함께 거룩하게 하나님께 다가가서 새로운 생명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일생 일대의 위대한 거래일 뿐만 아니라 인생을 변화시키는 만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회심은 회개와 믿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회개는 불신자가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이고, 믿음은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서는 먼저 구원과정에서 회심과 중생의 선후관계를 살펴본다. 또한 회심의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한편, 회심과정에서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개인적 관점과 공동체적 관점에서 확인해 본다.

나. 본론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게 되면, 회심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개인의 구원에 있어서 중생이 먼저인가 회심이 먼저인가는 칼빈주의(중생)와 알미니안주의(회심)를 구분하는 주요 기준이다. 웨슬리안은 회심이 중생의 필수조건이라고 간주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인간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고, 변화시켜 주신다고 설명한다. 성서의 여러 증언들을 살펴보면, 회심이 중생보다 먼저임을 가리키는 구절들이 많다.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회개하라’라고 하는 호소들은 분명 회심이 중생으로 이끄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또한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한 사실로 판단해볼 때 회심이 중생보다 앞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믿음의 자녀가 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걸음을 옮길 때 중요한 부분은 회심이다.

회심의 개인적 측면을 살펴보면, 회심에는 회개와 믿음이 있다. 회개는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돌이키어 오직 한 분 참 하나님에게로 돌아와 행실을 변화시킨다는 개념인 반면, 믿음은 지식, 동의, 신뢰의 단계를 거쳐서 비로소 완성되는 하나의 절차적 개념이다. 죄를 깨닫고 돌이키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보시고, 우리에게 ‘의롭다’ 칭해주시면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해 주신다. 이러한 회심의 요소에는 지,정,의 세 가지가 있다. 1) 참된 회개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존엄성을 아는 지식을 포함한다. 2) 회심에는 감정적 변화가 따라 오는데 우리가 거룩하고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자기가 지은 죄를 애통해 하게 된다. 3) 회심의 의지적인 요소로는 회심을 통해서 목적이 변화하고, 죄로부터 내적으로 멀어지는 한편, 용서와 정결을 구하는 성향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회심을 외적변화의 측면으로 구분하면 민족적인 회심, 일시적인 회심, 반복적인 회심 등이 있다. 민족적인 회심은 도덕적인 갱신으로 나타나고 일시적인 회심은 심령 변화는 없이 어떤 과도적인 변화만 나타난다. 반복적인 회심은 일시적인 회심이 반복될 경우를 의미한다. 진정한 회심을 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회심은 하나님께서 조성하시는 것으로 그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생 동안 성화의 삶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회개하며 나아가야 한다. 회심과정에는 구원의 전 과정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활동이 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이 신약성서 기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조명) 해주시며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불러주시고 복음을 듣는 자들의 마음을 밝혀서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를 볼 수 있도록 해주시며, 우리들에게 복음에 응답할 수 있도록 회개와 믿음을 가능케 만들어 주신다. 성령의 조명사역의 초점이 마음에 있다면, 성령의 능력 주심은 우리의 의지에 관련된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복음에 대한 개인의 응답은 고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라는 맥락에서 이루어진다. 회심 과정에서 복음선포를 위주로 하는 신앙공동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교회는 복음의 선포를 통하여 개별 인간을 회심시키는 매개 역할을 하며 이들을 통합시키어서 새로운 공동체로 발전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어떤 한 개인이 회심을 통하여 교회라는 공동체 속으로 통합된다는 것은 그가 새로운 인식의 틀을 받아들이어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틀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의미한다.

다. 결론

하나님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정하시어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작정하셨다 (엡 1:4). 성령께서는 구원의 전 과정에서 역사하시어 우리를 회심시키고 일생 성화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회개하며 나아가게 하신다. 이로써 우리는 복음에 응답하고 믿는 자들의 공동체적 맥락에서 하나님의 원대하신 계획, 종말론적 구속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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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적 교회의 본질 이해

1. 서론

교회는 계약 맺은 백성이다. ‘에클레시아(Ecclesia, 불려내진 사람들)’라는 용어는 이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한편 삼위일체론적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교회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그리고 성령의 전으로서의 교회를 말하는데 이것들은 각각 삼위일체 하나님의 어느 한 지체와 연관되어 있으며 여기에서는 이들 세 요소를 차례로 검토해 보기로 한다.

2. 본론

신약성서는 교회를 하나님께 속한 나라요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았듯이 이제는 신약성서의 교회가 바로 그러한 관계를 누리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현재적으로 역사하심에 의해서 교회로 인정받게 된 것으로 교회가 교회다운 것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그리스도 중심으로 복음이 선포되고 확장되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과 동일시하였는데 하나님이 부르시고 모으시고 선택하신 백성이 이스라엘이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돌보시고 눈동자처럼 지키시며 그 백성들이 하나님께 충성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징표로 구약의 할례와 언약궤가 있으며 신약의 내적 할례(마음의 할례)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특성은 거룩성, 성화인데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는 마땅히 거룩해야 한다.

또한 신약성서는 교회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현재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시는 장소이며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을 강조한다. 성도는 그 몸의 지체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영양분을 받고 그 안에서 자라간다.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도에 지배되고 따라가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존재하고, 이 점에서 교회는 세상 속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이다. 인간의 몸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다양성으로 이루어진 통일체이다. 진정한 교제는 자기 이익을 떠나 그리스도와 성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진정하고 긴밀한 교감과 연합이 이뤄지며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통일된 몸)을 이룬다.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 인간의 모든 장벽이 교회 안에서 제거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주의 마지막 사명(대 위임령)인 복음 전파의 사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모든 지체들이 동일한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동일 목표를 갖고 있다. 모두는 다른 지체들에게 관심 가져야 하고, 전체에 봉사하기 위하여 그들의 은사를 사용하여야 한다.

교회는 성령의 전이다. 이스라엘에서 성전은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지상 거소였다면 이제 하나님의 임재의 초점은 더 이상 특별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교제, 즉 공동체이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재해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윤리적 함의들을 지닌다. 우리는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성령의 전으로서의 교회를 존재케 하신 분은 오순절 사건 후의 성부 하나님이며 개인은 물론 공동체 안에도 내주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성령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때 우리 안에 성령이 맺히게 된다. 또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능력을 수여하신다. 교회는 성령 하나님의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으며 성령께서는 또한 교회에 통일성을 부여하시는데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을 갖게 하고 교회가 주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역사하시며 성령의 뜻대로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한 선물로서 개인과 교회 공동체에 성령의 은사를 주신다. 결국 교회의 주권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그분에 의하여 거룩하고 순결하게 되는 것이다.

3. 결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우리는 마땅히 거룩해야 하며 끊임없이 성화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와 연합하여야 한다. 또한 교회는 성령의 전이다. 성령의 전으로서의 교회를 존재케 하신 분은 오순절 사건후의 성부 하나님이시며 개인은 물론 공동체 안에도 내주하시면서 교회에 능력을 수여하신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성자 그리스도에 의해 양육되며 성령 하나님에 의해 성화된다.

신앙은 개인의 믿음과 경건한 생활을 통한 성화 과정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경륜적 섭리에 의해 인도되어지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구원은 개인의 구원보다 상위에 있는 개념일 수도 있다. 문제는 작금의 현실과 같은 펜데믹 상황에서, 개인의 신앙은 충분히 유지할 수 있지만 공동체의 신앙, 공동체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러한 펜데믹 상황은 일정 기간이 흐른후 그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또다른 펜데믹은 계속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환란이 예수님이 오실때까지 계속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믿는 형제들의 중지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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