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현장 교육」 (Robert L. Kinast)
(로버트 L. 키내스트 저/권명수 옮김)
서론
신학적인 성찰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신학적인 성찰의 ‘신비스러운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신학적인 성찰 이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신학적인 성찰은 다른 사람의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이 책은 목회의 경험에 집중한다. 신학적인 성찰은 사람들이 그들의 경험에서 배우는 것을 돕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아주 광의적으로 혹은 세부적으로 진술될 수 있다. 각 장은 신학적인 성찰 방법의 기본적인 단계를 기술한다. 각 장의 전반부는 실제 예와 논평으로 방법론적인 절차를 간략하게 제시한다. 각 장의 후반부는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실제 예들과 논평들을 자세하게 다룬다. 그리고 각 장 마지막에서는 실천적인 제안 목록을 제시하고 그 장의 요점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짧게 서술할 것이다. 신학적인 성찰은 작은 집단에서 가장 잘 적용된다. 어떤 경험들은 다른 경험들보다 더 유용하다. 사람들은 많은 전망을 가지고 경험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다. 신학적인 성찰은 한 사람의 삶의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시작하고, 그 사건들로부터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도록 도와준다. 신학적인 성찰이 단지 이따금씩 행해진다면, 온전한 성과를 가져올 수 없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실천해야만 하는 기술이다.
무엇이 신학적인 성찰을 신학적이도록 만드는가?
신학적 성찰은 하나님에 관한 논리(theo-logical)이다. 이것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하나님이다. 이것은 사람이 바로 자신의 경험 안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학적 성찰은 기도나 영성 지도와 유사하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좀 더 직접적으로 만나도록 사람들을 이끄는 데 관심을 갖는다.
신학적인 성찰을 어떻게 하는가?
신학적인 성찰을 행하기 위한 많은 방법과 모델들이 있다. 이것들은 각각 상이한 강조점을 가지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단계들에 대해서 동의한다. 경험을 선택하기(1장)에서는 우리가 신학적인 성찰을 하기 위해, 의미 있는 순간에 중점을 두기 위해 이것들을 구분하는 것을 설명한다. 경험을 말하기(2장)는 경험을 묘사하는 것에 관련된 것이며, 경험으로 들어가기(3장)는 경험이 가르치는 것을 배우기 위해, 경험에서 배우기(4-6장)는 신학적인 성찰의 절정 부분이며, 배운 것을 실천하기(7장)에서는 이것을 규정하는 여러 자기 방법을 기술할 것이다.
신학적인 성찰의 기원은 무엇인가?
신학적인 성찰은 자신의 신학에 근거를 두고 행함으로써 교역의 실천을 강화하게 된다. 이러는 과정에서 신학적 성찰은 교역의 실천적인 배경 안에서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신학을 생동감 넘치게 한다. 이런 점에서 신학적 성찰은 바로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충실한 것이다. 신학적인 성찰의 출발점은 경험인 바, 온전하고, 심오하고, 의미 있는 삶으로 들어가는 경험이다. 하나의 방법으로서 성찰은 하나의 사건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기, 그것에 이름 붙이기, 이를 다른 경험과 성찰에 연결시키기, 이를 통해 미래를 새롭게 형성토록 한다. 신학적 성찰의 과제는 신학을 경험에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경험은 우리 가운데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에 관련된 진정한 경험을 말한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학은 경험으로 반드시 비판되어야 하고, 경험 또한 신학 으로 반드시 비판되어야 한다. 일단 성찰이 일정한 수준의 신뢰성과 합의에 도달 하면, 이것은 규범적인 것이 된다. 이런 성찰이 원래의 경험에 대한 믿을 만한 지침으로 인식된다면, 그러한 성찰은 원래의 경험에 인도하는 유일한 안내나 원래의 경험과 동등한 것으로서 취급될 수 있다. 규범적 신학의 수호자들과 이것에 편승한 기관들은 경험에서 나오는 신학적인 주장에 매우 저항적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그리스도교 성찰의 주고받기(give—and—take) 방식, 추구하고 발전하기(search—and—find) 방식의 부분이다. 다른 의미에서 보면, 규범적인 신학은 지나치게 적대적이고 새로운 것을 방해한다. 신학적인 성찰은 바로 이러한 긴장 가운데서 일어난다. 신학적인 성찰은 예수가 처음 나타나서 시작했던 여정이 계속되는 삶의 방식으로 경험과 신학을 엮으려고 시도한다. 이 안내서는 이 여정의 동반자로 제공한다.
CHAPTER 1 신학은 어디에 있는가? – 목회 경험과 신학적인 성찰
신학적인 성찰의 독특한 특징은 성찰의 원재료가 인간의 직접적인 경험이라는 것이다. 경험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또한 현재적이고 인격적이어야만 한다. 경험은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 경험은 신호를 보내고, 힌트를 주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사람들이 어떤 사건의 신학적인 의미를 발견하도록 초청한다.
하나님 - 말씀으로서의 신학
신학은 하나님(theos)와 말씀(logos)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과 말씀과의 관계는 적어도 세 가지 방식에서 이해될 것이다. 곧 ‘하나님에게서 오는 말씀’, ‘하나님에 대한 말씀’, ‘하나님에게 향한 말씀’이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말씀은 전통적으로 계시라는 단어로 표현하였다. 이것은 자연과 역사라는 두 가지 주요한 형태로 발생한다. 이 둘 모두에서, 하나님은 말씀보다는 행동을 통해 더욱 자주 자신을 드러낸다. 이의 특별한 형태는 사람들이 어떤 초월적인 영적인 힘에 의해 장악되고 사용되는 느낌을 가질 때 발생한다. 하나님에 대한 말씀은 전통적으로 믿음이라고 불린다.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말 씀의 빛 안에서 갖게 되는 인간의 자기 이해이자 자기 행동이다 믿음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말씀에 달려 있기 때문에, 비록 그 믿음이 효과적이기 위해 인간의 수용과 행동을 요구할지라도,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이것은 신조(creeds)와 믿음의 공동체의 교리적인 진술인 신앙고백과 이 신앙고백에 대한 질문과 이러한 질문에 기초하여 일관성 있고, 이해 가능하게 믿음에 대한 이해를 조직화하는 연구조사로 이루어진다. 연구는 정교화하고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나님에게 향한 말씀은 본질적으로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통해 이해되는 것으로서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말씀에 대한 반응을 의미한다. 가장 중요한 반응은 기도와 예배, 도덕적인 행위, 교회의 생활과 사회와 문화의 참여와 같은 형태를 취한다. 사람들이 어떤 경험 안에서 단순하게 신학적인 의미를 찾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어떠한 경험에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가? 대부분이 경우 이 둘의 결합이다. 경험은 성찰을 촉발시키는 특정한 신학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신학이 경험 안에서 발견되든지 혹은 경험을 일으키든지 간에, 성찰은 경험과 신학 모두에게 정직하고, 탐구적이어야 하며 또 존중되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 것 상황 안에서 찾아지거나 상황으로 인도한다.
평화로운 죽음 맞이하기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사람의 역할은 분명히 설명되었지만 목회자가 이 역할을 대신 수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한 암시는 거의 없다. 그 목회자의 감정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중요하다. 모든 경험은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 이 두 가지는 항상 공존하며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 미친다. 이 두 측면이 없이는 경험이 제한되고, 그래서 이것들은 각각의 신학적인 성찰을 위한 잠재력이다. 동시에 강한 감정은 경험의 중요성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시사해 주고 중요성에 대한 이러한 감정은 신학적 의미에 대한 일차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 목회자는 주관적인 측면보다 객관적인 측면을 더 많이 묘사한다. 목회자의 성찰에서 대두되는 몇 개의 질문들은 좀 더 폭넓은 이해를 목표로 하고 있는 듯 하다. 예를 들면, 언제 어디서 봉사란 용어를 써야 하는가, 에이즈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 등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질문들은 교회이 공식적인 신학을 명확하게 하기 보다는 개인적인 신학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것은 이러한 경험에서는 인격적인 질문들이 지배적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사례에서 목회는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보인다. 목회자가 편하게 느끼는 목회가 아니라 씨름하며 행해야 할 목회이다. 성찰 집단과 교육 감독자는 목회자에게 탐구의 과정을 보여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후에 성찰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내도록 요청할 수 있다. 그들은 그러한 질문들에 관련된 성경적, 교리적, 목회적, 또는 다른 자료들을 제시하고 목회자가 그것들에 대해 공부를 한 뒤 보고서를 요구할 수도 있다.
의미가 큰 경험들은 친숙해 왔던 신학적인 이해에 대한 질문을 자주 제기한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해 답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제기된 질문을 결론 짓고자 하는 유혹이 존재한다. 이것은 불편한 결론을 회피하거나 자신의 목회 방식을 바꾸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신학적인 성찰이 더 깊은 탐구의 과정을 촉발시키지 않거나 종국에는 새로운 신앙고백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면 질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신학적인 성찰이 아니다. 신학은 공식적이기보다는 인격적이며, 행동보다는 현존이며, 편안한 것이기 보다는 갈등하게 하는 것이다. 아마도 경험의 신학적인 의미가 주로 비언어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직접적인 주장들보다는 일련의 질문들을 제기한다. 질문들 그 자체는 경험의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차원을 탐색하며,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해야 한다.
실천적인 제안과 질문
다음의 요점은 신학적인 성찰집단을 조직하고 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 요점은 이 장에서의 자료들을 요약하고 그리고 특히 각 요점이 목회 훈련과 목회 형성 과정의 부분으로서 구조화된 환경에서 행해지게 될 때, 어떻게 신학적인 성찰을 더 유익하게 할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신학적인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신학이며, 신학적인 성찰자에게 기대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신학은 너무 좁게 정의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한 가지 자료에 한정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제한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명백히 진술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열려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특히 하나의 사건 속에서 사용됐던 실제적 언어를 재현할 때, 신학은 친밀한 종교적인 언어나 상징으로 항상 표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신앙고백으로 서의 신학은 정당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만약 신학이 인격적이어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개인적인 확신들이 질문이나 비평에서 면제되는 것이 아니다. 질문들은 대답되거나 연구 조사하지 않고서도 신학적인 시사점을 내포할 수 있다. 대신에 그것들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얼버무려질 수 있다. “어쨌든 하나님은 현존하셨습니다”이거나 “그것이 구원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입니다.” 신학적인 현안에 대한 탐색은 학생들이 신학 연구 교육과정에 있을 때 더욱 쉽게 할 수 있다. 신학적인 성찰은 학생들이 그들의 목회 활동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인식하고 반응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기도와 유사하다. 학생들이 신학적인 성찰의 어떤 영적인 결과들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는가? 프락시스(praxis)는 모든 신학적인 성찰의 의도된 결과이다. 특히 목회에 대한 성찰은 실천지향적이다. 신학은 어떤 경험 안에서 발견될 수도 있고, 혹은 경험에 대한 성찰로 인해 야기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실제로 일어났던 경험의 통합과 의미의 역사를 가진 신학의 통합은 존중되어야 한다. 어떻게 이러한 두 개의 통합이 당신의 성찰 집단에서 유지되고 있는가? 주요 함정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들이 인식되고 회피되는가? 예를 들면 한 학생이 일단 신학적인 논의가 시작되면 신학적인 의미를 그 사례에 관련시키기 보다 그 사례를 한 쪽으로 제쳐두는가? 신학성찰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학생이 성찰의 결과를 기록하기 전에 성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도록 하는가? 이러한 준비 과정을 혼자 하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가? 학생이 다른 사람들의 제안을 어떻게 통합하고 그들의 조언에 반응하고 있는가?
이론적인 배경
이 책에서 다루는 신학적인 성찰에 대한 접근법의 주된 이론적인 기초는 과정 철학, 특히 화이트헤드가 형성한 것이다. 그는 물론 신학적인 성찰을 직접적으로 논의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상 체계는 내가 앞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처럼 신학적 성찰 작업에 매우 적절하다. 실재에 대한 과정적인 관점에서 가장 현저한 특징은 모든 것이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이다. 만물은 앞으로의 생성의 활동에 관련되는 한에서 그것들이 존재 한다. 화이트헤드의 입장은 실재는 이미 본질적으로 구성되고 그들의 특정한 특징에 따라 행동하는 물질로 구성된다는 전통적인 관점과 대비가 된다. 하나의 존재가 존재하게 되는 실제의 과정은 철저히 창조적이다. 곧 존재는 그 자신의 실존을 정의한다. 존재는 이용 가능한 요소를 파악하고 그 자체인 유일한 순간적인 계기로 그것들을 형성함으로써 정의를 내린다. 그의 철학은 유기체 철학이라고 묘사한다. 경험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언뜻 보기에는 간단하나 표현이다. 왜냐하면 발생하는 것은 매 순간 실재를 새로 구성하는 복잡하고, 대체적으로 숨겨진 자기 창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과정 그 자체는 현실적인 계기들의 생성을 구성하는 모든 파악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들 파악은 본질적으로 느낌의 행위들이다. 경험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모든 경험의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과거,현재, 미래의 시간적인 차원 위에 놓여 있고, 연관의 뒤에 숨겨져 있다. 하나님은 모든 현실적인 계기들이 갖는 모든 지향의 창시자이다. 화이트헤드는 이를 하나님의 원초적인 본성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이미 발생했던 것들에서 출현할 수 있는 가능하고 새로운 모든 사건을 하나님이 마음속에 그리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모든 존재로부터 하나님을 구별되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은 모든 경험에 내밀하게 관여하시고 모든 일부이시다. 모든 경험의 근원에는 신적인 차원이 존재한다. 모든 계기의 실제적인 창조는 그 계기 자체의 작업이지만, 그것의 시작과 결과적인 활동의 가치는 하나님의 작업이다. 이미 명백해진 것처럼, 과정적인 세계관에서 모든 것은 정도의 문제이다. 전통적인 서구의 실재관과 연관된 양쪽으로 나눠진 양분됨과 이원론은 과정적인 관점으로 대체된다. 이 과정적인 관점은 일련의 내재적인 관계를 통해서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에 연결되어 있다는 온전한 연속체라는 관점이다. 어떤 특정한 목회의 사건이 이와 연관된 전체를 더 많이 드러내면 낼수록, 이것은 더 중요한 것이 된다. 그 사건에 대한 개인의 신학적인 성찰이 더 포괄적이면 포괄적일수록, 이것은 더 중요하다. 더 큰 의미의 세계로 이동시키는 것이 바로 신학적인 성찰이다.
CHAPTER 2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가? – 신학적인 성찰을 위한 경험 설명하기
경험을 제시하는 데 쓰이는 도구들
신학적인 성찰의 경험을 서술하는 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도구는 축어록, 사례연구, 중요한 사건, 역할극, 면담, 일기 쓰기이다. 축어록은 목회임상교육과 일대일 관계를 포함하는 교육 감독 목회에 사용되는 기본적인 수단이다. 이것은 목회적인 돌봄의 교역, 목회상담, 영성 지도에 가장 적합하다. 축어록의 장점은 이것이 의사소통의 기술과 신학적인 성찰을 가르치기 위한 실제적인 대화를 신뢰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례연구는 법률, 사업, 의료, 사회복지, 심리 치료와 같은 실천적인 분야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 이것은 특별히 의사 결정과 목회 계획, 목회자의 지도력 이란 의미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사례연구는 사람들이 복잡한 상황을 분석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도록 돕는다. 곧 개인이 개인적인 입장을 갖도록 돕고, 이것의 실천을 계획하는 일을 돕는다. 집단의 상황을 다루는 사례연구는 개인의 초점을 일대일 관계로부터 확장시킬 수 있고 집단과 활동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도록 돕는다. 중요한 사건은 축어록과 사례 연구의 결합에서 생긴다. 이것은 축어록과 같이 대화를 활용하지만, 사례 연구처럼 어떤 상황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사건에서 중요한 요소는 그것의 본래 상황에 근거를 두고 주의 하는 것이다. 역할극은 교수 활동과 관리 기술이 상황을 진작시키기 위해 널리 사용된다. 역할극은 일대일 목회적인 만남에 가장 자주 사용되며, 그러나 이것은 그 자체가 소집단 활동에 적합하다. 역할극은 개인의 의사 소통과 분석 기술을 요구한다. 역할극은 경험의 직접성을 제공하며 그 사람의 자발성과 반응성을 시험한다. 면담은 전자 녹음 장치와 대중 매체에서의 대담 프로그램 확산으로 최근에 발전된 기술이다. 면담은 공식 발표를 하기 전에 사람들과 상담하는 방법으로서나 설교나 교육과 목회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한 준비로서 목회에 활용된다. 면담의 주된 한계점은 면담자가 관심을 갖는 것들만 질문함으로써 제한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로 하여금 신학적인 성찰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다른 관점들이 표현되는 것에 지장을 준다. 일기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발전을 계획하여 기록하고 일상의 사건들에 대한 영적인 해석을 하는데, 인기 있는 도구가 되어 왔다. 이처럼 일기는 영성 지도, 상담과 인격 성장 프로그램들에 유용하다. 일기의 주된 한계는 너무 자기 성찰적 이고 심지어는 자기애 적이 되도록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여섯 가지 도구의 가치는 참가자들이 얼마나 신학적인 성찰을 고무시키느냐에 있다.
연대, 권능 부여, 사회 정의
과테말라에서 온 난민인 토마스와 페리페는 최근에 그들의 ‘신분증’을 받고, 그들에게 일하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어느 날 그들은 내가 일하고 있는 사회단체에 찾아와서,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몇 주 전 나는 식당에 연락했다. --- 이 사건의 서술은 무엇이 발생했는지를 알기에 충분할 만큼 사실에 기초해 있다. 목회자는 이러한 사실들이 중요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엮음으로써 사건의 전모를 포착한다. 난민의 법적인 지위, 이들이 낯선 사람과 익숙하지 않은 체제에 의존되어 있음, 일거리가 절박하게 필요함, 고용에 대한 불안 등 이 모든 것이 이 이야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무감각하고 기계적인 서류가 통제한다. 미국 천주교 주교단의 경제 문제에 관한 목회 서신에서 사회 정의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사회정의라는 말이 함축하는 것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에서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참가자가 될 의무가 있다는 것과, 사회는 그들이 이런 방식 으로 참가할 수 있게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 이 사례는 이를 제시 하는 사람의 목회의 일부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명백하게 신학적인 면이 없다. 주교단의 문서는 이에 대한 비판이나 구체적인 상황도 없이 주장하는 신앙고백으로서 제시되었다. 이 문서는 난민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주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목회자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종의 개략적인 해석이나, 세심하나 신학적인 성찰을 방해한다. 이 주장이 신뢰할만한 신학적인 성찰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비판적인 근거를 갖고, 여기에 있는 것보다 더 설득력 있게 주장해야 한다. 나는 세 가지 부분에서 가능한 하나의 방법을 제안한다. 가난한이들의 ‘힘든 현실’과의 연대, 개인적인 권능 부여, 구조적인 권능 부여, 이 셋은 전형적으로 위에 서술된 순서를 따르지만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 그 목회자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일하기 위한 방법을 개괄적으로 서술함으로써 그 사건이 중요함을 받아들인다. 제시된 방법이 얼마나 신학적인가? 그리고 그것이 서술된 것처럼 그 사건에서 유래하는가? 연대가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신학적인 지지가 충분히 존재 한다. 이 지점에서 목회자에게 적용되는 핵심 단어는 존엄성이다. 구조적인 권능 부여는 사회 정의를 위한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분명히 성경의 예언자 전통과 역사가 여기에 적절한 말씀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 목회자는 난민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지역의 교회에 말했는가를 서술함 으로써 이 사례와 분명하게 연결하고 있다. 이 사례처럼 본래의 경험과 접촉을 놓치는 것이 신학이 상황에 끌려갈 때 더 잘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실천적인 제안과 질문
다음에 제시되는 사항들은 이 장에서의 자료들을 재검토하고 신학적인 성찰을 위해 사용되는 경험의 서술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안들을 제공한다. 신학적인 성찰을 위한 사건의 서술은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
사실에 기반을 둔 서술이 비인격적인 서술이 될 필요가 없다. 신학적인 성찰을 하는 동안 필요에 따라 첨가되는 사실들이 서술에 덧붙여질 수 있다. 경험에 대한 서술은 다양한 도구를 통해 행해질 수 있다.
개별 도구는 각각의 장점과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이미 서술된 것처럼, 신학적인 성찰은 경험의 사실들과 계속 관련되어야 한다.
이론적인 배경
경험자료의 중요성
과정 사상은 영국의 경험론이라고 알려진 철학 학파에 속해 있다. 이 학파에 따르면, 실재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은 상식적인 경험의 확고하고, 틀림없는 사실들이다. 경험론자들 사이에는 이러한 사실들이 실제로 알려질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기준이 알아가는 과정을 안내하고 정당화하는지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경험론자는 경험적인 사실을 선험적이고 좀 더 근본적인 실재의 표현 – 정신이나 이성 – 이라고 여기는 이상주의자들에 반대한다. 경험적인 사실에 대한 주된 접근방법은 물리적 감각을 통해서다. 탐구하는 마음이 추구하는 것은 더 큰 그림이다. 하지만 이것에의 유일한 접근방법은 개별적인 계기의 정보를 통해서이다. 이것은 지루한 과정이다. 반면에 철학적인 관심은 사실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여 경험적인 사실들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 이것은 실재에 대해 지나치게 좁고 결함이 있는 관점을 초래할 것이다. 경험적인 관심은 사색하는 이성을 위한 것이고, 경험적인 데이터가 가능하게 하는 실재에 대한 포괄적인 관점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다. 신학적인 성찰은 경험의 자료를 위와 같은 관점으로 접근한다. 신학적인 성찰의 궁극적 목적은 주어진 경험의 신학인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다. 개념상, 이러한 더 큰 의미가 사건의 사실들을 통해서만 가능할지라도, 이러한 의미는 경험 그 자체의 사실적인 서술을 넘어선다.
상징적인 내용의 기능
모든 유한한 계기(occasion)의 더 큰 차원, 곧 어떤 특별한 경험적인 사실들을 다른 실제들의 네트워크에 연결하는 것은 그것의 상징적인 내용(reference)이다. 모든 사실은 존재 그 자체에 의해서 그 자체 너머를 가리킨다. 사색적인 사고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신학적인 성찰의 관심은 그 사실들의 너머에 있다. 신학적인 성찰은 사실들이 드러내는 더 큰 전체를 인식하고 진술하기 위해 마음의 상징적인 전환을 이룬다. 이것은 바로 그 사건의 서술과 함께 이미 시작되고 그것은 사건이나 그의 의미와 다소 다른 어떤 것이다. 마음이 받아들이는 감각적인 데이터와 함께 마음이 하는 것은, 거의 즉각적으로, 감각적인 데이터를 상징적인 형태들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 상징적인 형태들은 사실상 세상을 재창조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마음으로 인식하고, 마음 안에서 기능한다. 신학적인 성찰은 상징적인 내용을 도출해내는 신중하고, 집중된 연습이다. 이것은 신학적인 의미의상징적인 세계에 하나의 사건이란 확실한 데이터를 적용시키고, 경험이 허락하는 가능한 연결을 통해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 이것은 환상이나 가공한 것 안에서의 연습이 아니다. 이것은 신학적인 의미의 특정한 방향에 맞추어진 모든 인간의 아는 것에 대한 확장이다.
잘못된 구체성의 위험
성찰의 형태 속에 있는 가장 큰 위험 중의 하나는 잘못된 구체성(misplaced concreteness)이다. 이것은 어떤 것에 대한 사람의 생각이 실재를 대리할 수 있다는 것과, 그러므로 이것들이 실제적인 것처럼 다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상징적 내용은 감각적인 데이터의 파악된 세계에 대한 해석이지만, 이것은 그 세계의 대체물이 아니다. 모든 성찰은 이것이 오는 실재에 의해 시험되어야 하고 측정되어야 한다. 잘못된 구체성의 오류는 신학적인 성찰을 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유혹이다. 그들이 자기들이 대리하는 실재인 것처럼 신학적인 개념들을 다룰 수 있다. 이것이 일어나는 가장 분명한 표지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구체적인 사건으로 성찰을 시작하고 그런 다음 신학 성찰이 일단 시작되면, 그 사건을 버릴 때이다. 잘못된 구체성의 오류는 마치 그 사건이 사건 그 자체의 독립적인 존재를 가정하기 위한 신학적인 성찰에 찌르는 하나의 가시이다. 과정의 관점에서 신학적인 성찰은 유전적으로 구체적인 사건으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사건은 앞서 진술된 신학적인 의미를 평가한다. 이것을 달성하고 잘못된 구체성을 피하기 위한 열쇠는 사실에 근거해서 사건을 서술하는 것이다.
CHAPTER 3 어떻게 여기에 이르게 되었는가? – 실제 경험 이야기
목회적인 돌봄 축어론
Keith는 25세로 지방대학에 있는 음악과 순수예술학과 대학원생이다. 그는 탁월한 음악가이며, 수많은 노래를 작곡해 왔고, 대학교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그는 지방 신학교의 예비 신학 프로그램에서 1년을 공부했으나 성직 임명을 받기로 결정했다. 지난 여름, Keith는 Europe으로 연수여행을 갔다. 거기에 있는 동안, 그는 병이 들었고 천천히 회복 중이다. 중간고사 기간에 키이스는 교목인 나를 만나기 위해 약속을 정했다. 그는 정각에 도착했고, 늘 그렇듯이, 처음의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후에, 나는 그에게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물었다. 일반적으로 사건의 세 가지 주요한 구성요소들에 해당하는, 성찰을 위한 세 가지 기입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등장인물들(players), 줄거리(plot)와 배경(place) 이다. 어떤 특정한 순서를 따르거나 이들 셋 모두를 활용할 필요는 없다. 소집단 성찰안에서는, 적어도 한 사람은 기입 항목의 각각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성찰 과정에 대한 실마리
신학적인 성찰의 목표는 인간의 경험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거의 자명(self-evident)하지 않고, 이것은 두 제자에게 예수를 나타내게 위하여 세례 요한이 필요했던 것에서 증명된다. 신학적인 성찰자는 세례요한 같이 누군가를 가까이 두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 임재의 매개체로서, 경험 그 자체는 그 자체의 자연스러운 실마리를 남겨 둔다. 모든 언어는 이것이 하나님 본래의 말씀에 인간이 참여하는 것인 한에 있어서, 신학적인 특성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본질적으로 창조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가깝게 참여하는 언어는 창조적인 언어이다. 그리고 인간 언어의 가장 창조적인 형태는 상상력이 풍부하다. 물론 언어는 그 자체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항상 말하는 사람의 의식적인 통제 하에 있지는 않다. 이것은 이미지가 특히 듣는 사람만큼이나 말하는 사람에게 계시인 의미를 종종 포함한다는 점에서 사실이다. 이것이 대화에서 사용하는 이미지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이다. 때때로 몸짓들은 의도적이고, 어떤 말이나 대상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몸짓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단어나 대상들을 취해야 하는 의미를 구현한다. 경험으로 들어가도록 돕는 실마리들은 경험 그 자체에서 발생한다.
데이비드의 자전거
데이비드의 부모가 알코올중독증으로 데이비드를 버린 사건, 이 사건은 감독하는 일과 조력하는 일로서 목회자의 주요 업무 사이에서 발생했다. 데이비드의 경우 하나님께서 어떻게 활동하실까? 하나님의 조치를 수행하는 데 있어 그 목회자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것들은 이 사건에 대해 신학적인 성찰을 하는 동안 논의할 수 있는 적절한 질문들일 것이다.
그래니 코디
이 이야기에서 목회자는 경험을 매우 창조적으로 묘사하는 재주가 있다. 각각의 짧은 이야기가 동반하는 신학적인 성찰은 일상적인 세부 사항들과 그래니의 삶의 언어로 신학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그래니의 삶의 언어로 신학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상당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래니는 그녀의 소유물들에 대한 명백한 유대감을 갖고 있다. 그래니의 수고양이 롤리에 대한 사랑은 목회자에게 깊은 의미를 갖는 몸짓이다. 그래니와 하나님이 성경적인 이미지 사이의 신학적인 유사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니는 목회자의 사촌이 왜 서둘러서 그곳을 떠나려 하는지 궁금해 한다. 그래니는 서두를 수 없고, 아마 결코 그러지도 않았다. 항상 눈여겨보고 느끼고,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많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세계와 너무 친밀해져 있어서 그곳을 신속히 처리하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다.
식스토와 정의를 향한 희망
식스토를 테러한 경찰들은 발견될까봐 두려워 했고 사람들은 그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경찰들이 은폐할 수 있는 경찰병원으로 데려가지 못하게 했고 변호사들이 있는 ‘교회의 평화와 정의위원회’에 당장 알렸고, 그들은 이 사건의 증거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계속 이 사건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때때로 대상의 오용은 우리를 둘러싼 실재를 깨닫게 하며, 시야를 선명하게 하며 행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새롭게 한다. 이 설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식스토를 지키기 위해 찾아갔던 교회 직원이다. 이 사례에서 교회 직원은 식스토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데려감으로써 그리고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퍼뜨림으로써 성서 시대의 여성들의 역할을 재현했다. 이 사건에 압력을 가해 경찰의 폭력에 제동 걸기 위해서는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가 통제권을 다시 얻어야만 한다. 이것은 체제 안에서의 행동을 요구한다. 곧 이 체제가 사람들을 위해서 작동하도록 법률적인 사건으로 압력을 가하면서 해야 한다.
엘리자베스를 심방함
엘리자베스와의 축어록에서, 존은 어떤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일상적인 심방을 말하고 있다. 이것에서 경험으로 들어가고 그것의 신학적인 교훈을 배울 수 있는 어떤 실마리가 있는가? 주저하는 사람의 몸짓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똑 같은 몸짓은 예수의 죽음 이후 다락방에 모인 예수의 제자들의 묘사를 상기시킨다. 요한복음에는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 걸고 있었다”(새번역). 축어록은 엘리자베스가 실제로 두려워했다는 것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그녀는 분명 문을 잠가두고 있었다.
실천적인 제안과 질문
경험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기 위해 인물, 줄거리, 배경이 제공하는 실마리에 따라 자신의 관점에서 경험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가장 깊이 느끼는 것이나 그들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감지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를 사용한다. 특히 그들이 그것을 좀 더 분석적으로나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때 더욱 그렇다. 대상은 인격적인 경험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구체화한다. 때때로 이것은 의도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행한다. 몸짓은 많은 단어나 대상들이 전달할 수 있는 것을 한 번에 모두 표현하는 행위이다. 신학적인 성찰은 하나님의 임재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미리 알지 못하면서, 그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린다. 그들 자신의 방법에서 이미지, 대상, 몸짓들은 신적인 생명을 공유하고, 이것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론적인 배경
실재(reality)에 관한 화이트헤드의 관점은 다른 계기들의 파악을 통해 그것 자체를 끊임없이 창조하는 현실적인 계기들의 네트워크를 규정한다. 각각의 계기의 파악은 대상이 파악되는 특성을 느끼는 것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경험 속으로 실제로 들어감은 임의적이거나 무관심한 결정이 아니다. 각각의 완성된 경험은 바로 그런 것이고, 공유할 바로 그 자체의 분명한 특성을 가진다. 과정 실재에 대한 표준적인 설명은 종종 개개의 현실적인 계기들에 집중한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어떤 것도 엄밀히 개개의 현실적인 계기는 아니다. 대부분의 것들은 결합이나 종합을 형성하는 몇몇 실제의 계기들로 구성된다. 주관적인 형태는 현실적인 계기가 생성을 가져오는 정보를 느끼는 특유의 정서적인 특징이다. 이 과정은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스스로 창조하기 때문에 화이트헤드는 각각의 계기가 그것이 파악하는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을 그것의 주관적 형태라고 불렀다
CHAPTER 4 나를 상기시키는 것 – 사례로서 신학적인 성찰
조디의 난처한 입장: 사례 연구
조디는 시립종합병원에서 목회현장 실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여성들의 기자회견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에 난감해 했다. 그들이 직면한 차별, 곧 같은 업무에 대해 남자들보다 낮게 받는 임금, 전문직으로서 존중이 부족 등의 문제였다. 이러한 사례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신학을 확인시켜 준다. 이것은 사람들이 왜 사례를 통해 분명히 보여지는 신학을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그 사람은 어느 정도의 신학적인 의식을 이미 가지고 있고, 당면한 사례에서 그것이 제시되는 것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조디의 동료들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눈에 동등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의 표시로서 실천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경험이 신학을 어떻게 예시하는가
일반적으로, 경험은 신학을 세 가지 방법으로 예시한다. 일반적인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 역사적 사건에 동시대적 사례, 공동의 경험에 대한 개인적인 사례이다. 종종 경험은 일반적이고, 신학적인 주제에 대해 특별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때때로 경험은 성서, 교회의 역사, 그리스도교 교파의 전통, 또는 뛰어난 개인들이나 공동체들의 전기들에서 찾아질 수도 있는 역사적인 사건의 동시대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경험은 또한 공동의 인간 사건들을 개인적으로 만드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례의 가치
사례는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자기 자신에게 가치가 있는데 우선, 그는 자신의 신학에 대해 좀 더 확신하게 된다. 또한 모든 사례는 자신의 신학과 의사 소통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는 신학에 더욱 친숙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신학으로 더욱 신앙심이 깊어진다. 경험과 신학이 사례를 통해 만나면서, 이것들은 하나님과 더욱 신앙심 깊은 만남을 초청한다. 사례는 일반적으로 신학에 미치는 영향 이외에, 또한 그 자신의 신학에 대한 가치를 지닌다. 이것이 사례 등을 통해 분명히 보여질 때, 그 사람의 신학은 완성도가 높아진다. 일반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과거와 현재, 공통인 것과 개인적인 것 사이에 관련성이 만들어질 때마다 신학적인 의미와 함축이 채워진다. 또한 특정인의 신학이 더욱 잘 인식될 수 있다. 사례는 매일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서 신학이 더욱 명백해질 수 있도록 한다. 또한 특정인의 신학이 더욱 오래 지속한다.
사례에 대해 주의할 점
사례는 목회를 가르치는 데 가장 자주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것이 쉽거나 요구 사항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효과적인 사례는 우리가 경험으로 들어가서, 이전의 지식을 탐구하고 제안되거나 기억되는 자료들을 검토하며 신학을 경험과 면밀하게 비교하고 다른 사람들 판단에 사례를 제시하기를 요구한다. 사례를 통한 학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음 사항을 기억하라. 신학적인 관점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경험을 강요하지 말라. 그리고 경험에 끼워 맞추기 위해 신학을 왜곡하지 말라. 사례를 날조하지 말라. 실제로 일어난 것을 발견하고, 경험이 그 자체의 적절한 사례를 제시하게 하라. 신학적인 성찰은 어떤 의견을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하기 위해 사례를 찾아내는 교육적인 작업과 같지 않다. 마음에 떠오르는 첫 번째 사례에 그치지 말라. 첫 번째 사례는 경험 그 자체에 대한 성찰이라기 보다 그 사람의 가장 최근 독서나 가장 편안한 연상의 결과일 수 있다. 예를 들면 거룩한 구세주 교회가 처음 피난처 교회가 되기를 고려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을 예수의 연민과 친절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겼다. 사례에 그치지 말라. 가능한 많은 방법으로 경험이 가르치도록 하라. 예를 들어, 존의 교목 경험은 아버지와 두 아들의 비유를 분명히 보여줄 뿐 아니라, 이것은 그의 직원 구성원들과 미래의 상호 작용에 적용할 것을 요청한다.
고메즈 씨에게 일어난 중요한 사건
요양원에서 고메즈 노인과의 축어록에서 기본적인 감정은 좌절이었다. 심방 가서 말을 거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그 당시 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 밖에 할 수 없었다. 여기서 신학적인 주제는 모든 것을 잃어 버렸을 때 누가 돌보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욥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목회자는 고메즈 씨의 사례에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믿음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자신은 그 믿음을 고백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메즈씨에 대한 심방은 과거 사건의 동시대적인 대표 사례이다. 이 상황에서 고메즈씨는 욥과 같이 선한 사람의 외로움과 고통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목회 심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암시를 제공한다. 만약 욥의 이야기에 대한 성찰이 좀 더 심층적으로 발전되었더라면, 그것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심방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을 더욱 주었을 것이다.
메리와의 축어록
가정부 메리와의 축어록에서 목회자는 메리와 함께 있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실제 명상과도 같다. 곧 축복받은 자들은 가난한 자들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경험의 이러한 측면에 대한 더 깊은 성찰은 메리가 그 목회자에게 무엇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목회자가 이것을 실제로 가장 최선으로 실천하는지를, 예를 들면 메리처럼 되는가를 명료화 할 수도 있다. 목회자는 메리에게서 “하나님,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회당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상기시킨다. 누가복음 18:13에 나오는 여인은 죄인으로서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겸손한 여인으로서 메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실천적인 제안과 질문
다음의 사항들은 목회가 사례를 통해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지를 요약한다. 질문은 신학적인 성찰 집단과 함께 사람들이 이 자료들을 실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경험이 신학을 분명히 보여주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은 경험과 그것이 보여주는 신학에 충분히 친숙해야만 한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경험이 신학을 어떻게 분명히 보여주는지 인식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경험은 주제와 관련된 형태로 신학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례는 이것이 새로운 근거를 깨지 않거나 중요한 새로운 통찰로 나아가게 하지 않을지라도 신학적인 성찰의 타당하고 가치 있는 형태이다.사례를 알아차리는 것은 단지 출발점이다. 진정한 학습이 일어나려면, 사례는 반드시 기술되고, 연구되고 논의되어야만 한다. 사례는 개인들과 그들의 신학에 영향을 준다.
어떤 특별한 경험은 학생에게 친숙하지 않는 신학적인 관점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도자나 다른 성찰 집단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진 것이다. 경험은 신학을 결코 완전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은 대개 유사점과 차이점을 드러내면서 비유적이기 때문이다. 사례는 경험이 제공할 수도 있는 유일한 종류의 신학적인 배움이 아니다. 학생들이 가능한 많은 사례를 확인하고 그 중 하나에 초점을 맞추도록 격려한다.
이론적인 배경
경험이 신학을 예시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적인 기초는 다음과 같은 신학사상의 세 가지 핵심사상에서 온다.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은 모든 현실적인 계기에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각각의 사건에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목적을 제공함으로써 모든 사건을 착수시키신다. 하나님의 임재는 존재의 자기 창조 전체의 과정을 통해서 지속된다. 하나님이 제공하는 본래의 지향(initial aim)은 주어진 계기를 구성하는 모든 단계를 통해 만족되는 목적으로서 남아있다. 하나님의 임재는 단지 전체 사건의 맥락에서만 포착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단순히 한 사건의 구성으로 들어가는 많은 요소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이 장에서 제시된 목회경험을 구성하는 물리적인 환경, 물리적인 대상, 사람, 대화, 느낌, 또는 결정과 행위와 같지 않다. 이것들은 이 경험이 존재하는 그대로의 분명한 방식에서 파악되고 상호 관련된 별개의 요소들이다.
창조성과 반복성
신학적인 성찰의 실제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목적을 돕는 것이다. 모든 사건에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설명이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질적 으로 새로운 경험을 향한 창조를 유혹하신다. 하나님은 새로움과 그 안에 있는 기쁨의 창조자이다. 하나님은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신다. 신학적인 성찰은 진정으로 신학적인 한에서, 이것은 창조성과 새로움의 측면에서 경험으로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항상 하나님의 열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것은 옛 것에서 온다. 그리고 그것이 오래된 것과 관련될 때에만 새로운 것으로 인식된다. 현재는 과거의 바탕 위에 존재한다.
인과관계의 효과
인과관계의 효과의 역할은 왜 사례가 경험이 가르치는 가장 자주 사용되는 방법인지를 설명한다. 새로운 경험은 본래 과거 사건들의 성찰이다. 새로운 경험은 실제로 과거 사건과 관련되고, 대개 그것을 초래하는 더 큰 전체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더 큰 전체는 위에서 설명된 의미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포함한다. 어떤 특정한 사건 뒤의 인과 관계의 관계망을 해명함으로써, 사례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이해를 증가시키는 또 다른 예이다.
CHAPTER 5 나는 이제 보기 시작한다 – 적용으로서 신학적인 성찰
명료화하기
적용은 사람들이 할 수도 있는 신학을 실천에 옮기는 것과 같지 않다. 예를 들면 병원 직원들의 근무 관계를 구조화하기 위해 공동체의 이해를 이용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런 형태의 활동은 신학적인 성찰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적용이란 새로운 상황의 관점에서 자신의 신학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의 신학을 수정할 가능성을 수반한다. 적용은 자신의 신학을 추상적인 생각의 관례적인 맥락에서부터 어떤 특정한 상황의 새로운 맥락에 적응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신학적인 우선권이나 강조점들의 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수반한다. 사회분석은 단순한 사시의 보이지 않는 밑에 흐르는 것을 파악하려고 하고, 이것들을 일으킨 근원과 구조들을 보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어떤 상황이 실제로 구성된 방식에 기여하는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반면에, 그 자신의 선입견과 편견을 떠나서, 객관적인 연구가 되도록 의도한 것이다.
사건들이 적용을 요구하는 방식
상황은 적용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상황은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거나 개인의 신학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데 대한 자극은 한 사건에서 세 개의 주요한 요소, 곧 등장인물, 줄거리, 배경과 관련하여 세 자료 중 하나이다.
등장인물들
때때로 특정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것을 할 때 적용을 촉발한다. 고정관념을 깰 때, 역할을 바꿀 때, 숨겨진 자질을 보여줄 때 등이다.
줄거리
때때로 한 상황 속에서 현안들이나 가치들이 적용을 촉발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곳에 나타날 수 있다. 전문용어, 방법론, 결과가 그것이다. 때때로 어떤 상황의 배경이 적용을 촉발한다.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을 수 있다. 문화적배경이 있을 수 있고 정치적/성적인 배경이 있을 수 있는데 자신이 동성애 성향을 인정하는 한 학생이 성직 안수 승인을 거부당한다. 그리고 이 사건은 급우들에게 자신들의 교역 신학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또한 사회적 배경으로는 수감자들은 동료들의 압박과 조롱 때문에 성서 연구수업의 참여를 기피한다. 이것은 목회자에게 자신의 교도소 교역 신학을 재평가하게 하였다.
적용의 가치
신학을 재확인한다.
적용은 새로운 상황을 반영한 신학을 재확인한다. 다른 말로 하면, 각 개인이 기본적으로 같은 입장인 것으로 보이나, 적용의 신학의 요구로 수정 된 것이다.
신학을 재정립하다
이것은 자신의 신학에서 우선적인 내용과 다양하나 신학적인 입장의 적절성을 의미한다. 적용은 개인이 신학적인 진실의 척도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의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새로운 신학을 드러내다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새로운 통찰과 이해는 항상 가능하다. 특히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목회 경험을 제한하거나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더욱 그렇다. 이 두 경우 중 모두에게 자신의 신학에 적용을 시도하는 것은 이미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첨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례 연구: 얼마나 많이 드러내야 하는가?
사회분석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은 동성애에 대해 문자적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고, 사람들이 이것을 하나님의 보복의 희미한 낌새로 여기며 경멸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 문제는 지속적으로 두려움, 혼동, 혐오감, 회피 등과 같은 강한 반작용을 일으켜 왔다. 여전히 동성애적 성향의 기원은 이해되지 않고, 이것을 둘러싼 복잡성과 불확실성은 때때로 혼란스럽게 만든다.
신학적인 성찰
이런 공개는 일반적으로 목회의 역할과 성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약함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한다.
행동
하나님은 우리에게 비합리적인 것을 요구하신다. 확실히,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최종 말씀이 아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뒤이어 일어나는 부활에 대한 놀랄만한 연결 통로이다. 만약 이렇게 알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 노출 역시 분명히 불가피하게 하실 것이다.
논평
결정해야 하는 것은 신학을 적용하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경우이다. 이 사건의 초점은 목회자의 딜레마이다. 이러한 설명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 목회자가 명백하게 사회 분석을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 목회자는 사실적인 설명의 일부로 다루어지는 하나님의 보복이라는 개념을 포함해서 사회의 부정적인 태도에 대한 개인적인 인상을 제공한다. 그 목회자는 사회분석 부분에서 설명된 딜레마를 재진술함으로써 신학적인 성찰을 시작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학생들과의 좋은 관계와 효과성에 변화 없이 예언자적인 자세와 진정성의 이상을 자신의 상황에 적응시키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약간의 변화는 항상 적용에 영향을 미친다.
중요한 사건: 무엇이 공동체인가?
수련회에서 이루었던 이상이 일상적인 현실에서 가능한가? 이 목회자는 이런 질문과 씨름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한 부분에는 공동체의 정신이 살아 있고, 끊임없이 빛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현실은 삶 속에서 지속적인 ‘고양됨’을 기대하지 않음을 인정한다. 공동체는 좋은 날들, 나쁜 날들이 있는 개인들과 같다. 성찰이 시작되면서, 현실은 이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현실은 지금 목회자 에게 두 가지 질문과 씨름하도록 한다. 그 질문은 수련회에서 깨달았던 이상이 매일의 삶의 현실에서 가능한가와 무엇이 공동체인가이다. 이러한 잠재력을 보는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목회자의 자기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내면의 역동성과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공동체를 상기시키기 위해 그 목회자에게 새로운 역할을 제시한다.
실천적인 제안과 질문
적용함으로써 신학을 배우기 위해 경험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적용은 특정한 상황에서 신학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실천과 전략들로 쉽게 혼동될 수 있다. 신학을 적용하는 것은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신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적용을 통해 배우는 것의 열쇠는 그 자신의 표현으로 가능한 완벽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 줄거리나 배경이 학생들 자신들의 이전의 신학에 도전할 때, 상황은 적용을 촉구한다. 적용은 학생들이 이것을 재확인하고 재정립하고 또는 그 안에서 새로운 통찰을 드러냄으로써 신학을 배우도록 돕는다. 신학을 적용하는 것은 영적, 도덕적, 의례적, 곧 실천적인 의미들을 강조함으로써 적용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론적인 배경
적용을 통해 신학을 배우기 위한 이론적인 기초는 다음과 같은 과정 사상의 개념에 존재한다. 1) 전망의 중요성 2) 대비의 기능 3) 교리의 발전이다.
전망
전망은 화이트헤드의 개념에서 알아가는 과정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은 알고 있는 사람의 주관적인 태도라기 보다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상태를 언급하는 것이다. 전망은 실재의 전체가 특정한 계기로 표현되는 방식이다. 모든 경험의 미학적인 특징은 주요한 주제이다. 미학적인 특질이란 자연이나 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를 의미한다. 이것은 대비적 요소들이 어떻게 만족과 기쁨의 경험을 일관성 있는 전체로 합쳐지는지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한다.
교리의 발견
교리는 일반적인 진실에 대한 명확한 진술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리는 어떤 신학적인 진술을 상징할 수 있다. 이런 명확한 진술은 학습과 삶 모두에 높은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설득력은 단순한 그들의 표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선험적인 자각을 한다는 사실에 달려 있다
CHAPTER 6 그것이 당신이 의미하는 것인가? – 배운 것을 실천하기
해석이론
어떤 사건도 해석되지 않는 사건은 하나도 없다. 모든 인간의 해석에서 순수하게 객관적인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건은 다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의미는 어떤 사건들이 그 자체로 실제 그대로인 것 위에 놓여 있는 자의적인 의미가 아니라 어떤 사건들이 그것을 구성하는 상호 작용들의 맥락에 있는지를 말한다. 비판적인 질문들은 미리 주어진 대답이 없는 질문들이다. 비판적인 질문들은 신학적인 해석을 포함하여 해석의 전형적인 틀에 맞지 않는 경험들에서 나온다. 모순이나 부조화는 극적이거나 극단적일 필요가 없다. 때때로 어떤 사건은 비판적인 질문을 제기하기 보다 대안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해석과 다원주의
해석은 변화를 야기한다. 사례는 한 개인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의 예를 덧붙이고, 적용은 사람의 지식의 유용성을 확장한다. 반면에 해석은 사람이 이미 아는 것을 변화시킨다. 사건들은 다른 관점으로 보이고, 보이는 것은 정말로 다르다.
실천적인 제안과 질문
목회경험이 신학을 해석하도록 하기 위해, 당신은 그 경험이 가능한 모든 의미를 제시하도록 허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대 해석이론은 해석되지 않는 경험이 없으며 모든 사건은 다중이 의미를 지닌다는 입장을 유지한다. 경험은 개념적인 지식을 넘어서는 질문을 비판적으로 제기하고, 사람들의 신학적인 가치, 성향, 정체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신학을 해석할 수 있다. 경험은 대안적인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그리고 사람들의 이전의 신학이해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의미를 그 설명과 함께 제공함으로써 신학을 해석할 수 있다. 어떤 경험은 그것이 다른 관점에서 해석될 때 다른 의미를 드러낼 수도 있다. 당신의 성찰 모임의 구성에서 다른 관점들을 환영하는가? 해석의 다원주의는 신학의 일치와 그것을 이루는 다양한 방법에 도전한다. 다원주의와 관련해 당신은 어떻게 신학적인 일치를 이루고 유지하도록 노력하는가? 이것이 신학적인 성찰을 위해 중요한가? 사건의 인격적인 의미에 초점을 둔, 해석의 다원주의는 진리에 대해 그리고 특히 종교적인 전통에 대한 정통의 가르침에 질문을 제기한다. 당신의 신학적인 성찰 모임은 정통적인 입장을 대화 상대자로 간주하는가?
이론적인 배경
해석으로 신학을 배우는 것의 기초는 과정 사상에 있는 다음의 관계성에서 유래한다. 1) 주체-객체, 2) 의미-진리, 3) 일자와 다자이다. 근대서구철학은 적어도 데카르트의 시대 이후로, 주체와 객체의 분리로 특징 지어져 왔다. 이러한 분리는 직접적으로 의도된 것은 아니었지만 데카르트가 논쟁의 여지 없이 신뢰할 만한 지식의 출발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해석은 본질적으로 경험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고, 경험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며, 해석은 이것이나 저것의 흥미로운 요소가 포함된다면 미래의 경험이 어떠할지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다.
신학적인 성찰은 성찰하는 제한된 경험의 지평 안에서 같은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하나님과 함께 생각하고 일치를 알아차리려 노력한다.
CHAPTER 7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배운 것을 실천하기
인격적인 행동
인격적인 행동은 한 사람의 정체성, 자아상, 동기, 그 자신에 대한 생각을 언급한다. 결국 이들 요소들은 그 사람의 행동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인격적인 행동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이 어떠한지와 관련이 있다.
중요한 사건의 인격적인 행동
에이브에 대한 심방결과 빌은 이야기의 줄거리를 통해 이 경험에 접근했고 그들은 이 이야기를 에이브의 상실감으로 해석했다. 아마도 에이브는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상실을 다룰 수 있도록 돕는 입장에 빌이 있다고 생각했다. 빌에게 중요한 사건은 인격적인 행동을 요구한다 빌의 에이브 심방은 기대치 않게 빌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에 직면하게 했다.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신학적인 성찰의 인격적인 행동인가? 이러한 인격적인 행동이 신학이나 목회의 다른 분야에 함축성이 있는가? 예를 들면, 예전에 빌은 그가 누구인지와 그가 무엇을 하는지 사이의 관련성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목회적인 행동
목회적인 행동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곧 개인과 소집단, 공동체나 사회와 함께 일하면서 발전시키고 사용하는 대체적인 기술들을 의미한다. 목회적인 행동은 목회자 개인에게 제한되지 않는다. 제니퍼의 경험에 대해 돌봄 목회 직원들이 공유한 신학적인 성찰은, 각각의 사람이 구별된 방식으로 목회를 실천했을지라도, 직원들 전체의 목회적인 행동을 풍부하게 했다.
면담을 통한 목회적인 행동
자치주에 있는 술과 약물 중독자 회복 센터의 돌봄 목회 인턴들인 레오와 자넷은 이 경험을 성찰 집단에게 제시했다. 이들의 출발점은 경험에 대한 구조적인 환경이었다. 면담은 이들이 성찰에 대한 목회적인 행동이 되었다. 자넷과 레오는 인간에 대한 그들의 신학의 사례로서 신학적인 성찰 집단에 그들의 면담 결과를 제공했다. 그리고 이들은 그리스도교 인류학의 기술적인 단어가 아니라 그들이 면담한 사람들의 언어와 감정을 사용했다. 이 행동이 신학적으로 성찰된 새로운 경험인가? 예를 들면, 자넷과 레오는 인간의 인격에 대한 신학을 보여주는 새로운 목회 경험으로서 그들의 면담 결과들을 제시했다.
신학적인 행동
신학적인 행동이란 그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사람의 신학적인 전망과 선호도를 말한다. 모든 신학적인 성찰은 어느 정도의 신학적인 행동을 포함한다. 학위를 취득하고자 하는 학생들과 같이 폭넓은 신학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신학적인 성찰을 종종 신학적인 행동으로서 수행한다. 사람들이 이러한 종류의 행동에 친숙해지면서 그들은 새로운 상황에 더욱 신중하면서도 창조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일기 쓰기를 통한 신학적인 행동
두 번의 심방을 성찰하면서 “친한 사람들의 반가운 방문과 달리, 무엇이 그것들을 목회자로 만드는 것인가? 표면적으로 이러한 행위는 내가 목회자이기 때문에 교역이 된다. 이것이 나의 역할이고 이것이 남이 나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말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피하고 싶어 하는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측면이다. 신학적인 행동은 교역의 이해에 영향을 주어야만 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 뒤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친한 사람의 반가운 방문과 달리 “무엇이 목회자들의 심방을 하나님을 위한 봉사가 되게 하는가?” 이러한 성찰이 나의 신학을 확신시켜 주었는가? 이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간에 행동은 신학적인 성찰에서 직접적으로 나와야 한다. 실천적인 구체화로서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행동은 프락시스라고 부르고, 습관과 충동과 구별된다.
행동과 플락시스
습관은 반복적인, 비성찰적인 행위이다. 어떤 자극이 발생할 때, 예상 가능한 반응이 뒤따른다. 그 상황에 대한 신중한 성찰이 없다. 이것은 습관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합리성이란 그것이 단순히 당연한 것으로 친숙할 수도 있다. 충동은 자발적인, 비성찰적인 행위이다. 특정한 자극이 발생할 때, 어떤 반응이든 반응이 뒤따를 수 있다. 이러한 반응에 대한 근거는 이후에 합리화나 정당화를 통해 제공된다. 충동은 비지성적인 태도이거나 반지성적인 태도가 바닥에 있다. 프락시스는 행동과 실천적인 관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것은 직접적으로 성찰에서 나온다. 프락시스는 행동으로 나타난 성찰이다. 성찰 그 자체는 미리 결정된 생각이나 사후의 합리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체 상황에 따라 구체화된다. 프락시스는 사람이나 집단이 그들의 습관적인 생각을 일괄하여 다루고 그들의 충동적인 반응을 통제하는 것을 요구한다. 다양하고 정직한 구성원들로 구성된 성찰집단은 이것을 이루는데 매우 귀중한 자산이다. 자원 봉사자인가, 교우인가? 최근에 평신도 선교회원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 위원회는 지난번 회의에서 위임받아 생기게 되었다. 우리교회의 교역에 위와 같이 추가된 것을 어떻게 계획할 것인가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과거에 대한 사회적인 분석이 필수적이다. 과거에는 평신도 교우들의 조직이 있었다. 이 위원회에서 특별한 역할이란, 어떻게 자원 봉사자와 교우 사이의 차이점을 구분할 것인가 이다. 핵심 단어는 교우이다. 내가 이해하듯이, 교우는 교회와의 더 깊은 관계를 원한다. 교회론은 교회란 다양한 봉사를 통해 구성된 공동체이다. 교회에서 평신도 교우를 위한 프로그램을 설립할 가능성으로 들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그램이 무엇이고 또 무엇이 아닌지에 대해 전체적인 공동체를 설득하고 교육하는데 관심이 있다. 매우 중요한 요소는 그들의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영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질문을 하고 그것들을 명백하게 할 필요가 있으며, 또한 많은 모험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목회 조직 안에 존재하는 친숙한 문제를 제시한다. 이 사례를 제시한 목회자는 평신도 교우들에게 매우 고마워하며 그들을 지지한다. 심층 분석은 이것들이 단순히 목회자의 선입견인지, 혹은 상황에 대한 정확한 묘사인지 보여줄 것이다. 이 두 경우에서, 가치 있는 정보는 성찰의 부분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목회자의 간략한 신학적인 성찰은 자원봉사자와 교우들 사이의 구분과 핵심 문제들에 대한 답변으로 돌아간다. 이 일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예를 들면 그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이것은 교우들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요청한다. 위원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목회자에게 명백한 실천적인 관심이 주어진다면, 이렇게 성찰이 목회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예를 들면, 대부분 공동체에게 그 프로그램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실제적이고 적절한 행동은 신학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 목회자의 결론은 신학적인 행동에 대한 적절한 요약이다. 많은 질문과 설명, 모험이 시도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천적인 제안과 질
다음의 사항들은 신학적인 성찰의 행동에 관한 이 장의 자료들을 요약한다. 성찰 과정의 결과가 행동으로 되지 않는 다면 신학적인 성찰은 완전하지 않다.프락시스는 특정한 환경에서 유래되고 똑 같은 특정한 상황이란 전망에서 실천되는 성찰의 구현이다. 목회 계획은 생각을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핵심 기술이다.인격적인 행동은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 자아상, 동기들과 관련시키면서 성찰 에서 결론을 내린다. 신학적인 행동은 신학적인 성찰에 기초한 정보와 이해에 대한 재정립이다. 목회적인 행동은 목회의 기능들 중에서 신학적인 성찰의 행동적 표현이다.
이론적인 배경
신학적인 성찰의 행동은 다음과 같은 과정 사상의 주요한 세 가지 개념에 기초하고 있다. 1) 양극적인 구조의 실재, 2) 성찰의 기능, 3) 세상의 창조적인 진보이다.정신과 물질의 구분은 많은 형태가 있다. 육체와 영혼, 자연과 초자연, 이성과 감정, 사간과 영원이다. 이러한 물리적인 극과 정신적인 극의 상호작용은 성찰의 기능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논의에서 더욱 명백해진다. 성찰은 행동을 지향하고 행동은 성찰을 야기한다. 과정 사상에서 행동은 항상 구체화된 사고이다. 사고는 항상 행동의 발단이다. 신학적인 성찰은 새롭고 더 나은 삶을 향한 성찰적인 추구 안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다. 조화와 아름다움은 분명히 세상에 있는 유일한 실재들이 아니다. 또한 부조화와 추함이 존재한다. 이러한 명칭들은 주어진 목표를 만족시키는 데 있어 잘못된 요소들이 결합되었거나 혹은 결함 있는 방법으로 결합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학적 성찰 그 자체는 예술작업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완성된 사건과의 창조적인 상호작용이다. 그리고 내적인 조화와 진리가 출현하도록 고쳐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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